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 이집은 누구인가
김진애 … 이집은 누구인가
  • 진안신문
  • 승인 2007.06.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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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음: 김진애, 출판: 샘터
“집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품성을, 성향을, 정서를 드러낸다.”는 그녀의 집이야기는 우리가 간과하고 사는 많은 것을 다시 찾게 한다. 마당과 구석, 부엌 골목길 등. 문만 닫고 들어가면 도시 상관없을 것 같지만 도저히 뗄 수 없는 유기적환경이다. 모델하우스에서 눈길을 끄는 건 인테리어와 기본적으로 설치된 가전제품들일 뿐이다. 요즘 들어서는 주변환경을 그린제품으로 얹어 팡고 있지만.

*기억은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장치

화가 고 장욱진선생은 자신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작은 집을 무척 좋아했다. 작은 집에 작은 방, 큰 키를 세우면 머리가 천정에 닿는 그런 집에서 웅크리고 있길 좋아했고 그런 그가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그건 그가 낳고 자란 집이 그렇게 작은 집이었다는 데 기인하는 것으로 이처럼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남아있고 닿아있는 것에서 심정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의 가장 큰 부분이 집이다.

*기억의 복선이 많은 집. 삶의 흔적 집의 양식.
*어쩌다 짧은 동선을 좋아하게 됐을까

아파트와 한옥의 동선을 비교하면서 시각 동선, 청각 동선, 심리 동선을 알려준다. 결론은 짧은 동선은 집의 한계라고 말한다. 만약 아파트가 층층이 쌓아지는 집이 아니라 ' 고층의 땅에 세우는 집' 이라면 하는 발상의 전환도 이야기 한다.

*비빌 구석, 숨을 구석은 어디에
*그 좋은 구석, 자기만의 구석

우리가 흔히 비하해서 ‘ 집구석이나 쳐 박혀 있을 걸’ 하는 말이 집을 낮춰 보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을 나타낸다는 것을 깨우친다. 고민이 있을 때 우리는 구석에 쳐 박힌다. 그리고 혼자만의 은밀한 즐거움을 누리고자 할 때 구석자리를 찾는다. 카페의 구석에서 잠기던 달콤한 혹은 씁쓸한 상념, 그리고 끄적거림, 결론은 좋은 집이란 아이들이 숨바꼭질하기 더없이 좋은 집이라는거다.

7-80평의 아파트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자꾸 밖으로 나간다. 그것은 아무리 평수가 넓어도 아파트의 평면구조는 문만 열면 한 눈에 드러나는 평면공간이기 때문이라 한다. 대신에 우리가 오래 동안 살아왔던 한옥구조를 생각해보자. 얼마나 좁디 좁은 방이며 벽장이며 그래도 우리는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장욱진처럼 웅크리고 있어도 편안했다. 그건 닫혀있는 문밖으로 들리는 인기척에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안정감을 얻었던 것이다. 아파트의 넓은 평수는 닫으면 바로 고립이요, 열면 바로 벌거벗김과 같은 대면이어서라는 저자의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 이제 부엌예찬을 인용하면서 마칠까 한다.
*떠오르는 중심 : 부엌예찬

부엌이 좋은 이유는 끝없이 많다.
첫째, 그 무엇들이 너무 많아서 좋다. 부엌에 있는 온갖 물건들의 이름을 대보라. 이름을 다 댈 수 없을 정도다. 정말 그렇다.
둘째, '물' 과 '불' 이 있어 좋다. 가장 원초적이라 할까? 물과 불이 있으면 그 무엇도 시작부터 끝까지 할 수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조카가 있는데 그 아이는 식당에만 가면 주방으로 쳐들어가 넋이 빠져 있기 일쑤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음식재료들, 치직거리며 움직이는 조리기구들, 그것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조리사들하며 솥밑으로 파랗게 혹은 벌겋게 넘나드는 불길을 생각하면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엄마들은 위험표지를 붙여 아이들을 주방에서 쫒아내곤 하는데 이건 아이들의 창조성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 씩 숙고해봄직 하다.

셋째, 무엇을 만들어 내어 좋다. 만드는 것만큼 즐거운 것이 있으랴. 과연 요리는 예술이다, 창작이다. 우리들은 이런 부엌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청년기에 미국의 부엌에는 물을 쓰는 조리가 별로 없다 들었다. 요즘 우리의 주방을 거의 반 정도나 점령해버린 반제품인 가공식품의 상용을 말함이었는데 그 땐 그게 참 부러웠었다. 솔직히 말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도 이런 부엌이 늘어나고 있다. 드라마세트처럼 잘 꾸며진 주방가구와 조리기구들은 언제나 새것처럼 잘 닦여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식으로 걸려있는 때가 많은 것 같다.

넷째, 항상 풍성해서 좋다. 아무리 아껴쓰는 집이라 하더라도 부엌만큼은 항상 새 물품이 들어온다. 그 많은 종류의 먹을 것들, 가짓수만도 어디랴,
다섯째, 누구나 들어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좋다. 부엌을 거쳐가지 않는 가족이 있으면 나와 보라. 가족이 모두 드나드는 만큼 사건들도 많이 생긴다.

부엌예찬을 읽으면서 하는 생각.
예전에 아이들 키울 적에 멕이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이 없어 못해주던 때가 많았다. 그게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엄마들은 다 안다. 그 뒤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나는 아이들이 먹고 싶다거나 혹은 손님을 위한 음식마련을 절대로 미루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때를 생각하면서. 귀찮은 생각이 들려고 하면 늘 이렇게 자신에게 타이르곤 했다.

"옛날을 생각하라,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어 고통스럽던 때를. 눈앞에 재료를 놓고 음식을 만들지 않는 일이 어찌 있을 수 있는가. 라고
이 외에도 집이란 출산과 죽음 그리고 결혼을 거쳐야만 비로소 집으로서의 의미가 완성된다는 말도 아주 의미심장하게 되짚어 봐야 할 말인 것 같다.

결혼은 예식장에서, 출산은 병원에서, 죽음은 장례식장에서 치러버리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집도 집이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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