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황의숙씨
황 의 숙 씨
안천면신괴리괴정부락 출신
『떡 사랑』대표
안천초등학교41회 동창회장 역임
4H구락부안천면연합회장 역임
4H구락부진안군연합회장(75년도) 역임
원미시장상우회장 역임
재경안천면향우회 부회장

괴정마을의 상징인 괴목은 둘레가 일곱 아름이나 된다. 이 나무는 나라에 나쁜 일이 있을 때에는 울어대며, 나뭇잎이 한꺼번에 피면 풍년이 든다 하여 주민들이 좋아 하였다. 괴목나무 아래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들돌이 있어서 백중 날 젊은이들이 힘자랑을 하면서, 큰 돌을 가슴까지 들어 올렸으며, 작은 돌은 가슴에 올려 나무주위를 세 바퀴씩 돌면서 괴성을 지르며 좋아하던 그 시절들. 그 기억이 새삼스럽다. 저 멀리 괴목정이 다리가 지금은 훤하게 넓은 신작로로 뚫려 신괴교를 건너 벼루모탱이 돌아가는 그 길을 지나면서 세월의 그 흔적을 가슴에 느껴본다. 빈터로 남아있는 마을의 옛 집터를 바라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어린 그 시절 아버지의 가난에서 아버지의 슬픔을 읽었고, 아버지의 원망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익혔었다. 아버지, 그 가슴 뭉클한 이름에서 마저 인간의 향기를 잊어버리고 살아 온지 정말 얼마만인가, 나뭇짐 지게를 짊어지고 휘청거리는 발길을 내 딛는 굽은 그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돌려버렸던 그 어린 시절은 왜 또 이리 그리운 것인가. 한 가마에 이천원 하던 보리쌀. 그 한가마 값을 어머니의 장롱에서 훔쳐들고 고향을 떠났던 그 날로부터 한 번도 그 내색 없이 맞아 주시던 그 어머니가 왜 오늘은 또 이리 그리운 것인가. 나란히 모신 그 두 분 아버지 어머니 앞에 엎드려 보는 오늘, 마음은 왜 또 이리도 시려오는 것 일가.

황의숙씨. 1954년생이니까 이제 하늘의 이치를 터득한 그 연륜에 다다른 것을 깨닫고 항상 내 인생이 어쩌면 실패한 그런 것은 아닌가 그렇게 반문하며 살아간다. 편법이 활개치면서 큰 소리 치는 그 세월 속에서 그것으로 대응하던 그 판 속이 결코 슬기로운 방법만은 아니구나 그가 그렇게 깨달았을 때의 허전을 그는 잊지 못한다. 안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렇게도 목마르게 더 계속하고 싶었던 공부를 포기 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그 아픔을 그는 잊을 수가 없다.

강의록으로 몇 년, 그는 어느 인척의 끈을 간신히 잡아 인천의 어느 떡집에서 주경야독의 그 어려운 형설(螢雪;차윤이 반딧불 빛으로 글을 읽고, 손강이 눈빛으로 글을 읽었다는 옛일에서 나온 말.)의 지공(之功)으로 맞서 이겨 나간다. 그렇게 그는 인천 항도중.고등학교의 6년 과정을 2년5개월에 마치는 실력을 보인다. 그렇게 배우고 싶은 그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그의 욕망의 한계를 그가 군 입대의 한계에서 좌절하고 다시 귀향의 길에 주저앉아 시골의 4H활동에서 그의 출구를 찾으려는 의지를 새긴다. 4H운동이란 농촌의 청소년들이 실천을 통하여 배운다는 농심을 미래세대에 키우는 동시에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에의 기여를 목적으로 한 실천적 청소년 사회교육운동이다.

과학적이고 창조적인 두뇌(Head), 성실하고 따뜻한 마음(Heart), 슬기롭게 일하는 손(Hand), 역동적인 건강(Health)의 머리글자를 따 온 말이다. 그러나 황의숙씨 그는 4H안천면연합회장과 4H진안군연합회장을 역임하면서 그의 의지에 한계를 다시 느끼고 이번에는 뜻한바 있어 공무원의 길에 문을 두드린다. 부산에서 학원에 입학하고 두 번씩이나 도전하였지만 역시 역부족임을 그가 다시 깨닫기 까지는 한참이나 걸렸다. 한사코 황의숙씨 그가 다산의 목민심서에 심취되어 자신이 목민관으로서 칙궁과청심, 제기와병객, 절용과낙시의 율기육조(律己六條) 와 양로와자유, 진궁과애상, 관질과구재의 애민육조(愛民六條)의 정책을 펴 보이려던 그의 꿈이 꿈으로 끝이 나던 날, 그는 다시 고향을 세 번째 떠난다.

서울에서 그는 다시 방황하는 마음의 요동을 진정시키는데 많은 시간들을 허비할 처지가 아니였다. (주) 청화기업에서 일년 육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그에게 애당초 그의 객지에서의 본업일 수밖에 없었던 떡집의 향수가 그의 마음속에 찾아 온 것이 어쩌면 팔자소관 같다고 황의숙씨, 그는 너털 웃음으로 넘긴다.
부천 원미시장과 도봉구의 창동에서, 노원구의 중계동에서, 애환의 그 왕십리에서, 그리고 다시 노원구의 상계동에서, 어쩌면 그는 실패한 인생을 살아 온 것만 같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그는 자긍심을 지키려는 피나는 노력으로, 부양가족을 지키려는 악착같은 마음으로, 고향을 사랑하려는 애틋한 충정으로 세상을 살아왔노라고 떳떳하게 대답한다.
남자가 가끔씩 외로워지는 것은 가족들의 대화에서 소외되어 있을 때 이다. 아내는 부엌으로, 아이들은 제각각 제 방으로 흩어져 갈 때, 아, 아, 나의 인생이 실패한 인생이 아닌가 이렇게 자괴감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나 황의숙씨, 그는 단연코 고개를 젓는다. 그는 설흔두살에 만나서 세 아이 낳고 잘 살아 온 그의 아내 윤영옥(52.당진)씨를 사랑한다. 늦게 귀가하여 잠든 아내의 그 곁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는 아내의 얼굴에서 그는 천국의 평화를 배운다고 했다.

우리의 고향사람 황의숙씨.
성공한 인생이 아니면 어뗘랴. 그는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한다. 가서 한데 어울려 그렇게 살고 싶어 한다.
(황의숙씨H.P 011ㅡ278ㅡ9444 )

/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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