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김일동씨
김 일 동 씨
백운면백암리번암부락 출신
의류제조업『일진사』대표
재경백운면향우회 회원
재경진안군민회산악담당이사

그가 안내하는 넝쿨장미가 우거진 터널을 지나서 그가 애지중지 가꾸어 온 그의 작은 정원에 들어서면서 잠깐 외곬으로 살아온 한 소박한 자연인의 천국을 향한 간절한 의지를 읽는 착각으로 필자가 빠져들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토속 우리 사회의 전통적 순박미(純朴美)를 기교 없는 자연(自然)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살구나무도, 앵두나무도, 자두나무와 함께 감나무도 그의 정원 한구석에 꽃을 피우고 있었다. 곳곳에서 모아 놓은 기괴 묘묘한 바위들도 각각의 자기 자리에서 필자를 산골 깊숙한 한 자연의 심연(深淵)에 빠져들게 하였다. 지금 막진 흔적으로 남아있는 목련 나무의 을씨년스러운 모양새나 지금 막 피어나는 라일락의 향기, 터널들을 형성하고 이 작은 정원의 왕비처럼 색색으로 피어오른 장미꽃 형형들도, 그의 오월이 거기 있었다. 거긴 하나의 산수화였고, 원초적 인간의 공간적 배경의 낭만이 거기 있었다.

향토색 짙은 서정의 인생. 자연에 동화된 원시적 인간의 삶. 그 원시적 인간의 삶이란 에덴을 의미하는 가식 없는 삶의 서정성,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김일동, 그의 작은 그리고 꾸밈없는 미소를 의미함이다. 그는 일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환영(幻影)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슬픔이 있다.
김일동씨. 1946년 4월. 해방이 후, 그 사회의 혼란한 소용돌이가 시골구석에까지 몰아치고 있었던 그 해에 그는 삼 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번암마을 앞 냇가의 물장구치기와 개 수영 즐기기, 그렇게 자연의 방목된 자유 속에서 그는 자기의 작은 의식이 철학처럼 그의 관념 속에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특별히 물고기 잡는 기교(技巧)가 없었던 그가 터득한 그 이치란 「막고 품는」지극히 단순하고 원시적인 그 방법이었다.

그가 백운초등학교를 마치고 마령중학교를 중도에 포기한 채, 고향탈출의 기회를 찾고 있었던 것은 당시 그의 아버지가 먹고살기에 그리 궁색하지 않았던 농사일을 정리하여 시골 장터에 작은 잡화상을 차리는 것이 순전히 자라나는 자신들의 장래문제를 마음에 두셨던, 어쩌면 그 아버지의 모험적 사랑에 대한 두려움 이였음을 고백한다. 고향을 떠나 첫 그가 닿은 곳이 대전, 먼 인척이 운영하던 대전의 옷 가게 광복 사에서부터 그의 객지생활은 시작된다. 그가 고향을 떠나오며 기우처럼 염려했었던 아버지의 사랑이 그렇게 실패로 마감하고 그 이후 어머니의 그 원시적 자식사랑을 보면서 유, 무식을 초월하는 그 모성애에 그는 막고 품는 자식의 효도를 결심한다. 주어진 자신의 현실은 누구의 죄도 아니고 자신이 타고난 자신의 운명임을 터득하고 불만 없이 주어진 환경과 현실에 순응하며 부지런히 돈을 벌어 부모님에게 효도하자, 그렇게 그는 세상 모두의 질책과 박수에 가감 없이 순응하는 자연인의 전형으로 잔머리 굴리는 기교 없는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김일동씨. 그는 자연인이다. 물들지 않은 순백색의 자연인이다. 그러나 그도 외로워 할 줄을 아는 자연인이다. 사랑할 줄도 아는 자연인이다. 좌절하지 않고 살아왔으며, 오히려 좌절의 늪에서도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개척하며 성공하려는 꿈을 가지고 아무리 어려운 현실의 환경에서도 자신의 그 꿈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지켜가는 아름다운 자연인이다. 그의 마음에는 아름답고 풍요한 삶의 설계가 기교 없이 그려져 있다.
대전에서 다시 서울로, 서울 남대문시장에서의 그의 각고를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그 끈기가 어디까지이며 인간의 그 의지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된다. 한사코 말하기를 주저하는 그의 표정을 읽으면서 찾아낸 이야기들은 우리 인생에 전혀 꾸밈없는 그 삶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하는 것을 배우게 한다.

군에서 제대하고 입대 전 사귀어 둔 신영화(예산.60)씨와 결혼한다. 그리고 서른다섯 해, 연애하던 그 시절까지를 합하여 강산이 네 번씩이나 변하는 그 세월을 세 남매 기르면서 잘 살아왔다. 그리고 1976년 남의집살이를 벗어나 남성의류제조업체인 『일진사』를 창업하고 그는 아내를 보고 울었다. 어머니를 안고 울었다. 일찍 자식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뜻을 세우시다 실패하고 의기소침 세상 눈치 보면서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었다.
그의 울음을 보고 있노라면 함께 웃을 수밖에 없다. 웃음 반, 울음 반의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어쩌면 우리가 찾고 있는 이 세상의 그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 내외를 보고 있노라면 아하 이게 바로 그 전설의 원앙의 한 쌍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두 내외는 가끔 마주앉아 소주잔을 부딪치면서 가슴아프게를, 또는 울어야 열풍아를 함께 부른다. 그리고 지난날을 추억하며 함께 조용히 눈물도 짓는다. 그것은 이제 우리의 고생이 지나간 시절의 추억임을 함께 이야기하는 미소임을 그들은 안다.
「담을 줄 알기에 비울 줄 압니다.
비울 줄 알기에 담을 줄도 압니다.
비우는 지혜 익혔으니 새 생명 담고 담으리다.」
석용산 스님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었던 이 글귀가 「막고 품으면서 살아가는」 그의 머릿속에서이지만 항상 잊히지가 않는다고 했다.

우리의 고향 사람 김일동씨.
이제 그는 더는 「캄캄한 밤중 천길 낭떠러지 외나무다리에서 횃불을 잡고 앞에 가는 사람이 더럽다 하여 그 불빛을 받지 아니하고 떨어져 죽고 마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 더러운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그가 들고 가는 그 더럽지 아니한 진리의 빛을 따라가는 것이라는 선현들의 이르심을 그가 믿기 때문이다.

김 일 동 씨 H.P: 011-233-3533 /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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