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로 선 진안 [4]
주천면 작은싸리재~태평봉수대

▲ 태평봉수대 정상에 오른 일행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두발로 선 진안 네 번째 산행이 지난 24일(토) 있었습니다. 이번 산행은 주천면 대불리 작은싸리재에서 시작해 태평봉수대(전라북도 기념물 36호)에 올랐습니다. 비록 고르지 못한 일기로 인해 순탄치 못한 산행이었지만 특별한 느낌을 주었던, 모두의 기억에 남는 산행이 되었습니다. 이날은 주천면의 백문수(구봉산 가든)씨의 안내로 김치병, 김영자, 허영희, 임순옥(용담 전원교회), 박주홍, 오정임(정천우체국)씨와 김성은(용담중 1), 백다영(주천초 6)양이 함께 했습니다.

사정으로 인해 2월달 두발로 선 진안 산행이 취소되고 올해 두 번째로 계획된 산행은 산을 오르기 전부터 걱정이었다. 24일 전날까지만 해도 따뜻한 봄 날씨의 연속이더니 토요일 아침부터는 비 소식이다.
과연 산에 오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안고, 그래도 많은 비가 아니니 한번 올라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3월 두발로 선 진안 산행을 시작했다.

◆즐거운 추억 쌓기
이번 산행에 참가한 일행들이 운일암 반일암을 지나 중리마을에 들어섰다. 화창한 날씨였다면 마을입구에서 시작했어야 할 산행을 우중으로 인해 작은싸리재까지는 차를 타고 오르기로 했다.
각자 자동차를 이용해 비로 진흙투성이가 돼버린 비포장도로를 지나 더 이상 승용차로는 올라갈 수 없다는 말에 배낭과 비옷을 챙겨 트럭 뒷자리로 옮겨 탔다.
덜컹 덜컹, 매끄럽지 않은 고갯길에 몸 가누기도 쉽지 않고, 쉬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로 트럭 뒷자리에 앉아 가기도 마냥 순탄치만은 않다.
“십대 이후로 비 맞아 보기는 처음이네”
“오늘 아니면 또 언제 비 맞고 산에 가겠어”
일행들에게 비 내리는 날 산행은 또 다른 추억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 생강나무
◆구비구비 고개 넘어
고갯길을 가운데로 야트막한 산등성이들이 솟아 있다. 산등성이 위로는 촉촉한 물기 머금은 이름 모를 꽃나무도, 파릇 파릇 새싹도 자리하고 있다. 춘분이 지나고 어느새 봄.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안개가 자욱하다. 아래로 일행들이 지나온 고갯길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싸리재 정상까지 고갯길이 꽤 길게 이어져 있다.
중턱쯤이었을까, 잘 지은 가옥 한 채가 눈에 띈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이 곳에 누군가는 집을 짓고 삶의 터전을 마련해가고 있나 보다. 그리고 그 옆에는 흙벽돌집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어디서 많이 본 집이라고 생각했더니 지난 본보 9일자 신문에 소개되었던 원영훈 경장의 보금자리였나보다.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원 경장이 어서 빨리 완쾌되어 손수 만든 집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길 빌어본다.

▲ 울퉁불퉁한 천연의 암반 위에 잡석으로 쌓아올린 봉수대는 사각형으로 높이는 4~5m이다. 삼국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원래의 봉수대에 조선 선조 28년(1595) 임진왜란 때 태평산성과 전주의 감영에 신호를 보내기 위해 다시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남쪽 일부가 무너져 있을 뿐 전체적으로 원래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역사의 흔적
주천면 대불리에는 작은싸리재와 더불어 큰싸리재도 함께 있다. 싸리재의 큰 고개, 작은 고개로 붙여진 이름으로 큰싸리재는 완주군 동상면 대야리로 넘어가며 작은싸리재는 진등 북쪽으로 완주군 운주면으로 넘어간다.
이날 작은싸리재까지 함께 동행한 박찬성(60)씨의 말에 따르면 이 고개를 넘어가면 대둔산이며 금산군의 육백고지와도 연결되어 있단다.
작은싸리재 정상까지는 트럭을 통해 이동한 일행들이 태평봉수대에 오르기 위해 준비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이른 아침부터 내린 비로 인해 처음 시작부터가 쉽지 않다. 지난해 가을부터 쌓인 낙엽과 젖어있는 산길이 쉬이 발걸음을 빨리 옮겨놓지 못하게 한다. 처음 한 두군데 빼고 봉수대 오르는 길은 시종 오르막이다.
얼마를 올랐을까, 일행들 앞에서 봉수대에 다 왔다는 소리가 들린다. 주위론 뿌연 안개덕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리, 그곳에 태평봉수대가 있었다.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는 봉수대. 태평봉수대는 삼국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추정되고 있으며 조선 선조때 고쳐 쌓았다고 한다. 남쪽의 고달산 방면과 동쪽의 장수 장안산 방면에서 봉수를 받아 운주, 탄현으로 전하는 중요한 곳이었던 곳. 전체적으로 원래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태평봉수대를 보면서 해발 830m까지 어떻게 이처럼 큰 돌들을 날라 쌓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날씨만 좋았어도 이 곳에서 내려다보면 전주도 보이고 운장산 능선도 볼 수 있어요.” 안내를 맡아 오른 백문수씨의 말처럼 화창한 날씨에 올랐더라면 확 트인 공간과 깨어나는 봄기운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었을텐데 비로 인해 흐린 날씨가 살짝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길고 긴 하산길
조심 조심, 오를 때보다 힘겨운 하산길이다. 어느새 신발과 옷은 흙투성이고 일행 중 한사람이라도 넘어져 다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봉수대에 오를 때 봤던 생강나무와 제비꽃을 다시 만나고 내려올수록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정상을 뒤로한 채 그렇게 이번 산행을 마무리했다.
다음달 산행은 꼭 화창한 날씨 속에, 화사한 봄꽃이 만발한 곳으로 산행을 하리라 다짐하면서...

나에게 추억을 준 산행


산에 갈 수 있으려나...

걱정스레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늦장을 부리다가 산이 그리 험하지 않으니 올라갈 수 있다고 하시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김밥을 싸고 가방을 둘러메고 나섰습니다. 어찌 그리도 분주하던지...

이번 산행은 고지가 나자 오르기 쉽다고, 아마도 가까운 야산에 오르는 듯. 부담스럽지 않고 산책하는 느낌일 거라고 했습니다.

 

비를 맞으며 운장산을 만나러 드디어 출발했습니다.

앞사람을 놓칠세라 바짝 뒤를 쫓으며 산을 올라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험난한 빗길 산행은 계속 이어지는데... 빗줄기를 타면서 기어가고 넘어지고 어찌 가다보니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죠.

제 발 아래 비구름에 덮여있는 산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쯤 올라와 있는 건지조차 분간이 안 되지만 여기는 분명 정상입니다.

 

봉수대에서 초코파이 한 입을 베어 무니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는 근사한 맛입니다.

운장산에서 생강나무를 봤습니다. 작고 노란 꽃을 피운 게 산수유와 비슷하게 생겼더라고요. 그리고 또 굴참나무도 봤습니다. 그것의 열매는 마치 도토리와 같이 생겨서 기념 삼아 하나 집어올까 하다가 다람쥐들이 겨우살이 식량일거란 생각이 들어 도로 놓고 왔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은 쉬웠습니다. 누가 다녀갔나 리본들에 써 있는 산악회 이름들도 들여다보고 낙엽사이에 고개를 내민 새싹들과 눈인사도 하고, 운장산에 찾아 온 봄기운을 맡으며 내려왔습니다.

비를 맞으며 힘들게 내려온 산을 뒤돌아보니 제가 무척이나 대단해 보입니다.

 

산에 오를 때는 비와 땀이 범벅이 되어 추운 줄 몰랐는데 이제 슬슬~ 몸이 떨려오는 것이 춥습니다. 옷도 흠뻑 젖었고, 신발도 흠뻑 젖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털털~ 거리는 트럭을 타고 오른던 길... 트럭이 하도 덜컹거리니까 바깥으로 튕겨 나갈까봐 지나가는 경치를 제대로 볼 여유도 없이 꽉 붙들고 있기만 했었답니다.

오돌 오돌~ 떨면서 먹은 김밥...

너무 추웠고 김밥 한 줄에 허기진 배를 채울 수가 없었어요. 따끈한 국물이 절로 생각나는 배고픈 시간이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운일암 반일암은 참으로 놀라운 빼어난 경치들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경치를 놓칠세라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보다가 올 여름 내가 다시 너를 만나러 오리라 약속도 했더랬지요.

 

어른들은 비 오는 날의 산행을 우중 산행이라고 하더군요. 이보다 더한 날씨인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도 산에 왔다면서 산에 오를 때마다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는데 다들 정말 프로 같아 보이시더라구요.

두발로 선 진안!

산행에 끼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 달엔 어느 산엘 가시나요? 다음 달에도 끼워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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