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올 봄, 진안고을 사람들 책바람이나 나볼까?(22)

▲ 지음: 송영, 출판: 문학수첩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책맛을 들인 뒤 책 하면 내겐 소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소설속에서 건지는 설화적이고 토막난 지식들의 꿰미로 내 옹색한 지식의 방을 채웠고 그걸 밑천 삼아 아는 체 하고 살았다. 자연스럽게 소설가가 될 거라고 스스로 택한 수업은 작가별로 작품을 섭렵하는 것이었다. 이런 내가 언젠가부터 의식적으로 인문학 계열의 책들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그만큼 차분해졌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일은 감상만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고 소설로 돌려지는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그랬던 만큼 다시 집어든 소설은 의도적이랄 수도 있겠다. 이젠 젊은이들의 사랑도, 중년의 분위기도 결국은 인류라는 종족의 번식과 존속을 위한 생태적인 고정장치가 아니냐 하는 가벼운 농담조로 사랑을 생각하게 되어버린 나이에 집어든 소설은 내게 무엇을 말해 줄 것 인가.

송영의 이야기들속에서 한 꿰미로 건져 올려지는 것은 소외와 외로움이다.

흔히 소외는 당해지는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송영이 보여주는 소외의 세계는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일부로 현대에는 전반적 사회적인 현상이다. 거기에 근원적인 외로움. 이젠 그것이 일상의 한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대의 우리 삶의 모습이다.

한 때는 모두 외롭다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린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말을 올리는 자는 엄살을 부리는 것이며 아직 삶에 서투른 사람일 뿐이다. 묵묵히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 아니 견딘다는 표현도 엄살이다. 모두가 외로우니까. 모두가 소외속에서 살아가니까.

보험판매인 남자가 어느 날 버려지는 개에게 연민을 느껴 덜컥 제 삶에 받아드린 개를 하루 종일 가두어두어야 하는 상황에서 속죄처럼 행해지는 개와 남자의 새벽의 만찬. 그것을 우연히 바라보게 된 독신녀의 개에 대한 애착도 소외와 외로움을 벗어나게 하지 못한다.

출장을 가면서 개를 맡겨야 하는 남자와 그 개를 간절히 얻기를 희망한 여자의 사이에 개는 건네어지지만 두 사람사이의 끈은 이어지지 않는다. 집주인을 통해서 개만 옮겨갈 뿐이다.

어린 시절 스스로 가두어 살았던 곳인 염산을 찾는 주인공의 행적에도 아무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달고 나온 탯줄을 여전히 목에 걸고 사는 것일 뿐이다. 기이하고 불온하게 비쳐진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들을 재생버튼으로 돌려보는 주인공은 여전히 과거의 어두움속에 있다.

그는 이제 자신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송영의 작품들은 자잘한 일상속에서 이제는 체화되어 버린 소외와 외로움과 소심함과 비겁함을 들여다보게 한다.

씁쓸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어느 새 녹아 흐르는 외로움의 물기를 느낀다. 모두가 외롭기에, 모두가 소외속에 있기에. 모두가 조금씩 비겁하고 소심하게 살기에 위로를 얻고 조금씩 들려지는 고개를 본다.

모두가 이렇단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미니픽션’ 으로 쓰여진 작은 이야기들 속에 그 희망의 ‘사막의 오솔길’을 본다. 이라크로 향하는 정부차원의 문화적 행사에 참여한 시인 김달이 발견한 흔적뿐인 사막의 오솔길, 그는 그 오솔길을 따라 가보겠다는 엉뚱한 발상을 행동에 옮기는 것으로 희망의 기치를 든다. 돌아오는 길에 그 지점에서 기다리겠다는 황당한 약속만을 남기고 아무런 준비없이 차에서 내려 사막으로 사라진 시인을 찾아가는 동안 남은자들은 분분하다. 대다수의 예측과 우려는 과연 정당한가.

대다수의 보편적인 예상을 뒤엎고 시인은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다. 전보다 더 밝고 환해진 모습으로. 그가 어디에서 무얼 했는지 알아내진 못했지만 그이 표정으로 보아 그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음을 안다. 그리고 이것은 희망을 암시한다.

이것이 소설의 책무가 아닐까.

책읽기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이며 나아가서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일이며 타인을 받아드리는 경험이다. 송영은 타인의 외로움과 소외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모두가 같은 병을 앓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 모두가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나만의 외로움은 아닌 것이다. 나만의 소외는 아닌 것이다. 우리 모두가 외롭고 소심하고 비겁한 작은 사람들이니 누가 누구를 소외하랴,

정치적 쇼 행사 대신 사막의 오솔길을 찾아 나선 시인 김달에 대한 작가의 마침표를 소개하는 것으로 책소개를 마칠까한다.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는 분명히 멋진 시 한편을 얻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창작행위는 실패와 고난의 위험을 안고 미로를 용기있게 걸어가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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