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일 지음/ 다산초당 출판
조선은 1392년 건국되어 1910년 일제에 점령당할 때까지 518년을 존속했던 왕조다. 다른 나라의 왕조와 비교하건대 이렇게 오래 지탱한 왕조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쇠퇴기를 맞고도 이렇듯 오래 그 명운을 이끌어간 왕조도 흔치 않다.

4 명의 군왕 중 1명에 해당하는 인종, 선조, 소현세자,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까지 모두 8명의 군주가 독살설의 의혹 속에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것은 왕조가 창업되어 성장, 발전을 지나 쇠퇴기에서 소멸기에 이르는 기간에 일어난 일들이다. 참으로 긴 기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긴 왕조의 부침이 거듭 되는 만큼 그 안에 도사린 권력을 향한 수많은 음모와 투쟁이 독사의 또아리처럼 들어앉아 있고 그 아가리에서 뿜어내는 독의 위협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 것인가.

저자는 서문에서 “역사엔 만약이란 없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한국사는 연구하면 할수록 ‘만약’ 이랬다면 . . .하는 분야가 너무도 많은데 독살설 역시 그렇다” 라고 쓰고 있다.

나 역시 동감이다. 개인적으로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을 읽고 군주인 정조를 처음으로 사모하게 되었다. 내게도 처음으로 역사의식이란 게 생기기 시작한 때였고 ‘만약- ’ 이란 아쉬움이 틈틈이 끼어들기 시작한 때였다. 사족같지만 동명의 영화 국민배우 안성기 주연의 ‘영원한 제국’을 보고 우리궁궐의 아름다움을 소름끼치게 느꼈던 어리석은 이 나라 사람이기도 한 나.

이렇게 나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받아온 교육과 정치현실의산물이기도 했다는 뒤늦은 각성과 더불어 이렇게 이면의 역사가 다각도로 파헤쳐지고 언로가 열린 세상에 사는 기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책이다.

각설하고-.나 개인으로 제일 아쉬운 군왕은 군주자리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비운에 간 소현세자와 정조이다.
개국 초, 이방원은 형제와 충신까지도 제거해 버리는 반인륜적 토대위에 강력한 왕권중심의 나라를 세웠다. 그런 나라가 쇠퇴기로 접어든 것은 선조 때부터라 할 수 있다. 적장자가 아닌 몸으로 왕위에 오른 선조 때 동서분당이 시작되었고 와중에 임진왜란을 맞게 되는 것은 이미 국운이 다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때부터 왕가는 독살설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방계승통(적장자가 아닌 왕)은 국가보다는 자신들의 당의 집권과 존속을 위하여 내세워진 인조의 콤플렉스에서 소현세자의 비운은 예견되고 있었다.

소현세자. 그는 누구인가.

청이 천하를 통일하고 있을 때 이미 대세가 기운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고집하다 자초한 삼전도의 비극의 주인공이다. 인조를 대신해서 청으로 끌려가 9 년간의 볼모 생활을 하였지만 불운을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식견과 영민한 세자였다. 삼전도의 치욕을 겪고 나서도 세상의 변화를 깨닫지 못한 조선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위로 청과의 마찰이 있을 때마다 조선을 두둔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았다.

이런 그를 청에서는 장차 성군이 될 인물로 대우하였는데 이것이 인조에게는 불안의 요인이 되었다. 몸소 보고 겪은 정세변화와 개혁의지에 불탓으나 끝내 군왕의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독살 당하고 만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와 세손의 죽음에 이어진 세자가문의 멸족은 조선의 쇠퇴를 재촉한다.

효종의 북벌을 줄기차게 막아온 노론 사대부들의 말장난을 보노라면 당리당략에 이합집산하는 요즘의 정치가들의 작태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훤히 보인다.

또 한 군주. 정조. 유럽에 르네상스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도 정조의 르네상스시대가 분명 태동하고 있었다.

친할아버지인 영조의 손에 의해 뒤주에서 죽어가는 친아버지(사도세자)를 눈앞에서 봐야했던 정조의 어린 시절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과 같았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친자식을 죽인 아비로써 ‘금등비서’를 작성했던 영조는 세손을 위하여 살길을 열어놓았다. 어렵게 왕위에 오른 정조가 처음 내놓은 말- “ 아-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에서 정조의 의지는 드러난다.

나라와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작당의 이익만 내세우며 왕을 드러내놓고 무시하는 노론과 맞서 과감하게 개혁을 펼친 왕 정조.

그는 규장각을 세워 서얼을 포함하는 인재를 양성하여 문을 개혁하고, 장용영을 만들어 개혁적인 무신을 양성하여 국가의 균형을 잡고자 했다. 이것은 오랜 집권당인 노론에게는 공포스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정개개편을 코앞에 두고 정조는 독살되고 만 것이다.

어쩌면 세상을 관장하는 신은 의로운 신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정의가 승리하는지, 승리한 것이 정의인지 판별하는 일 저자 뿐 아니라 나 또한 확신이 가지 않는다. 불의는 일단 승리하고 나면 정의로 뒤바꾸기 위해 많은 공을 드리는 법이고 때로는 성공하기도 한다는 저자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책을 덮으면서 왕도 아닌데 뇌리에 남는 인물이 있었으니 송시열이다. 다음번엔 그 인물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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