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9) 진안읍 죽산리(안머우내, 중말, 어은)

날이 참 변덕스럽다. 밤과 낮 기온차이가 심한 것은 물론이고, 맑았던 하늘이 이내 잔뜩 찌푸리면서 비가 내릴 기세다. 또 바람은 왜 그렇게도 많이 부는지 모르겠다. 봄은 봄인가 보다.
지난 18일에는 진안읍 가장자리 마을 가운데 한 곳인 죽산리를 찾았다. 진안읍에 속해 있으면서 남동쪽으로 장수군 천천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안머우내(내오천), 중말, 어은 세 마을로 이루어진 이곳 주민들은 채 아물지 않은 수해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 마을약도
◆천주교 신자가 이룬 마을
죽산리(竹山里)는 천주교 여면 지역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였던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금의 세 마을을 합해 진안읍에 편입됐다. ‘죽산’이란 마을 이름은 산죽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먼저, 죽산리에서 가장 끝에 있는 어은동을 살펴보자.
‘어은(魚隱)’이란 마을 이름은 고기가 숨어 있다는 뜻인데 이것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형성됐다는 것을 표현한 것 같다. 현재 이 마을에는 28가구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이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진안성당 어은공소가 있는데, 마을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상징적 건축물이다. 등록문화제 28호로 지정된 곳이다.

중말은 행정리상 어은에 속하는 곳으로, 안머우내와 어은동 중간에 있다. 현재 11가구 정도만 살고 있다. 이곳 역시 천주교 공소 건물이 남아 있는데,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안머우내는 내오천이란 행정리명으로 불리는 곳이다. 오천초등학교에서 마을길을 따라 바라보면 보이는 첫 마을이다. 이곳 역시 어은동에서 천주교가 전파된 교우촌으로 형성됐다. 예전에는 공소에서 예배를 봤는데, 지금은 건물이 사라졌다고 한다.

▲ 최정팔(64)씨가 황소와 함께 논을 갈고 있다. 황소와 최씨는 늘 그랬던 것처럼 호흡이 잘 맞는다고 했다.
◆고품질 고추, 수익이 걱정
산죽리 역시 고추 재배가 많은 곳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농지가 부족한 탓이다. 그래도 주변 여건이 고추재배에 알맞아 이곳 고추는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설명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초입부터 고추밭이다. 오천초등학교 담장 옆 넓지 않은 밭에서 한 남성이 지주목을 박고 있었다.

“우리 마을은 고랭지여서 고추나 두태 같은 밭작물 재배가 대부분이에요. 특히 우리 마을 고추는 맛이 좋고, 태양초가 대부분이어서 찾는 사람도 많아요.”
안머우내에 살고 있는 정흥(50)씨다.
“고추가 아무리 좋고 맛있어도 가격 때문에 걱정이죠. 값싼 수입산이 들어오니 수익을 낸다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죠. 그래도 이것 말고는 할 게 없잖아요.”
그러면서 정씨는 오천초등학교 얘기를 꺼냈다.

“제가 오천초등학교 22회 졸업생이에요. 예전에는 꽤 많이 다니는 학교였는데, 지금은 유치원생까지 해서 30명이 조금 넘어요. 몇 년 안에 폐교시킨다고 하네요.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으니 학생이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모교가 문을 닫는다니 안타깝죠.”
정씨와 이야기를 마치고 안머우내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마을 숲이 눈에 들어왔다. 큰 나무 몇 그루가 넓은 그늘을 만든 곳인데, 그 아래에는 주민들이 앉아 쉴 수 있는 긴의자도 몇 개 있다. 여름철에는 마을 사람들의 소중한 쉼터 구실을 하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조금은 낯선 모습이 보인다. 비어 있는 낡은 집과 새로 지은 집이 대비를 이룬다.
농번기인 만큼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일을 하러 나가 마을은 조용했다. 안머우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익산-포항간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건설기계 소리만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다.

◆2005년 수해의 기억
안머우내를 나와 정비된 하천 옆으로 난 마을길을 따라 나아가면, 오른쪽으로 하천 건너에 마을이 하나 나온다. 좁은 계곡에 산 중턱까지 집이 있는 곳이다.
새로 놓은 중리교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지붕 아래에 조그만 종이 매달려 있고 마당에 성모마리아 조각상이 서 있다. 마을 주민들이 예배를 보던 천주교 공소이다. 지금은 마을 인구가 많이 줄어 사용하지 않고, 주민들은 진안읍에 있는 성당으로 예배를 보러 나간다.

그 옆 새로 지은 집이 보이고 마당에 한 노인이 편치 않은 몸으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지지난해 수해 때 집이 떠내려가서 새로 지었어요. 그때는 이 아래쪽으로 집이 있었는데, 전부 물에 잠겨버렸지.”
김순옥(76)씨가 당시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집 안에서 세 살배기 딸 영은(김영은^3)이를 보고 있던 며느리 이금자(38)씨를 불러냈다.

▲ 안머우내 주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는 마을숲. 무더운 여름이면 마을 주민들은 넓직한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즐겁고 화목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이 숲은 마을의 수구막이 구실도 하고 있다.
“그때 난리가 났었죠. 새벽에 물이 불어서 남편이 어머님을 등에 업고 윗집으로 피신했어요. 나중에 물이 빠지고 나서 보니까 떠내려온 나무가 다리에 걸려 물을 막은 거예요. 그래서 하천옆에 있던 우리 집이 물에 잠긴 거예요.”
그래서 집을 새로 지으면서 터를 더 높였다. 지금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하면 당시 기억 때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다.
마을에서 나오다 홍수홍(57)씨와 마주쳤다. 밭에서 제초작업을 벌이다 점심밥을 먹기 위해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이 주변에도 농지가 꽤 있었어요. 그런데 먼저 수해가 나면서 군에서 전부 매입해버렸어요. 그래서 주민들은 마을 아래쪽과 위쪽에 조금 남은 농지에서 농사를 조금씩 지어요.”
그러면서 홍씨는 마을 주변을 둘러싼 산을 가리킨다.
“군에서 주민들이 농사 대신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밀원을 조성한다고 해요. 죽산리는 예전부터 토종벌을 치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지금 벌목해 놓은 곳에 헛개나무를 심어 밀원을 조성하는 건데, 사람들은 ‘또 큰 비가 와서 쓸려 내리면 어쩌나?’하고 걱정이 많아요.”

홍씨의 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보니 대규모로 벌목이 이뤄진 상태다. 갓 심어놓은 헛개나무가 뿌리를 내리려면 2~3년은 있어야 하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면적에서 나무를 베어낸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한 3년 동안은 큰 비가 없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 등록문화재 제28호 진안성당 어은공소. 어은공소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도시 사람 찾는 마을로 변화
죽산리 맨 끝에 있는 어은에 도착하자마자 천주교 공소가 눈에 들어온다. 등록문화재 제28호인 진안성당 어은공소다.
공소 앞에는 안내판이 어은공소의 역사적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진안성당 어은공소는 1909년 전통적 목조 건축물로 내부공간은 서양의 바실리카 양식이 접목돼 있어 천주교회사 연구에 중요한 건물이다. 정면 6칸, 측면 2칸 전후퇴 양식의 민도리 홀처마 팔작지붕인데, 원래는 너와지붕이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건물이 낡아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했다. 예전 관습에 따라 남녀 출입구가 따로 있고, 공소 건축에 사용한 목재는 장수와 머우내 앞산, 석재는 백운면 미재에서 가져왔다.
이곳이 우리고장에서 처음 설립된 본당인데, 1921년 마령면 연장리에 한들본당이 설립되면서 공소로 편입되었다가 1947년 다시 본당으로 승격됐다. 그러다 한국전쟁으로 폐쇄된 후 1952년 진안읍에 본당이 설립되면서 어은공소가 됐다.]

공소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마침 어은마을 송용환(53) 이장을 만났다. 작업장 마당에 심어놓은 나무를 손보고 있었다.
“우리 마을엔 외지에서 손님이 많이 와요. 어은공소 때문인데요. 워낙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이다 보니까 전국에서 성지순례 하듯이 찾는답니다. 지금도 매달 첫주 목요일 오전 6시와 셋째주 토요일 오후 8시에는 신부님이 오셔서 예배를 드려요.”
그러면서 송 이장은 마을 아래에 있는 ‘이명서 베드로의 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 중말 천주교 공소.
“원래 모사골 골짜기에 묘가 있었는데, 천주교에서 유골을 성지로 옮기고 비석만 놔두었어요. 그곳이 성인이 묻혔던 곳이라고 표시한 거죠.”
송 이장은 어은공소 이야기를 마치고 난 뒤, 마을 발전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마을의 천주교 역사 때문에 많은 분들이 찾는데요. 그래서 주변의 청정 자연환경과 마을의 천주교 전통을 접목해 보려고 합니다.”

▲ 안머우내 정흥씨가 오천초등학교 옆의 고추밭에서 지주목을 세우고 있다.
앞으로 조성될 한봉단지 때문에 농약을 사용할 수 없는 여건, 그리고 천주교 공소를 찾는 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많은 도시인들이 찾을 수 있는 체험마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한 신부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수해로 마을회관이 없어져 보상금을 받았는데, 그 돈으로 바로 마을회관을 짓지 말고 나중에 천주교에서 기금을 모아 합하면 신자들이나 마을 방문객들이 하루 묵어갈 수 있는 그런 마을회관을 지어야 한다고요. 그래야, 마을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요.”
듣다 보니 좋은 생각이다. 수해로 농지가 많이 줄어든 대신 마을이 갖고 있는 여건을 활용해 주민들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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