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 정희균씨
정희균 씨

동향면 능금리 하능(下能)마을 출신

동부생명보험(주) 화랑지점 대표지점장

군상상고 제40회 서울지역동창회장

재경동향면향우회 총무

 

白髮被兩鬢(백발피양빈)/肌膚不復實(기부불부실)/雖有五男兒(수유오남아)/總不好紙筆(총불호지필)/阿舒已二八(아서이이팔)/懶惰故無匹(나타고무필)/阿宣行志學(아선행지학)/而不愛文術(이불애문술)/雍端年十三(옹단년십삼)/不識六與七(불식육여칠)/通子垂九齡(통자수구령)/但覓梨與栗(단멱이여율)/天運苟如此(천운구여차)/且進盃中物(차진배중물)

양쪽 귀밑머리 백발로 변해있고/살결도 전처럼 실하질 못하다/비록 아들놈이 다섯이나 되지만/하나같이 글공부는 싫어하는구나/서라는 놈 이미 열여섯이나 되었지만/게으르기가 짝이 없는 놈이고/선이란 놈은 곧 열다섯이 되는데/도무지 글 읽기에는 관심조차 없다/옹과 단은 똑같이 열세 살인데/여섯과 일곱조차도 구별 못하고/통이란 놈 아홉 살이 다 되었는데도/오직 찾는 거라곤 배와 밤뿐이다/하늘이 내게 준 자식 운이 진실로 이러하니/이 또한 술잔이나 기울일밖에 별도리 없다.

천하의 오류선생(五柳先生) 도인명이 이처럼 탄식하였으니 자식들 교육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자식 둔 부모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속 썩는 문제였던 듯 싶다.

오늘 도여명의 한탄과 함께 공부하는 심정으로 필자가 소개하려는 우리의 고향 사람 정희균씨는 이제 막 불혹(不惑)의 세월을 넘긴 우리 고향의 젊은 그룹에 속하는 동향면 사람이다. 원래 그의 고향 동향면 능금리 능길마을은 웃담과 아래담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주산은 해발 757m의 국사봉이다. 국사봉 줄기에서 큰 재와 작은 재가 내려오면 큰 재의 양쪽으로는 불당골 줄기에 상능(웃담)이 위치하고 귀신골 줄기에 하능(아랫담)이 위치한다. 마을 앞으로는 덕유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인 구량천이 앞을 가로질러 흘러내린다. 구량천 건너편으로 앞산인 깃대 봉이 있으며, 해마다 능길마을 주민들은 능사사명(能社司命)의 깃발을 앞세우고, 한 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깃 고사를 지내는 이백 여년의 풍속이 내려오고 있다.

 

우리의 젊은 고향 사람 정희균은 이 마을에서 1966년 2월에 태어나서, 그가 탁구선수로 군산상고에 스카우트되어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능길초등학교와 동향중학교를 마치면서 고향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고 향수의 시려오는 그 의미를 머리에 간직하며 부모님의 그 향기 있는 냄새와 형제들의 사무쳐 기억되는 그 우애를 익히면서 자라왔다. 아침저녁 국사봉에서 몰려오는 구름 때를 마중하며 불당골을 헤매어 산(山)과 일들을 찾아 헤매던 그 붉은 가을들, 명절이 돌아오면 객지에 나갔던 형제들의 귀향을 마중하던 작은 들녘의 그 추억을 그는 풍경화처럼 기억한다. 전국체육대회에서 입상하고 돌아오던 그해 가을, 자랑스러워 하셨던 그해의 부모님과 그 형제들은 그는 참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국민윤리(國民倫理)를 전공하고 후대를 교육하겠다는 그의 꿈은 정부의 정책으로 영향받아 조금씩 그 꿈이 멀어져 갔으나,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 동갑내기 동기생 조미선(김제출신)씨를 아내로 맞이하는 신(神)의 축복으로 받는다.


F.A.R 로댕의 말은 필자가 전하면서 ‘연애는 생명의 꽃’이라고 말해 주었다며 맞다고 맞장구로 받는다. ‘우주를 단 하나의 사람으로 줄이고 그 사람을 신에 이르기까지 확대하는 것, 그것이 곧 연애다.’ 한 V.M 위고의 말을 전하였더니 그는 대답한다. 연애는 행동이고, 용기라고 한 술 더 뜬다. 그는 요즘 주위에 그렇게 행복을 전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고 했다.

 

어떻게 사는 삶이 가장 멋있고 후회스럽지 않은 것인가, 그는 그것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 또래의 사람들에게 또는 그의 휘하 직원들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젊음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음은 그것이 용기이고 낭만이어야 하는 것이다. 용기는 그것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 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실체는 항상 바른 행동 그것이어야 한다.

그가 용기를 실천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을 가로막는 적을 항상 그는 만난다고 했다.

그 적이 망설임이고, 의심함이며, 소심함이며, 공포심과 중도포기함이라는 어는 학자의 논리에 그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고 그랬다.

 

1992년도 동부그룹 공개채용시험에 합격하고 이제 15년. 그의 직업에 대한 철학과 그가 맡는 업무에 대한 긍지는 성취감으로 무장된 행복함이었다. 그가 소속된 사회에 긍정적 사고방식을 그는 항상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그는 철학으로 익혀간다.

실수와 실패는 삶의 여정에서 항상 동반자임을 그는 잊지 않는다.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나 같은 사람은 하고 자괴감 속에 자신을 비하하는 그 함정에서 벗어나려고 그는 항상 노력한다. 지혜와 열정을 갖고 그는 뛴다. 그리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그에게 다가오는 자유를 느낀다. 마지막 1%의 인내가 인생의 성패를 가름한다는 그 이론에 그는 그래서 적극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우리의 고향 사람 정희균씨.

 

이제 그는 불혹(不惑)의 사십대 문턱을 밟는다.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이야기다. 예를 알고 도를 터득하고 덕을 밝혀, 성을 인시하는 단계에 이르러서 ‘아침에 도서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하였으니 우리가 그에게 함께 원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 참으로 어렵고 형이상학적인 과제임을 그가 오래도록 기억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일찍이 그가 국민윤리(國民倫理)를 전공한 용기의 예찬자임을 우리도 함께 오래 기억할 것이다.

[정희균씨 연락번호 010-9923-7722]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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