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올 봄, 진안고을 사람들 책바람이나 나볼까?"(21)

▲ 지음 : 리처드P. 파인만, 옮김 : 김희봉, 출판 : 사이언스북스
파인만의 아버지는 제복장사를 했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태도는 권위와 겉치레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 동안 권위를 조롱하며 살았다.

브라질의 과학아카데미에 가기 전에 그는 포르투칼어를 배운다. 발표할 원고도 포르투칼어로 준비한다. 막상 학회가 열리고 모든 이들이 영어로 말한다. 그러나 발음은 엉망이어서 알아듣기가 어렵다. 파인만은 준비한 원고를 읽는다. 강의도 포르투칼어로 하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그 학회의 전통이 바뀌게 된다.

그는 삼바밴드가 너무 좋아보여서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다. 거리의 가난한 악사들과 어울리기 위해 드럼을 연습하러 갈 때는 낡은 옷을 입고 간다. 아무도 그가 교수인 걸 모른다. 거리행진을 하던 날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그가 묵던 호텔의 지배인이다.

고매한 물리학 교수님이 여자를 꼬이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한다. 교수님은 대중이 드나드는 술집에 가서 그 노하우를 건달에게 배운다. 배운 대로 그는 써 먹는다. 이윽고 그에게 많은 여자들이 관심을 갖는다. 그는 이런 일도 파인만식으로 즉 공부하는 식으로 익히고 철저한 실험처럼 하나하나 정직하게 현장에서 익혀나간다.

그는 라스베가스를 좋아한다. 그는 도박을 하지 않고 도박하러 오게 하려고 거의 무료로 제공되는 호텔의 식사와, 쇼와,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즐기기만 한다. 거기서 만난 직업 도박사에게 그가 묻는다.

“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해요. 주사위 도박 확률은 0,493밖에 되지 않는데. . . ”

“아주 쉬워요. 판 주위에 서 있으면. . 나는 모든 숫자에 대한 확률을 알고 있죠. . 나는 판에 돈을 걸지 않아요. 대신에 판 주위에서 편견, 즉 행운의 숫자에 대한 미신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내기를 하죠. 멋지죠?”

파인만은 이제 나는 그를 이해한다. 나는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브라질의 교육이다. 그 이상한 현상은 우리주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나는 아주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내가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즉시 대답한다. 그러나 다음번에 똑 같은 질문을 하면 그들은 전혀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원인도 발견한다. ‘나는 학생들이 모든 것을 암기했지만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학생들은 숙제를 내주어도 절대로 문제를 풀어오지 않는다. 문제를 풀 줄 모르기 때문이다. 파인만은 브라질에는 과학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가 지적한 뛰어난 학생들 몇도 불행하게도 모두 브라질의 교육제도 하에 공부한 학생이 아닌 다른 환경에서 공부한 학생들이었다는 점도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결국 파인만의 보고서를 받은 브라질 국무부 관계자의 반응 또한 아주 낯이 익다.

“ 이것은 순진한 사람을 브라질에 보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야 이런 자는 말썽만 일으킨단 말야”

코넬대학과 캘텍대학 사이에서 거취를 고민할 때 결정을 이끈 것은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에 대한 열정적 탐구와 논의였다. 그 뒤 코넬대학에서 보내온 유리한 조건들과 네 배나 높은 봉급을 거절한 편지는 현대 봉급자들이 새겨야 할 잠언이다

“그 정도의 봉급이면 내가 항상 원해왔던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어여쁜 정부를 얻고, 아파트를 얻어주고, 좋은 물건들을 사주고. . .나는 그 여자를걱정하고, 항상 신경을 쓰겠지요, 집에 오면 말다툼이 벌어지겠지요. 이런 것들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들 것입니다. 나는 물리를 잘 하지 못할 것이고, 내가 항상 바라던 일은 나에게 나쁜 일이기 때문에 나는 이 제안을 거절합니다”

이런 인간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부라는 곳이 어떻게 형식적이고 권위적인지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열 세 번 만 서명하겠다는 다짐 하에 정부강연을 하고 열 네 번 째의 서명을 거절함으로써 결국 강의료를 떼이고 놀려먹는 권위.

그가 어려움을 겪을 때 여동생의 제안을 순순하게 응한 것도 그런 한계를 아는 태도와 맥이 통한다. 이것은 끝까지 유지하는 학문적 태도가 된다.

“다시 학생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논문을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방정식들을 모두 점검하세요 그러면 쉽게 이해하실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토론장에 오면서도 나누어 준 토의내용들을 읽지 않는다. 바쁘기 때문에, 누군가가 읽어왔을 것이므로, 그것을 쓴 사람은 전문가들이므로 다 맞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런 것들이 가져오는 폐단은 아직도 우리사회의 곳곳에서 누적이 되어 흐름을 막고 있다. 교과서를 정하는 심사위원을 맡은 그는 단번에 이런 고질병을 알아낸다.

라디오를 고치는 아이에서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이며 노벨물리학상을 맏은 학자이며 삼바드럼을 치는 연주자, 개인전을 열기도 한 화가이며 여자들과 놀기를 좋아하고 꿈꾸어 온 치기 가득한 보통 남자인 파인만.

2차 대전 때 남태평양에 비행기가 많은 물자들을 내려주었다. 사람들은 다시 비행기가 오기를 바라며 그 때 상황과 똑같은 모형들을 갖추고(꼭 필요한 비행기만 없는) 기다리는 의식을 행하는데서 비롯되는 카고 컬트 (cargo cult)과학의 헛점을 지적한다.

“ 과학자로 처신할 때 당신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기가 하는 일을 정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 다음에 그들이 자기연구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그들 자신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나는 책의 중간쯤부터 그의 참회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무심코 중얼거리는 말.

“ 사 즉 필생이요, 생 즉 필멸이라,”

살기 연연하여 의리를 굽히고 자리 연연하여 학문적 진리를 구부리는 자여,

자신이 굽히고 구부린 의리와 진리가 네 다리를 걸어 내릴 것인즉, 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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