동향면 능금리 내금마을 이우식씨

어느 시대건 영웅은 있었다. 하지만, 영웅이 되기까지는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야 했고, 그 대가를 지급해야 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이우식(45)씨는 영웅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정을 꾸려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이다.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씨는 배움의 기회보다 가족의 생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씨는 배내 소(남의 가축을 길러서 가축이 다 자라거나 새끼를 낸 뒤 주인과 나누어 가지는 제도)를 기르며 생계를 꾸렸다.
이러한 이우식씨는 동향면 능금리 내금마을에서 어머니 박순임(74)씨와 아내 장미화(34) 그리고 아들 상협(초 5년), 상준(초 3년), 상춘(초 1년)이와 함께 98마리의 한우를 키우며 부농의 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 이우식씨
◆미래가 되어준 ‘배내 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에 대한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중학교를 포기해야 했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했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우식씨는 배움의 기회를 접어야 했다.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마을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배웠다.
하루하루 일해 받은 품삯으로는 하루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고달픔 삶을 산 것이다. 이때 배내 소는 이씨의 미래가 되어 주었다.
“정말로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어른들이 하시는 일은 모두 했으니까요. 그래도 하루하루 끼니를 꾸리지 못하는 날이 많았죠.”
“1976년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고사봉씨에게 배내 송아지를 얻어 2년간 성우로 키워 돌려주고, 송아지 한 마리를 얻었죠. 이때 제 소 한 마리가 생겼어요.”

◆시련의 그늘
송아지 한 마리를 마련한 이우식씨는 삶에 대한 희망을 얻었다. 한우와 돼지, 닭 등 살림을 늘려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성장한 돼지를 팔아 소를 장만해 5년이 지난 83년도에는 한우 10마리로 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한우를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이우식씨에게 시련의 그늘이 드리웠던 것이다. 오랜 세월 지병으로 고생한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다. 또 서울에서 귀농한 사람에게 보증을 잘못 선 관계로 전 재산을 잃었다.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생활할 때 이씨에게 도움이 되어준 사람도 있었다.
“서울에서 귀농한 귀농자에게 보증을 잘못 서, 전 재산을 잃고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현재 한우협회 박장우 회장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박 회장님의 도움으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축협의 대출을 받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어요. 그때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달려들어 다시 무너지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삶에 대한 자포자기로 가장 기대고 싶었을 때 주위에서 조언을 많이 해주신 덕분으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열심히 생활해 왔습니다.”

◆제2의 인생 시작
“넉넉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조언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저에게는 작은 소리 하나하나 소중한 조언으로 귀에 들어온 시기였어요. 자포자기한 시기에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물론 외양간을 정부에서 지원해줘 큰 힘이 되었죠.”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 이우식씨는 지금도 어려운 시절에 조언해 준 사람들과 정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도움은 농촌에서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지금은 1,520㎡의 외양간에 한우 98마리를 기르고 있다.
배내 소를 기르기 시작해 98마리까지 늘리기까지에는 남모를 시련과 고통 그리고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시련과 고통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외길을 걸어온 이우식씨가 진안에 선도 농가로 손꼽히고 있다.
이씨는 배내 소를 키우며 작은 외양간에서부터 지금의 외양간까지는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기까지 인내와 끈기를 원칙으로 삼았다.
“남들 놀 때 저도 많이 놀았어요. 술도 먹었고요. 하지만, 제가 해야 할 일은 밤이고 새벽이고 해가며 놀았죠. 그래서 지금은 소가 한 마리 한 마리 늘 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뿌듯합니다. 남들은 사소하게 보겠지만 저에게는 소중하니까요. 소중히 간직한 공간에서 최고의 한우를 키우고 싶어요.”
외양간도 현대화로 변해가는 현재, 오래된 외양간을 보존하고 있는 이우식씨. 그가 보존하고 있는 외양간은 남다른 것 같다.

▲ 이우식씨가 때마침 외양간에서 한우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처음 10여 마리로 늘어난 외양간과 20여 마리를 관리한 외양간은 이우식씨에게 추억이 어려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보증을 잘못 서 전 재산을 잃었던 곳에서 첫 외양간을 지었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곳 또한 이곳이다. 또 다른 곳은 암컷 한우만 기르고 있는 외양간과 현재 760㎡의 현대식 외양간이 있다. 현대식 외양간은 작년에 760㎡를 증축해 총 1,520㎡ 외양간에 98마리의 한우를 입식하고 있는 상태다.
“빈 외양간을 철거하고 싶은 생각도 해 보았지만 함께 동고동락한 흔적 때문에 철거를 하지 못했죠. 언제까지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계속 두고 싶은 마음입니다.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한우를 입식해 키워보고 싶어요.”
한우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우식씨는 한 마리의 한우를 키운다 해도 최고의 한우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한우를 키워도 1등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최고를 만들고 싶죠. 이제는 한우를 키우는 데 천직으로 알고 한우 키워 먹고살아야 할 것 같아요.”

소처럼 우직하고 모범이 되는 사람

한우협회 박장우 회장은 이우식씨에 대해 “성장과정을 지속적으로 지켜보았지만 농촌에 이런 사람이 드물다.”라면서 “소처럼 우직하게 어려운 여건을 극복해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우식씨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도 높은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정부에서 지원 또한 많은 힘이 되었다.”라면서 “어려운 가운데 작은 외양간에서 큰 외양간으로 한우를 늘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박장우 회장은 “한우를 기르는 것은 이우식씨처럼 느긋하면 된다.”라면서 “그만큼 꾸준한 인내를 가지고 한우를 기른다면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두 마리가 네 마리가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우 농가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한우 가격이 하락세를 보일 때”라며 “가격이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는 것처럼 인내심을 갖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박장우 회장은 “군에서 농가들에게 지원해 주고 있는 보조금을 이우식씨처럼 농촌에 의욕을 갖고 있는 농가들에 지원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라면서 “의욕 없이 보조금을 받는 농가들보다 의욕 있는 일꾼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지원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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