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홍 (주천면 무릉리)

지난 28일, 진안에서 한미FTA의 실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강연회가 있었다.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의 강연은 국민의 뜻과 바람을 철저히 무시한 정부당국의 비굴한 협상내용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왜 우리가 한미FTA를 반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정리해 주는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300여 차례에 걸친 전국 강연회를 통해 국민에게 FTA의 실상을 알리고 반대의 당위성을 설파해 온 그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FTA, 즉 자유무역협정이라는 것이 수치상으로 드러난 국익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문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국익의 관점이란 무엇인가? 협상의 타결에 눈이 먼 멍청한 한국 협상단이 교활하고 집요한 미국 협상단에 끌려다니면서 우리나라가 대대손손 짊어질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는 거다. 반면에 노련한 미국은 성질 급한 한국 협상단을 잘 요리한 결과 누가 봐도 완벽한 판정승으로 이익을 몽땅 챙겨갔다는 거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가 명백히 손해 보는 장사를 했으니 한미FTA를 반대해야 한다는 게 국익의 관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자. ‘국익’이라는 게 뭔가? ‘국익’이라는 게 과연 실재하는 개념인가? 나라가 잘 살게 되면 나한테도 뭐 콩고물이라도 좀 떨어지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FTA로 인해 교역량이 증가하고 그로 인해 요즘 유행하는 ‘쩐’이 국내로 많이 유입되다 보면 아무래도 국가의 부가 증가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나한테도 뭐 많이는 아니겠지만 ‘쬐끔’이라도 떨어지는 게 있을 게 아닌가? 아주 다른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건 진짜 ‘쬐끔’일 뿐이다.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 더 무섭다고 한다. 그 ‘쬐끔’ 때문에 속 쓰려 하느니 안 먹고 맘 편한 게 백배는 낫지 싶다.

세계를 움직이는 실체가 초강대국 미국이 아니라 국가를 초월한 초국적 자본, 글로벌 자본이라는 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본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할 수 있다는 걸 폼 나게 보여준 사람이 최근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김승연이. 얼핏 보면 FTA협정도 국가와 국가가 맺는 협정으로 보이지만 그건 텔레비전 속에서의 이야기일 뿐, 실은 자본과 자본이, 그들을 대리하는 권력을 내세워 맺는 지들끼리의 계약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진안에서야 실감이 덜 나겠지만 지금 우리는 초국적 자본과 그에 기생하는 세력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을 뿐이다. 그게 자본주의 아닌가.

정리하자면 FTA로 인해 이득을 보는 집단은 정부가 선전하듯 우리 국민 모두가 아니라 국경을 넘나드는 미국과 한국의 거대자본들, 그리고 그들과 짝짜꿍이 맞는 기득권에 속한 소수일 뿐이라는 게 속 쓰린 현실이다. 대다수의 민중은 그들을 살찌우기 위해 존재하는 소비자일 뿐이다. 애초에 한미 FTA를 강력하게 요구한 집단이 한국과 미국의 재벌들의 모임인 ‘한미재계회의’라는 한덕수 총리의 발언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정세균씨를 비롯해 한미 FTA에 찬성하거나 입장을 유보하는 속없는 국회의원들이 정태인씨가 열거한 바 있는 수치상으로 드러난 한국의 불이익을 몰라서 FTA를 나 몰라라 하거나 열렬히 환호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 나라를 대표하는 보수언론과 수구세력들이 무지해서 FTA에 목을 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왜 모르겠는가. 그 똑똑한 사람들이. 그들도 다 안다. 이거 잘못했다간 나라가 절단난다는 걸.

그들의 속내는 두 가지로 짐작된다. 첫째는, 이미 권력을 이용한 특권계급에 있거나 자본가인 자기들에게 자유무역협정이야말로 제도의 제약 없이,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제대로 이익을 챙길 훌륭한 기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둘째는, FTA가 진짜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씨가 그럴 것이다. 난 적어도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이건 약으로도 못 고친다.

첫 번째 이유로 그러는 거라면 진짜 나쁜 사람들이니 언급할 가치도 없겠고, 문제는 두 번째 이유, 즉 국익 때문에 미국과의 통상협정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교역량의 증가로 국민총생산량이나 수입이 어느 정도 늘어날 것은 사실이겠지만 거기에서 발생한 부가 아래로 흘러넘쳐 국민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이른바 부의 균등이 실현되지 않을 거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양반들, 특히 노무현씨는 양극화가 해소될 거라고 쌍심지를 켜고 있지만 글쎄올시다. 자유무역을 통상정책으로 삼고, 신자유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나라 중에서 사회 양극화를 해소한 나라가 있다면 나 같은 장애인이나 가난한 이들은 그리로 이민해야 하리라.

자유무역협정이 풀뿌리 민중들 간의 협정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민중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거대 자본들의 ‘자유’를 의미하며 그들끼리의 자유로운 경쟁과 협력을 통한 이익창출의 방법을 의미할 뿐이다. 정태인 교수의 말처럼 미국에 생산기반을 둔 ‘혼다자동차’는 이미 일본의 기업이 아니다. 초국적 자본은 이미 국가를 넘어선 개념이다. 따라서 자유무역협정에서 국익을 논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되기 쉽다. 오직 국가를 초월한 자본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정태인 교수가 내 놓은 한미 FTA를 막는 방법이 있다. 바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막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FTA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미국산 소의 뼈(광우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 사골에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로 곤 사골 국을 자기 손자들과 같이 한 달만 먹어준다면 미국산 소를 수입해도 좋다고 국민이 도장을 쾅 찍어주자는 거다.

앞으로 10년 후에나 그 실체가 드러날 위험천만한 미국 소는 절대 수입을 못 하겠다고 한국 사람들이 버티면 미국의회에서 절대 FTA 비준을 안 할 터니 우리나라로서는 떳떳하게 명분을 세울 수 있게 된다. 기가 막힌 방법이 아닌가.

그리고 이쯤에서 정세균씨에게도 명확한 답을 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지역의 농민단체들과 제 사회단체들이 힘을 모아 분발해야 할 때이지 싶다.
전 세계의 농민과 노동자, 서민이 주체가 되어 서로 협정을 맺고 서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며 공생공락(共生共樂)하는 세상을 그려본다. 아, 꿈 깨야 하는데 큰일이다. 이 병에도 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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