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진(소설가)

▲ 엮은이: 모심과 살림 연구소, 출판: 그물코
시골 와서 나도 변산공동체의 윤구병이 욕할 수 밖에 없는 경우를 이미전해 들었다. 버려져 있던 자갈밭을 빌려 장모와 아내, 사위 셋이서 열심히 자갈을 골라내고 가꾸어 이제 뭐든 심으면 될 만하다 싶자 주인이 땅을 거두어 갔다는 이야기다. 우리마을 그 사람은 이러고도 또 똑같은 일을 다른 땅주인에게 당했고 윤구병도 아직 미련을 못 버리고 하소하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윤구병과 변산공동체 식구들이 들과 산과 바다가 다 있는 변산을 택해 터를 잡은 건 이미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땅이 없어 부안김씨네 재실지기를 하면서 종중 땅을 부쳐왔단다. 그냥 땅이나 부쳐 먹었으면 될 걸 삼무를 넘어 오무농법으로 농사를 지었겠다.

삼무란 화학비료, 제초제, 농약을 안 쓰는 농사인데 거기에다 비닐멀칭과 축산비료까지 안 쓰고 겨울이면 산과 저수지 바닥에서 부엽토를 긁어 날라 만든 거름을 쓰는 오무농법으로 농사를 짓다보니 마을 노인들도 공히 인정하는 땅심 살리는 농법이 되었단다. 그런데 이제 땅을 도로 내놓으라 하니 종친회를 찾아 애원해도 속절없이 땅을 돌려주어야 할 판이란다. 이런 꼴을 당하고도 그가 하는 욕이란 게-원 꼴 같지 않은 놈들 같으니라구 -다.

똥이야기 좀 더. 우리 집은 실내에 화장실이 없어 사람따라 정서에 따라, 적응능력에 따라 인상을 달리 받고 가시는데 그렇다고 밖에 있는 화장실이 시쳇말로 퍼세식도 풍덩음향식은 아니다. 그냥 내가 내놓는 거름 받아 삭후고 썩혀 내 땅에다 뿌리고 거그서 다시 작물 길러서 먹것자고 그리 지었다. 한 두 해 똥지게로 똥도 퍼서 풀과 섞어 거름도 만들기도 했었다. 풀도 덮고 발효제도 뿌려 거름을 만드니 집짓기 전에 벼려져 있던 땅심이 살아났든지 지금은 마늘도 잘 되고 뭣보다도 온갖 곤충이 살고 있어 곤충왕국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오는 사람들은 이게 유감이다. 우리 아이들이나 형제들도 그런 판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무리 그 뜻이 좋아도 그것이 자신에게 불편의 요소로 다가올 때는 오랜 감당이 겨운 것 같다. 정말 그것뿐일까.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또 다른 것. 그것이 자신의 품위와 우아함을 손상시키는 그 무엇이 된다 라면 감당하기보다는 외면 쪽을 택하는 현대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현대인의 교만은 제가 싸는 똥을 보지 못함에서 오는 눈멈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요즘 들어 나도 화장실을 실내에 장착할 것인가를 고민 중이며 장착하기로 거의 결정을 하고 있는 중이기에 다음의 이야기는 그저 입에 발린 소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도시에서 똥을 나르는 사람들. 이렇게 시골 호젓한 시골에 살면서도 일 년에 한 번 뒷간의 똥을 모아 거름 만드는 일을 두 해나 포기하고 무슨 환경 탱크에 돈 주고 넘긴 나로서 적잖이 찔리고 감동 받은 이야기다.
안철환은 이렇게 묻는다. 옛날엔 임금님도 개인밭이 있었고 왕비님은 누에를 키웠고 공부하는 선비조차도 도깨비가 될까봐 자기만의 텃밭을 가꾸었다고.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단지 먹을거리를 생산해서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을 살리고 자연을 가꿔 지구의 사막화를 막는 일이라고 한다. 직업으로서 농민만이 농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가 운영하는 도시텃밭은 주말농장에 있는데 그가 보아온 일반적인 풍경은 이랬다. 주말마다 와서 고기 굽고 술 마시고 놀다가는 곳으로 이용되다보니 여름 장마 지나면 농장은 풀밭이 된다. 김장채소를 수확하는 사람은 고작 두 서너명에 불과했단다. 그런 텃밭풍경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 프로보다 진정한 아마추어의 아름다움이라 한다.
그이 농장 회원들은 일요일이면 교인들이 교회 가듯 텃밭에 온다- 작물은 주인 발소리 듣고 자란다는 말이렷다.

그런 회원들이 이제 학생들이 가방 들고 등교하듯 오줌을 들고 온다- 우리어릴 때 아무데서나 오줌 누면 부모님께 혼났다는 말이 생각난다. 거기다가한 술 더 떠 숫자는 적지만 아파트에서 똥을 싸들고 오시는 분들도 있단다. 자기 차도 없는 사람이 그걸 들고 온다는 데서 나는 그만 숙연함을 느낀다.

그렇다. 아마추어의 열린 귀와 진지함을 가질 때 프로농사꾼에게 학대 받은 땅들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이어서 그는 말한다. 밥상보다 더 급한 것은 거름자급이라고. 내가 생산하는 거름은 물로 씻어 내버리고 멀리서 석유 때고 매연 품어내며 가져온 거름으로 지은 밥상을 놓고 웰빙을 운운하며 자급을 논하는 것은 얼마나 허위에 가득 찬 눈속임인가라고.

이쯤해서 생각나는 사람 하나 있다.
우리 고장의 사무장으로 일하는 그이 말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지금.
“도시에서 우리마을에 온 아이와 같이 마당에 나왔어요. 하얀민들레가 한창 하얀 씨를 달고 할머니가 되어 있었어요. 봉투를 주면서 얘야, 이건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종민들레란다. 그런데 외국에서 온 노란민들레에게 자꾸만 자리를 뺏겨서 지금은 아주 귀한 민들레지. 제주도에 있는 친구에게 씨앗을 보내주기로 했거든. 같이 씨앗을 받아보자. 그러면 너가 씨앗을 보내주는 게 되지 않겠냐. 자 여기를 잡고 이렇게 씨를 받는 거야. 하면서 같이 씨를 모았어요. 미리 준비해 준 자료를 가지고 공작을 하는 게 체험은 아닌것 같아요 우리가 사는 모습을 함께 해보는 게 체험이 아닐까 생각해요. 작은 인원이라도 말이죠”

그의 말이 백번 옳다. 지금의 체험관광 농촌관광도 머지않아 막힌 길이 보이는데 생명은 자연스러움이 생명이 아닐까 싶어진다.
이 역시 땅에 뿌리 박은 지혜가 아닐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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