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음: 뀌도 미나 디 쏘스피로, 옮김: 박선옥 옮김, 출판: 눈과 마음
주목나무 앞에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이라는 수식어가 즐겨 붙는다. 그러나 ‘저 달이 2만 4천 7백 40 번이나 떠오르기 전의 오랜 옛날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주목나무가 있고, 그 나무가 우리에게 자기가 보고 겪은 세상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그렇다 해도 당신은 믿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정천면의 천황사에 가면 700년 넘게 살아온 전나무가 있고, 용문사에도 1,100년 넘게 살아온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당신이 그런 나무를 올려다보고 몇 분만 숨을 고르는 여유를 가져본 사람이라면.

인간에게 인간의 언어가 있다면 나무에게는 나무의 언어가 있지 않겠는가.

작년 봄 벌써 마을엔 무르익어 옷고름을 활짝 풀어놓은 봄의 품속에서 흐드러진 사랑의 잔치도 끝나가고 앙증한 열매 뒤로 소명 마친 꽃잎 색 바래져 녹아 내릴 때 향적봉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향적봉, 거기엔 아직 봄은 발 들여놓을까 말까 머뭇거리게 하는 세찬 바람만 가득한데 그 속에서 낮게 몸 숙이고 피어난 초봄전령사 현호색, 처녀치마, 바람꽃들이 한창인데, 박새의 푸르고 넓은 잎이 이국적인 풍취를 뽐내는 사이로 휘여휘여 봉우리 오르니 거기 그들이 있었다. 이파리 하나 달지 않고 죽어있는 기둥옆에 비정할 만치 푸르고 곧게 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나무들, 그게 주목이었다. 나는 어느 새 그 나무를 향하여 경례를 붙이고 있었고.

그 나무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어린 주목의 탄생은 여느 나무와 다를 바 없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에게 보내는 어미의 눈길과 가르침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옆에서 빠른 성장을 하는 오리나무와 자작나무를 보며 작은 키가 장수의 비결이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주목은 삶의 감추어진 부분들에 대한 눈을 가지게 된다. 그녀의 엄마는 숲의 여왕이었고 그녀 또한 그 지위를 물려받을 선택된 자신을 인식하면서 일생을 시작한다.

-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순백의 빛나는 진실만을 말한다-

는 그녀는 자신이 여느 나무와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된다. 보통 나무들은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려 쉬임없이 성장하고 일생을 끝마치게 되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녀- 주목은 다르다

“주목은 나이가 들면서 성장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속화 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어떤 것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성장 속도가 너무 느려서 다른 식물 같았으면 2 년 만에 말라죽었을 정도로 생중사 (生中死 )의 기간을 갖기도 한다”

그녀는 천년 넘게 곁에서 살아온 엄마의 죽음이 시작된 사실을 몰랐다는 자책과 슬픔에 스스로 의도적인 혼수상태로 성장을 멈추고 자살을 시도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그녀의 성장사에 필히 있어야 할 그들의 존재적 특질이며 예정된 진화이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지만 세상의 일들을 다 알 수 있다. 그들에겐 ‘뿌리버섯균’을 통한 정보교환이라는 수단이 있다.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뿌리로 연결되어 있고 죽은 나무뿌리에는 버섯균이 산다.

이렇게 그녀는 성장하면서 지혜로워지고 아름다운 푸른 잎을 가진 어여쁜 처녀로 자라날 때 자신의 지위에 대한 책임과 존엄을 위해 애써 사랑을 외면하는 고통도 감수한다.

다양함을 이루어야할 숲에 자신들만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떡갈나무의 탐욕을 벌하기 위해 그녀는 전쟁을 시작한다. 겨울잠에 빠져 있는 떡갈나무의 뿌리를 짓누르기 위해 사슴을 동원하여 땅을 다져 놓은 일, 쐐기벌레를 잡아먹는 푸른박새들을 설득하여 일시적으로 이동시키고, 잠에서 깨어나 어린잎을 내는 떡갈나무잎을 맘껏 먹게 하는 일, 죽은 나무를 찾아 옮겨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벌레를 먹을 수 있도록 딱따구리를 불러 모은 일, 이렇게 그녀는 떡갈나무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숲의 여왕의 존엄까지 얻게 된다.

그녀의 122번 째 해에 일어난 로마군단의 숲의 정복계획이 무위로 돌아간 일은 너무나 환상적인 기억이 된다.

철저한 군인이며 야심 가득한 군단 사령관의 아들인 ‘이이니어스’는 아버지의 뜻대로 군인으로 길러지지만 그의 본성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던 중 황제가 그 섬에 왕림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령관은 아들을 먼저 그녀의 섬에 보낸다. 아들에게 섬을 점령하게 하여 황제에게 공을 세우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놓여난 ‘이이니어스’는 호수의 요정을 만나 이제까지의 억제된 삶을 버린다. 그를 따라 다른 군인들도 모두 요정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자신들의 임무와 목적을 잊었다. 로마에선 그들이 모두 몰살당했다고 믿게 되고 아들을 모낸 야심찬 사령관은 반역의 죄로 처형당하고 만다.

숲의 여왕인 주목이 내린 인간에 대한 결론 하나-여성적인 사리 판단이 더 훌륭하다는 것. 죽이거나 파괴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자 모두 남성이며 권력욕이 강한 것도 남성이라는 것. 그녀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 두시기를-

“사랑이 그대들의 눈앞에 다가올 때, 그리하여 그대 마음 설레면, 그 때에 사랑하시오.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랑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머물고, 당신의 마음속엔 연인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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