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올 봄, 진안고을 사람들 책바람이나 나볼까?"(16)

▲ 오르페우스 지음, 허유영 옮김
봄비님이 내리시더니 개울물 소리가 제법 크다. 눈 들어 밤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 빛난다. 내가 보는 저 별빛은 얼마나 오래 전 우리별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던 빛일까. 몇 억 광년 전에 쏘아졌을 저 빛, 저 빛을 발하던 임자별은 지금은 까마득히 우주너머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 .

어느 별에서 지금 나처럼 우리별을 쳐다보며 아득한 먼 거리에 숨 쉬고 있는 다른 생명체를 궁금해 하는 아이 하나 그아이가 품은 궁금증. 끝도 없는그 궁금증. 어릴 적 하늘 올려다보며 해보던 생각을 어른 된 지금도 가끔 하게 되는 게 시골 생활이다. 별이 보이니 잊혀졌던 그 생각이 떠오르고 유년의 꿈도 살아 나온다

중력이 없는 별도 있을 것이다. 그 별에서는 모든 생명들이 날아다닐 것이 틀림없다. 작가의 상상력에 함께 하는 기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날아다니는 자태 또한 생명체마다 달라 더 빼어나게 아름다운 자태가 있을 것이다. 그런 자태라면 그들 또한 미인에 넋이 팔린 우리처럼 동작 그만인 채 얼이 빠져서 멍하니 바라볼 것이다.

정작 나는 모습이 예쁜 그 소녀는 날아다니는 것보다 땅에 발을 붙이고 서서 직접 땅을 느끼고 싶다. 걸음이란 걸 걷고 싶은 나머지 우리별에 옮겨와 걸음을 배우게 된다. 날아다니는 것과 두발로 걷는 것 사이에 그런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소녀의 눈을 통해 알게 되는 순간이다. 날아다닐 때는 서로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볼 수가 없었다. 당신의 눈동자는 어떤 색인지, 웃는 입모습은 어떠한지, 눈가에 잡히는 주름은 어떻게 물결치는지 소녀에겐 모든 것이 새롭다.

걸음을 배우던 그 소녀 오래지않아 고향별 생각이 나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늦다. 걷기를 배우며 나는 걸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지구별에서 걸음을 가르쳐준 친구가 된 소녀의 눈물 때문이었다. 처음 본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떨어지며 부서지는 그 미세한 파장에 발길을 묶여버린 것이다. 눈물. 흠흠, 눈물은 많은 것을 가능케 하지만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마술의 물임이 틀림없다.

기억의 별이라는 누메르별에는 어린아이를 제외하고는 살아있는 생명체중에서 사람의 기억력이 제일 나쁘다. 강아지도 30초 정도는 기억할 수 있고 원숭이는 강아지보다 기억력이 좋아 기억이 며칠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사람들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잘 다룰 수 있으니까. 그 컴퓨터 안에 모든 기억파일이 들어있다. 이제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서 죽어가도 컴퓨터 칩을 켜보기 전에는 슬픔을 느끼지도 울지 도 않는다. 그가 누군지 나와 어떤 관계인지 기억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기억을 복사한 자료를 열기 전에는 사람들은 만나도 '오늘 햇빛이 좋군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등의 대화밖에 나눌 수가 없다.

어디로 우리를 데려가는지 모르는 과학적 탐구가 가져올 미래.

팽창을 거듭하던 X별이 어느 날 폭발했다. 근처에 블랙홀이 떠있다. 그 별을 연구하는 것이 타니카플별의 국가사업. 당연히 연구자들과 수뇌들만이 가진 대외비. 그러나 과학자들은 진실이 두렵다. 블랙홀을 연구하는 중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별이 이미 블랙홀로 끌려들어가 모든 것이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하나 둘 실험실을 떠나고, 그들은 떠나서도 이 비밀을 말할 수 없다. 오직 숨어사는 것만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길이다. 그 연구가 은하계 전체를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빛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실험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타니카플별. 우리 지구별의 또 다른 얼굴.

오직 길로만 이루어진 별에서 사람들은 길에서 먹고 길에서 자고 길에서 생활하는 일이 이미 익숙하다. 날씨도 길에서 지내도 될 만큼 따뜻한 이별에서 길 끝에 있는 건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이 찾아낸 건물들 속엔 어른들이 두고 온 과거가 있다. 찾아내긴 했지만 어린소녀들은 이미 그 건물 속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답습은 도전이나 모험보다 더 쉽게 가는 길이니까.

4차원의 별에선 미래도 과거도 없다.

눈앞에 지나간 과거가 다시 펼쳐지고, 다가올 미래가 예고 없이 미리 보여 진다. 떠다니는 일상 그리고 시간은 지리멸렬하게 흐른다. 당연히 현재도 없는 삶이 뒤섞여 흐른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과거에 집착하지 마라. 미래를 저당 잡히지 마라. 현재에 살고 현재에 죽을 일이다? 철학자인 작가가 던져준 화두를 들고 쩔쩔맬까봐 갈피에 바나나 껍질 하나 던져두었다.

커피콩 증식을 위한 실험이 진행중인 A 별, 커피콩의 생식속도가 너무 빨라 실험실과 창고를 벗어나 길에도 까만 커피콩이 뒤덮인다. 정부는 대책을 논의하고 커피콩의 유익에 관한 대대적인 홍보, 그리고 산업전반에 커피콩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축복이었을까? 잔디 대신 커피가 깔린 정원, 커피로 이를 닦는 건 흔한 일이 돼버렸다. 자동차가 지나가고 나면 거리엔 커피향이 가득 찬다. 모든 접대는 커피로, 20 잔의 아주 진한 접대용 커피를 마신 남자는 애인앞에서 한마디도 할 수 없다. 커피가 날려버린 잠이 그의 눈을 몽롱하게 만들었고 애인은 그런 눈을 가진 남자에게 이별을 선고한다. 가히 과잉생산의 재앙을 예고하는 동화다. 유전자조작의 진위여부에 불안해 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비꼬임. 어찌 커피뿐이랴, 어느 날 실험실의 저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이미 인공두뇌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는 평범한 구조가 되어 가고 있는데.

날마다 축제 속에 사는 별 가운데 있는 폐허가 된 성. 왜 그들은 그 폐허를 애써 외면하려 드는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사는 작은 위선들, 구부려진 공의들.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도망치고 있다. 묻어두고 살 뿐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이 얼마나 작은 세계인지 그러나 그 별이 얼마나 많은 별들과 닿아있는지 내집 다락창의 별을 보며 떠올리는 생각은 부풀었다 줄었다 반짝거린다.

사람이 이루어놓은 문명이라는 업적이 결국은 얼마나 큰 잔해덩어리인지

아니면 다른 별들과의 소통을 열어줄 키가 될는지 나의 다락방 창문에 떠 있는 별들 보며 외성별 소녀 기다리다가 잠을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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