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박방곤
박 방 곤 씨

 

백운면백암리원촌출신
환경소식신문 서울본부장
서 경 회 회장
재경백운면향우회회원
재경진안군민회청년담당부회장


고향사람은 말 그대로 진안 고향사람들의 꾸미지 않는 이야기이다. 화려하지도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내노라 하고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 있는 우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부딪치고 부서지며 쓰러지고 무너지며 그러고서야 겨우 제자리를 찾아가는 지극히 보통사람들의 파란만장한 그 여로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걸어가는 자수성가의 모습을 논픽션으로 따라가면서 우리 뒤에 오는 고향의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값어치에 대하여 판단하고 그리고 금과옥조(金科玉條)의 귀감으로 삼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이 글의 편집의도로 생각한다. 인간의 두뇌로서 계산해 낼 수 있는 인간의 성공지수에 대하여는 아무도 언급 할 수가 없다. 다만 인간이 느끼는 성공의 의미가 제 각각 다를 수는 있겠으나 그 길과 그 의미가 자신의 의미와 함께 부합 되었을 때 우리는 그가 성공하였다라고 박수를 칠 수밖에 없겠다.

박방곤. 1955년, 2월생.
이제 막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의 연륜이다. 그러나 이미 훨씬 이전에 그는 하늘을 터득하고 그에 순종하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는 긍지(矜持)와 극기(克己)와 인고(忍苦)의 중심에서 그가 평생을 통하여 입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애증(愛憎)의 이치를 다 했다.
일제의 강점기 징용으로 끌려가셔서 치유 할 수 없는 중병을 안고도 세월에 굴하지 아니하고 꿋꿋하게 세상 앞에 자신을 내 놓고 7남매의 자존심에 상처 주지 않고 살아가신 그의 아버지의 긍지를 그는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의 깊음 위에 우리의 조물주는 빛과 어둠을 인간에게 주어 축복한다. 인간은 자신의 축복을 잊고 간교한 동물의 계략과 결탁하여 타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씻을 수 없는 인간의 교만이다. 조물주의 증오를 자초한 인간의 허상이였다.

박방곤씨는 그렇게 어쩌면 자신들의 긍지의 원천으로 존경하던 아버지를 어릴 적 그의 사춘기도 이전에 사별한다. 이상과 목적, 이러한 어려운 단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어머니의 용기와 절제는 박방곤씨, 그에게는 거목(巨木)의 자기제어(自己制御) 그것 이였다. 그것은 인간의 아무나 지닐 수 없는 큰 덕(德)이였다.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였고, 잊을 수 없는 그의 마음의 스승으로 그의 평생에 그의 가슴에 응어리로 간직되어 있다. 초로인생(草露人生), 인간의 덧없음이 이슬과 같다던가. 이렇게 박방곤씨의 초로인생에 그림자가 드리워 진다.
그의 일곱 남매는 어머니를 따라서, 소개되는 피난민 마냥 남부여대(男負女戴) 부산으로 이주한다. 그 후 일곱 남매의 후일담이라거나 집안의 영고성쇠(榮枯盛衰)에 관하여는 쓰지 않기로 하겠거니와 박방곤씨가 극구 사양하며 들려주는 두 분 부모님에 관한, 그들에 대한 교육방법과 교육열, 그리고 교육관에 대하여는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귀감의 본보기로 남아 있음이다. 그 점에 관하여 박방곤씨는 한마디로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들려준다.

초등학교를 백운에서 졸업하고 부산이거나 전주이거나, 부산에서 그는 그의 긍지를 걸고 그의 운명에 도전한다. 그가 초등학교 이후 각종 상급학교의 진학에 검정고시를 통하여 그 뜻을 이루었다는 것도 어쩌면 그런 것 이였다. 전자대리점으로 몇 년간을, 또는 체육관의 전문 사범으로, 한 시대 또 하나의 유혹의 늪에서 방황하던 그 시절이거나, 제법 모양새 있었던 가든의 능력 있었던 경영인으로서 활동하면서 어둠과 방황과 유혹을 참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영혼에 잠재하여 있었던 믿음의 힘 이였다.
진리가 주님 안에 있음을 그는 확신한다고 했다.

70년대 목회자의 꿈을 안고 전주한일신학대학에서 진리탐구에 정진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 그의 영혼에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가 함께 꿈틀댄다고 한다. 그렇게 흘러간 10년의 방황을 청산하고 장로회총회신학대학에 다시 잃어버린 목회자의 문을 두드린다. 진리는 끝내 자신의 편이 아님을 그가 깨닫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였다.
총명이 어두어 지고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지므로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한탄하는 하늘의 탄식을 그가 들은 것이다.
연민의 설움이 그의 가슴에 더 설운 연민으로 겹쳐왔다.

잡초같이 살아남은 인생이 복되지 못하다 하더라도 주님의 종 된 그 믿음을 그냥 간직하기로 했다.
지나간 세월을 망각하지 말고, 오는 세월의 어둠에 빠지지 말기로 하였단다. 속절없는 원망의 세월 대신 씩씩한 삶에 순응하기로 하였단다. 성실하게 매사에 감사하는 생활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세 딸의 아버지 박방곤씨. 스물다섯 살에 만나서 온갖 풍상 함께하며 반려해 온 그의 아내 이윤임(주천출신, 47세)씨에게 한 다발 국화꽃을 바친다고 했다.

그가 그의 부모님의 세월을 존경 하였듯이, 그들 세 딸이 그를 존경하는 아버지로 그의 앞날을 지켜 볼 것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박방곤 H.P ; 010-6585-8600)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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