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내 갈등 예방하는 대구 수성구 민원배심원제

글 싣는 순서
행정감시하는 시민모임(옥천살림지킴이)

주민이 만들어가는 예산(광주 주민참여예산)
행정에 참여하는 주민(인천 행정모니터링제)
‣ 민원해결 주민힘으로(대구 수성구 민원배심)
우리의 현주소

1989년 12월 19일 새로운 지방자치법·개정안이 만들어지면서 다시 찾아온 지방자치가 올해로 18년째 접어들고 있다. 1991년 첫 민선 군수와 의원들을 뽑은 후 총 다섯 번의 선거로 지역의 일군을 만들어내며 지방자치의 한 쪽 틀은 견고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지방 자치의 한 틀을 이루고 있는 주민자치는 아직 미약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즈음해서 본지는 우리 고장 ‘진안의 자치’를 심층 분석 진단해보고자 한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여러 주민 참여제도를 둘러보고 주민과 공무원 그리고 의회의 역할에대해 알아보며 ‘우리 고장의 모습에 맞는 진정한 주민 참여제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아보려 한다. 
이번주는 대구 수성구 민원배심제를 찾았다. 지역 민원과 관련해 주민이 적극 개입해 해결점을 모색하는 민주적 방식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

▲ 대구광역시 수성구 배심원제가 배심원단과 민원의 양 당사자인 건축주 그리고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다수의 의견으로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한다.
옳고 그름을 따져보자던 토론의 목적은 어느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또, 그 의견을 지지하는지에 따른 수의 우세로 판단되는 변질이 생긴 것이다. 물론 중심에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게 옳은 것이다’는 진리의 일반론이 있다. 반대편에서는 ‘대중의 오판 가능성’을 주장한다. 언제나 다수의 주장이 옳지만은 않다는 주장이다. 대중도 자기의 판단이 주위의 주장으로 흐려지는 심리의 편승이 발생해 더러는 자기 의견과는 반대되는 의견을 지지하며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등의 해결 방안으로 제3자의 중재가 나오기 시작했다.

12세기경 영국에서 발달한 배심제도는 법률가가 아닌 일반 국민 중에서 지식과 덕망이 높은 몇 사람이 양쪽의 주장을 듣게 한 후 누가 옳은지 판단을 받았다. 이 몇 사람을 배심원단이라 불렀다. 배심원단의 최종 판결도 다수 배심원의 의견을 최종 판결문으로 결정했다. 그 당시 배심원제는 갈등 당사자의 의견을 모두 듣고 다수의 제3자가 조정을 통한 최종 결정을 내림으로서 1인 판단으로 생길 수 있는 오류들을 막을 수 있었다.

지방자치제시행 이후 개인과 집단의 권리 추구가 상당한 힘을 얻으면서 적법한 행정집행이라도 주민의 불편을 초래하거나 주민의 생활권에 피해를 주는 행위는 주민의 반대로 추진하기가 어려워졌다. 허가 신청자와 허가 취소요구자가 민원이라면 더욱 힘들다. 개인의 권리 행사에 따른 권익추구가 또 다른 개인의 행복권에 부딪혀 실행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배심원제를 도입했다. 적법한 허가사항이라 하더라도 주민이 원하지 않거나 주민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사항이라면 행정에서는 허가해주기 전에 주민의 의견을 들어 심의·조정해 민원발생을 미리 방지하자는 것이다. 배심원제는 지역개발과 관련하여 주민 상호 간 이해가 대립하는 민원과 일부 주민들의 억지주장으로 야기되는 민원사항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표
[사례]
2005년 7월 14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1동 성당에서 시설을 증축하겠다는 ‘증축 허가 신청’을 구청에 냈다. 용도지역이 3종일반 주거지역으로 이번 증축공사와 더불어 지하에는 그동안 내부적으로 필요성이 제기된 성직자와 수도자를 위한 납골당을 설치해 종교적으로 안정적인 장례문화를 갖기를 원했다. 건축법이 허용하는 한도를 지킨 것이다.

7월 28일부터 10일간
허가 신청서를 접수한 수성구청은 납골당의 시설이 주민의 민원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행정예고를 하여 주민의견수렴에 들어갔다.

8월 8일
당시 범어 1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의 의견을 모아 “주거지역 내 납골당 설치는 주민정서에 맞지 않으며, 이미지가 실추된다”며 혐오시설 설치의 부당성을 표출했다. 인근 아파트의 입주자들도 “쾌적한 주거환경을 침해하며 교통체증을 유발시킨다”며 관내 초등학교 학부모회와 공동으로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건축주로서는 불만이었다. “이미 건축법이 개정되어 주거지역내 종교집회장에서도 납골당을 설치할 수 있는 법규가 있는데 왜 그러냐”는 것이다. 또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위한 400기의 납골당이므로 성묘객으로 인한 교통체증은 없을 것”이라는 해명과 함께 “준공 후 넓은 녹지공간은 주민들에게 휴식·문화 공간으로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하였다.

8월 22부터 9월 9일까지
당사자의 조정기간을 가졌다. 8월 25일에는 범어 1동 사무소에서 간담회를 가졌고 8월 30일에는 성당을 직접 방문해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아무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9월 14일
배심원제 상정을 의뢰했다. 의뢰서에는 그동안 진행해온 내용과 양 당사자의 주장을 포함하게 된다.

9월 26일
배심원제가 운영되었다. 참석은 배심원 10명과 반대주민 4명, 건축주 2명, 방청객 50명이었다.
먼저, 임시 진행자인 부구청장이 인사 및 제도 설명을 하고 이어 참석한 배심원 중 호선하여 판정관을 선출했다. 이어 판정관의 진행으로 안건을 상정하고 담당 공무원의 제안설명을 듣고 질의하는 순서를 가졌다. 다음은 이해 당사자의 발언을 듣고 질의하는 순서였다. 서로 주장이 첨예한 상황에서 각기 다른 주장을 듣고 합의점을 찾는 가장 중요한 순서이다. 질의까지 마치고 바로 현장으로 이동해 현장을 확인했다. 민첩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현장확인을 다한 후 다시 돌아와 비공개로 배심 회의를 했다. 배심원들의 지혜가 필요한 시간이다. 충분한 논의 끝에 의견을 모아서 판정관이 판정을 내리고 그 판정문에 각 배심원들의 서명을 하고 폐회를 선언했다.
판정은 ‘조건부 허가’이다. “납골당 시설은 이번에 설치하지 말고 순수한 종교집회장으로만
건축도록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건축주가 이 판정에 동의해 갈등은 봉합되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은 2000년 2월 수성구 예규로 민원배심 운영지침을 마련했다. 이후 지난해까지 총 122회의 배심원제를 운영해 228건(재심의포함)의 안건을 처리했다. 2003년 이후 98건 모두가 건축허가에 관련된 안건이었다. 판정은 조건부허가가 대부분이다. 재심의 건을 제외한 총 166건에서 조건부허가판정은 150건이다. 불허가는 13건, 원안 수용은 3건이다. <표1>

대구광역시 수성구청 자치행정과 손상조 배심원제 담당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어차피 양 당사자가 지역에서 어울려 살아야 하는 관계이므로 조정·협의에 가 의지를 보인다”고 말했다. 또, “배심원제는 격한 민원을 예방하기도 하지만 이 제도를 역이용해 행정에서 민원사항에 대해 행정예고를 하면 무조건 반대의견을 내서는 안된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문제에 접근해 조정·협의 해야만 서로 만족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대로의 행정집행에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과거 상황. 법이 주민의 위에 있었다.
이제는 주민의 요구에 의해서, 주민의 행복을 위해서, 주민의 힘으로 법은 조정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주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려 한다”는 말은 선거 연설문에서 찾을 수 있는 말이다.
주민이 불편하다는데 법을 내세워 밀어붙이는 행정과 주민 간의 갈등을 ‘법대로’라며 허가해주고 방관하는 행정은 이제 주민의 가려운 곳 타령에 앞서 주민의 불쾌함을 먼저 생각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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