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 중궁마을 전쟁 사망자 추모
부귀 중궁마을 전쟁 사망자 추모
  • 박종일 기자
  • 승인 2007.04.2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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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사변 당시 북한군에게 목숨을 잃은 주민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행사가 지난 21일(음력 5월 3일) 부귀면 궁항리 중궁마을 활목골에 위치한 충의혼비에서 거행됐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이종신 부귀면장, 정종옥 부귀농협 조합장 등 각 기관단체 및 유가족, 마을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숙연한 분위기와 엄숙함 속에서 진행됐다.

충의혼비는 1951년 9월 28일 북한군이 퇴로가 막히자 산악으로 몰려난 뒤 굶주림 배를 채우기 위해 마을로 내려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악행을 저질렀다.
그로인해 궁항리 마을 주민 105명은 무참하게 몰살당했으며, 마을 주민 가운데는 멸문을 당해 아픔을 겪었다. 그 후 사망자의 넋을 기리고자 충의혼비가 세워졌다.

박정순(74)씨는 “북한군은 당시 새벽 4시에 마을을 포위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다.”라면서 “이후 마을에는 집안이 멸문당하고, 중궁과 상궁, 정수암 등 모든 마을 가옥이 전소됐다.”라고 말했다.
당시 태어나기 전에 북한군에게 아버지를 잃은 배수철씨는 정삼례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저를 임신한 어머니께서는 북한군에게 붙들려 운장산으로 올라가는데 한눈을 파는 순간에 논두렁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었대요.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저를 낳았다고 들었어요.”

부모를 모두 잃고 목숨을 유지하게 된 박순례(73·정천면 문화마을)씨와 박덕순(67·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씨 자매는 수양딸로 헤어지고난 후 10년 만에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상황은 쑥밭이 되었다고 보시면 되요. 제가 11살이고 언니가 17살 때 이었어요. 아버지는 총을 맞고, 어머니는 창에 찔려 돌아가셨어요. 언니는 당시 고막이 터져 잘 못 알아듣고, 집이 모두 타는 바람에 부모님 사진 한 장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를 세워 마을 주민들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한편 마을 주민들은 충의혼비가 초라하게 보존되는 것 보다 105명의 영령을 위해 재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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