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리전통테마마을 황의기 운영위원장

안천면에는 ‘상리’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전통이름은 배실마을이다. 또 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되면서 ‘맑은시암’이라는 다른 이름도 하나 생겼다.
산비탈을 따라 형성한 마을은 양지발라 포근하다. 마을 중간쯤에 맑은시암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낸 옛 샘이 여전히 남아 있고 그 뒤로는 전통테마마을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곳에서 마을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면 그곳이 날망이다. 날망 주변은 모두 농원이고 그 초입에 집 한 채가 있으니 그곳에 황의기씨가 산다.

▲ 황의기씨는 요즘 교육농장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혼자 놀 줄 알아야 시골생활 가능
황의기(50)씨는 10여 년 전 고향인 배실마을에 돌아왔다. 백화초등학교에 다니다 5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 간 이후로 3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생일 때 잘 먹자고 평소에 굶을 수는 없잖아요.”
귀향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재밌는 답변을 준다. 삶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겠다는 얘기다. 돈은 조금 뒤에 두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자연이었다. 전공도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학부에서 원예를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는 화훼를 전공했다.

96년 고향 동네에 터를 마련하고 그곳에 과수나무를 심으면서 그의 귀향은 시작됐다. “시골에서 살려면 혼자 놀 줄 알아야 해요. 피크닉은 하루면 충분해요. 길어야 일주일이죠. 그 다음부터는 외로움이고 노동이에요.”

짧은 몇 마디 말로 귀향, 혹은 귀농에 대한 자칫 왜곡될 수 있는 기대감을 바로 교정해 버린다.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시골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현실을 무시한 채 자신만의 이상을 좇아 시골생활을 선택해도 역시 며칠 만에 손 털고 다시 도시로 떠날 가능성이 크다. 시골에서의 삶은 자연 속에 유유자적하는 피크닉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 복지, 교육, 문화 등 무엇하나도 풍족하거나 성에 차지 않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정부 차원의 귀농정책도 자칫 우스운 정책이 될 수 있어요. 귀농지원대상자들을 선정할 때 신경을 쓰든가 아니면 귀농자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죠. 말을 물가에 데려다 억지로 물을 먹이려 하면 안 되잖아요.”

황의기씨는 자신을 ‘일 머슴’이라 칭한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는 일주일에 3~4일 정도만 일하면 충분했다. 명예도 돈도 따랐고 나머지는 자신에 투자했다. 패러글라이딩도 하고 낚시도 하고 클래식기타 동호회도 가입해 활동했다. “낚시는 정말 좋아했어요. 주말을 지루하게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왜 낚시를 안 하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진안에 오고 난 뒤로는 10년 동안 낚시를 한 번도 안 했어요.”

그 좋아하던 낚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일이 재밌다. 내가 심어 놓은 꽃과 나무가 다음날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4~5시면 일어나 농장에 나가는 그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6천 평이나 되는 농토를 혼자서 돌 볼 수 있을까. “일을 일로 보는 사람에겐 그것이 힘든 노동일 뿐이지만 일을 꽃으로 보면 그것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고 아름다운 꽃인 거예요.”

▲ 농장에 심어 놓은 작물을 돌보는 황씨의 모습이 진지하다.
이제는 교육농장 추진중
날망 꼭대기 집에 살고 있는 황의기씨가 맡고 있는 직책이 한 가지 더 있다. 상리전통테마마을 운영위원장.
2002년, 농협에서 진행하는 팜스테이에 지원서를 제출하고 2003년 지정된 것이 그 출발이었다. 당시 참여 농가는 7 농가. 재정적 지원이 많지는 않았지만 교육과 홍보 등에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해인 2004년에는 농촌진흥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농촌전통테마마을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전통테마마을사업에는 모두 9 농가가 참여했다.

2억 원의 지원금으로 마을을 정비하고 많은 인원이 민박할 수 있는 펜션형태의 가옥도 지었다. 또, 소규모 인원이 묵어갈 수 있는 방을 참여 농가에 갖춰 놓았다.
황의기 위원장이 생각하고 있는 상리전통테마마을 키워드는 허브와 야생화였다. 산에 기대어 있고 해발이 높은 마을의 지역적 특징을 살린 기획이다. 황씨는 90년대 초반 신문에서 일본의 허브산업에 대한 기획기사를 접하고 계속 관심을 두고 있었다. 제주도부터 포천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 그의 농장엔 라벤더, 스피아민트 등 수많은 종류의 허브가 자라고 있다.

지금은 새로 세운 전봇대가 늘면서 사라지긴 했지만 마을에 있는 전봇대에는 능소화 등 만성식물을 심어 차가운 콘크리트 느낌을 많이 감추기도 했다. 논둑에는 벌개미취(국화과)를 심어 경관을 높일 생각으로 협의 중이다. “기대했던 것만큼 마을의 농가소득을 크게 향상시키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소득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인가를 비싼 값에 많이 팔아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작목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직접 현금수입으로 이어지는 것은 민박인데 그것도 운영·관리비 등을 생각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어요.”

이 같은 현실에서 황의기 위원장은 ‘농촌제험교육농장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12개 시·군을 선정했고 시군마다 4곳씩을 교육농장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전북에서는 진안군이 선정되었으며 현재 접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기존에는 체험 중심이었잖아요. 두부를 만들면 그냥 만들고 끝이었죠. 하지만, 교육농장에서는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하죠. 농촌마을의 교육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거예요.”

일단, 배실마을에서는 교육농장이나 전통테마마을 활성화를 위해 출향인들을 중심으로 방문객 확대를 꾀하기로 했다. 세포분열 하듯 출향인들이 친한 가족들을 데리고 오면 점점 그 가치가 확산 될 것이라는 기대다. “5월8일을 ‘마을의 날’로 정하고 현재 주소록을 작성하고 있어요.”

▲ 지금도 옛 취미인 클래식기타 연주를 간혹 한다.
희망 자라는 그의 농장
비가 뿌리더니 이내 그친다. 황의기씨를 따라 농장을 둘러보았다. 곳곳에 허브가 있고 옥수수도 빼곡하다. 작물을 쓰다듬으며 지나가는 황의기씨의 모습이 자식을 돌보는 부모의 그것과 비슷하다. 파랗게 자라는 옥수수는 베어내고 밤 호박과 김장배추를 차례대로 심을 계획이다. 3모작이 가능하다. 옥수수가 익으면 마을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날망에 있는 황의기씨의 집 마당에는 주목과 메타세쿼이아 등 다양한 조경수들이 자라고 있다. 그 중 노박덩굴 하나가 멋지다. 들과 산에서 그냥 다른 나무의 몸을 감고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더니 딛고 올라설 끈 하나 질러 주었을 뿐인데 멋진 조경수가 되었다. 노박덩굴과 황의기씨, 묘하게 닮은 데가 있었다. 변덕스런 비가 오락가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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