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여름더위 게 섰거라! 책 부채 나가신다"(33)

▲ 지음: 이명희, 출판: 열림원
‘너희가 미친년의 순정을 아는가?’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 소리를 듣는다는 건 자신의 길을 열심히 살아왔다는 진화의 증거이다. 라는 선언적인 표지문장과 함께 그 ‘미친년’을 대표하는 우리시대의 아홉 명의 여자의 인생편력과 그들의 철학을 인터뷰한 책이다.

‘트렁크 사진갤러리’를 운영하며 여성주의 시각으로 찍어내는 ‘미친년 프로젝트’ 의 박영숙은 미친년의 산파역을 지금도 열심히 해내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날 때부터 미친년은 없다. 자라면서 가부장적인 학대와 차별 과 억압을 겪으면서 섬세한 여자의 감성은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이 되어 버린다고.

이런 여자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그녀의 작업은 아직도 계속된다.
필자의 여고시절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미국할머니의 발톱에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더라는 이야기는 신선함과 부러움을 주었었다. 늙어서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꿀 줄 아는 여자가 되어야지 않겠는가. 그랬었다.

그런 내 귀에 그녀의 선언이 들린다.
우리는 조금씩 낡아가고 있다. 조금씩 잎을 떨어뜨리면서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 잎은 당연히 떨어지고 몸은 흩어져 간다. 조금씩 잎을 떨어뜨리는 소리를 들어라. 그러면 안다. 늙는다는 건 새로움을 받아드리는 것이다.

몸은 중요하다. 몸이 망가졌을 때 콤플렉스를 갖는 건 당연하지만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주름은 철학의 문신이자 살아온 세월의 문신이다. 주름이 지는 형태, 처짐, 이 모든 것은 내 안에서 나온다고.
내가 선망했던 그 미국할머니는 젊음만이 가치가 있으며, 남성주의 시선으로 고정화된 미의 기준에 맞추고자 노력하는 한 늙어가는 여자의 안간힘에 불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의 젊은 여성들은 1960년대부터 이 땅에 시작된 선배 페미니스트들의 피흘리는 투쟁과 외로움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마녀였으며 미친년이었다.
그런 그들이 있어 지금 직장 내 평등이나 성차별에 대해 공공연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여성의 지위와 능력을 제대로 평가해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를 이렇게 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키워낸 것은 그녀의 상처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상처를 두려워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라고
그녀가 찍어낸 여자들은 아름답거나 우아하지 않다. 대신에 여성 안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과 욕망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박영숙은 질문한다.
왜 국가는 여성들 애 낳는 문제까지 관심을 보이면서 문화적 지원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가. 육아문제와 더불어 과연 이 나라가 예술적인 자질을 가진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는 나라인가? 고.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박영숙을 선두로 다른 여덟 명의 여자들의 이름만 소개하는 것으로 나는 이 책을 모든 여성에게 필독서로 권하고 싶다.

“먹고 싶은 사람이 요리를 하라”라고 말하는 미국여성운동의 선구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비롯해 실리콘밸리의 CEO 김태연, 유니언신학대학 교수인 현경, ‘묻지마 종교에 토를 달아라’ 는 여성 사제 빅토리아 루, 뉴욕의 묘지 스님, 캐나다의 예술가 윤진미, ‘정말 원한다면 세상이 다 말려도 올인하라’ 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 유숙렬의 이야기를 이 작은 지면에 다 보여줄 수 없음이 유감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미친년이라고 소리친다면 기꺼이 즐기라고 권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자신의 주체성을 확고히 하는 일이 첫째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남자에 의존해서 살지 말라는 것. 주체성 없는 남자에 매여 사는 일은 공포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남자들에게도 공포스러운 일인 것이다.

남자라고 어찌 꿈이 없겠는가. 아비로써 남편으로써의 족쇄에서 풀려나고 싶은 사람도 남자이기 때문이다.
김혜순이 그녀의 미친년 프로젝트에 바쳤던 시를 몸으로 읽어 보시라.
땅이 미치지 않고 어찌,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여자의 몸에서 올라오는 광기는 여자의 몸에서 올라오는 꽃과 같다
광기가 꽃을 피게 한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산

땅속에 억눌린 채 숨어있던 영혼의 열림
바로 개화다
여자가 미치지 않고 어찌, 노래를 하고, 춤을 추겠는가.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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