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올 겨울엔 도서관이나 파먹을까?’(11)

▲ 지음: 이어령, 출판: 생각의 나무
지음 : 이어령
출판 : 생각의 나무

디지로그라는 용어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쳐 새롭게 만든 말이다.
이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합재한 시계같은 것을 가리키는 기술적인 용어가 아닌 좀 더 넓은 의미의 IT전반의 문명현상을 담고 있는 키워드이다.
요즘 ‘문화의 집’ 컴퓨터강좌의 교육생 연령대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저걸 배워 언제 써먹겠냐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던 세대들이 책상 앞에 앉아 진지하게 배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필요악인가 소외당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인가 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은 먼먼 조상 때부터 이미 디지로그의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는 걸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들에서 찾아 논증을 펼친다.

무엇이든 먹는다는 말로 표현하는 언어의 뿌리- 떡국도 먹고, 나이도 먹고, 돈도 먹고, 시간도 먹고, 마음도 먹고, 여자도 따먹고, 골도 먹는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 중, 일, 중에도 우리네의 젓가락문화는 또 다르다.
인스턴트식품이 식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어도 여전히 우리네 식탁에는 쌀밥과 김치, 나물요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문화의 특징인 씹는 문화, 삭힘의 문화가 미래사회인 디지털사회에서 강점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화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IT는 진공청소기처럼 무섭게 아날로그적인 것을 빨아드리고 있지만 문화는 오래된 식성처럼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기술이 바뀌면 사회가 변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기술결정론의 허구다. 새로운 기술이나 발명품이 나와도 그것을 옛 개념으로 사용하는 한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말 없는 마차’라 불렀다. 엔진의 힘을 마력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개념이다.
정보가 샌다, 정보를 캔다, 정보를 맡았다는 표현도 그런 원시적 감각의 산물이다. 이런 개념을 새로운 개념으로 바꾸면 정보는 액체도 고체도 아닌 공기라고 말할 수 있다. 공기는 공유는 해도 독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가치는 있어도 가격은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정보다.

빌게이츠로 대표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모델은 진정한 IT의 미래가 아니다 정보지식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고 참여하는 기쁨에 있는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준 리눅스가 시사하는 것이 산업자본주의의 옛 패러다임에 근거한 IT산업의 거품이었다
20대의 핀란드대학생인 ‘리누스토발즈’는 MS윈도에 맞서는 운영체제를 만들고도 이를 인터넷상에 무상으로 공급해 버렸다.

리눅스는 정보가 상생의 정신과 상호의존관계의 구조속에 자생적으로 자기조직화하는 공기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실천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신은 일찍부터 우리에겐 자연스럽게 전해 내려온 문화였던 것이다. 새로운 문명을 추구하면서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려는 두 가지 모순을 조화시킬 수 있는 문화의 저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신화부터 성경, 에디슨에 이르기까지 유려한 길안내를 한다.

병이 든 공주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세 왕자가 가진 저마다의 보물 천리안,천리마, 불사약 중에 공주에게 먹여 없어진 불사약을 가져온 왕자를 부마로삼아야 한다는 소유가 이제는 접속의 시대로 전환되었음을 이해시키며 한국인만이 농경, 산업, 정보의 세 왕자를 동시에 데리고 산다고 한다.
드디어 진입하게 된 주 5일의 경제모델을 자랑하지 말자.

하루 일하고 하루 쉬던 구석기시대의 삶의 리듬을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기능은 발전하고 효율은 후퇴한 20세기 산업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구석기시대의 삶의 리듬을 다시 재현하려는 꿈인 것이다.
모든 것을 이분화 하고 구별하는 서양과는 달리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하여 통합해내는 문화를 가졌다는 것은 서로 어울려 보완하고 나누지 않으면 도태당할 수밖에 없는 다가오는 IT의 미래사회에 선도자가 될 수 있는 강점임을 자각해야 한다.

발명왕 에디슨은 처음 축음기를 발명하고도 그것을 단지 소리의 재생이라는 기술적인 면에만 머무르는 콘텐츠의 부족으로 전화기를 발명한 벨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진안을 비롯한 시골지역에 들어서는 근사한 무슨무슨 시설물들을 보면 말이다.

소프트마인드가 없는 외형은 더 이상 세워지지 않았으면, 대신에 그런 자본을 잠자고 있는 각자의 가능성을 깨울 수 있는 쪽으로 투자해주면 좋지 않을까 했던 아쉬움이 다시 고개를 든다.
아들에게도, 며느리에게도 비법을 전수해주지 않아 대가 끊기고 만 ‘청기와장수’ 이야기는 우리민족의 속 좁은 이기심이 아니라 그 비법을 보호발전시킬 줄 몰랐던 정부의 부실함에 책임이 있다. 제법 안다고 하는 지식인들도 미국헌법 제 1조에 특허법이 들어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고 하니 우리의 기술이 뒤쳐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어디에 있었던가.

정보라는 말도 情報이니 비트의 세상에는 정이 없다. 정보가 아무리 많으면 뭐하나. 거기에 믿음이 없다면, 전화로 실컨 수다를 떨고도‘ 이따 만나서 이야기 하자’는 우리들. 그렇기 때문에 정보의 미래는 그 결핍된 정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결정난다. 우리는 정이 많은 민족이 아니더냐. 암튼 이어령씨 언제나 쉽게 설명하면서 자긍심도 함께 높여주는 분이란 믿음 다시 확인하게 한 책이다. 미래를 준비하고 싶다면 함께 할 미래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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