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올 겨울엔 도서관이나 파먹을까?’(12)

▲ 지음 : 에릭두르슈미트, 옮김 : 방대수, 출판 : 이다미디어
지음 : 에릭두르슈미트
옮김 : 방대수
출판 : 이다미디어

사람들은 말한다. 인류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한 인간의 수는 마침내 ‘인간폭탄’ 이라는 말로 그 재앙을 지칭하게 되었고 다행히도(?) 그 폭탄은 인간들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조절되어 왔다고, 과연 그것뿐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눈을 인간에게만 돌리려 한다면, 그. 러. 나...
천재지변과 날씨는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고대 로마 군단의 괴멸에서부터 인류최초의 원자폭탄 투하에 이르기까지 그 목록은 끝이 없다. 기원전 5600년 전에 인류의 역사에 관계해온 대홍수로부터 시작된 그 영향은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내가 이제 땅위에 폭우를 쏟으리라 홍수를 내어 하늘 아래 숨쉬는 동물은 다 쓸어버리리라” 창세기는 날씨가 신의 무기임을 이미 선포했으나 인간은 전쟁 속에서 그 신의 무기를 향해 기도하는 일을 종종 잊어 버렸다. 그리고 그 기도는 항상 나중에야 올리게 되었다.
서기 9년 ‘팍스 로마나’를 구가해온 로마는 게르만족을 침입했다.
수적우세와 준비된 공격은 거듭되는 승리를 로마에 안겨주었고, 패배와 후퇴라는 불명예스러운 치욕 앞에선 게르만족 사이의 마지막 결전은 운명의 수순이다. 그 결전이 벌어지려는 찰나, 번개와 폭풍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신은 게르만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로마군에게는 격렬한 신의 분노만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이 두 번째 인간의 역사에 개입한 신의 흔적이다.

1270년 대 중국을 통일한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은 작은 섬나라가 자신에게 ‘알아서 길 것’을 청하는 사신을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대륙의 침공을 알리는 서막의 나팔소리였다. 칸은 새로운 정복자 앞에 ‘군주와 그 백성들이 짐에게 감사를 표하고 짐의 나라를 방문한’ 알아서 기는 고려와 다른 종자라는 것을 몰랐다. 섬나라 일본은 지고 있는 천황의 나라가 아니라 무사의 나라 막부 쇼군의 나라였던 것을.
몽골의 기병들이 달려가는 말위에서도 백발백중인 석궁으로 낮의 승리를 밤이 되면 무사정신이 휘두르는 살상력 뛰어난 사무라이의 검이 승리자였다. 결국 원은 퇴각하는데 일본의 신은 그런 오만불손한 원을 고히 돌려보내길 원치 않았다. 뱃머리를 돌린 원 앞에 비와 바람과 폭풍을 보냈다. 이것은 신의 경고였음에도 원은 두 번째의 총력을 기울인 침공을 준비했고 다시 신의 바람 앞에 철저히 엎드려야 했다. 신의 바람-’카미카제’의 신화가 탄생되던 역사적 순간이었다.
러시아의 동장군을 무시한 나폴레옹의 무모한 패배의 길을 25년 후 히틀러가 되풀이 했던 건 무얼 말해주는 것일까

영하 4-50도로 내려가는 러시아에서 여름군복을 입고 동상에 얼어 죽은 숫자가 전쟁에 죽은 것보다 더 많았고, 적을 향해 달리다 죽은말보다 진창에 빠져 그대로 목표물이 되어 죽어간 말이 더 많았던 알프스전쟁은 그러니 뒤를 이은 전쟁미치광이 히틀러에게 아무런 경계도 줄 수 없었다. 남의 실패를 자신의 승리로 바꿀 수 있는 인간이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신은 전쟁에서 어느 편인가의 손을 들어주는 게 아니다
한 점의 바람이 몰고 온 한 개의 감자병이 아일랜드 전체의 기근을 가져오고 굶주림은 전염병을 달고 오는 일련의 재앙에 신은 인간이 좀더 다른 인간에게 너그러워지기를 원했다. 특히 지주인 영국인들이 그들의 소작인인 아일랜드들을 굶겨죽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신의 뜻을 읽기에는 올려다보는 눈이 너무 낮았다. 같은 인간에게 외면당한 아일랜드인은 나라를 버리고 북아메리카로 밀려들었다. 마침내 북아메리카에서 그들을 막았을 때에야 아일랜드는 그나마 존속할 수 있었다.

역사읽기는 되풀이되는 실수를 줄여보자는 인간들의 지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아주 조금씩만 그리고 천천히 지혜로워 지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우리세기에 일어난 베트남전이 그걸 증명해 주는데. ‘우리도 장악하지 못한 산악지는 적들에게도 또한 마찬가지일 것’ 이라는 논리로 프랑스는 군수품 기지로부터 300km 나떨어진 산악지대로 둘러싸인 곳에 진지를 치면서 베트남에 총을 들이 댄다. 그러나 베트민군은 고지대까지 포위공격을 할 뿐 아니라 쿨리의 등으로 탄약, 군수품, 포탄까지 도 져 나른다. 게다가 이번에도 신의손길- 몬순기후의 비가 내리고 구름 장막이 계곡을 덮었다. 결국 프랑스는 항복했고 굴욕적인 뒷모습을 남기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길을 다시 미국이 따라 걸었다.
인간의 어리석음. 우리는 역사에서 그것을 보지만 그 어리석은 자가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어리석음.

그 기후에서 살아온 베트민들은 날씨의 신을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돌릴 수 있으나 이방인에게는 재앙이라는 것은 미국의 베트남 전에도 증명된다.
세게 최고의 전투 장비를 갖춘 미국이 다 한방에 쓸어버리겠다고 다낭해안에 상륙한 것은 미국의 젊은이들과 종속된 다른 나라 젊은이들의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일이라는 걸 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
아직도 이라크에서 솟아오르는 포연과 자살테러의 소식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이라크 전에서 날씨의 신은 누구 편을 들고 있을까?
오랜 전쟁을 통해서 이제 인간은 신의 영역에 개입하려 한다. 바벨의 종말을 보면서도 인간은 그것만이 길이 아니었다고 외친다.

다가올 새로운 세기의 전쟁은 지구물리학적 전투가 될 것이고 군대는 적과 마주칠 일없이 블랙박스 안에서 번개로 발사하면 되는 전사들의 전쟁이 될 것이다.
그들이 구사하는 전략은 이미 신이 써 먹은 수법- 대홍수, 대양해류변경, 열대폭풍의 진행방향, 대기에 구멍내기, 인위적으로 유도한 지진 등이다
2025년에는 예상세계인구가 90억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쟁광들은 과학자들을 동원하여, 지나온 전쟁에서 얻어낸 경험들에 착안한 신개발무기-자연적 기후형태를 소규모로 변경하여 인위적으로 이용하는- 를 연구하고 있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정말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지, 어설픈 마법사의 제자꼴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자명한 것은 우리는 진보를 멈출 수는 없지만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평화를 위해서라면 진보를 보류할 수도 있어야 한다.
입고 나갈 옷을 염두에 두고 궁금해 하는 날씨에 이렇게 거대한 의미의 교훈이 담겨 있다.
그저 우리는 하늘을 보고 기도나 해야 되는 걸까?
오늘의 날씨는 누구 편을 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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