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여름더위 게 섰거라! 책 부채 나가신다"(35)

▲ 지음: 로자문드 필처, 출판: 김영사
산속 마을 거기서도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외딴 우리집.
여기 살면서부터 우리집 텔레비젼은 관이 되었다. 시청료는 안 물지만 지독한 난시청 지역( 시청료 안 받아갈 정도니 오죽 할까)을 스카이라이프로 대신하는 경제적, 시간적 손실을 거부하기로 했다.

먼저 이 책의 주인공은 이미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는 64세의 여인이라는 점이 나를 위로해 준다. 내 나이가 58세인 그 위안과 동료감이 얼마나 클 것인지 짐작이 되실런지.
이 여인, 페넬로프는 능력이 출중한 캐리어우먼도 아니고 특출난 재능을 지닌 여인도 더구나 세기를 풍미할 미모를 지닌 여인도 아니다.

그녀에게 눈 돌릴만한 점이 있다면 그녀의 부모일 것이다.
화가인 아버지와 평범하나 주위에 즐거운 기운을 퍼트리는 자유로운 감성을 가진 어머니. 그 사이에서 페넬로프는 자신의 어떤 행동도 거짓으로 가릴 필요가 없고 부끄러움이나 쓸데없는 죄의식 따위로 고통받지 않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훌륭한 부모란 때론 커가는 자식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내 개인적이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웠던 점이다.
이런 성장환경이 그녀를 평범한 여자로 살 수있게 했을 것이다. 평범이 이처럼 축복받는 장점이 된다는 걸 확신했다. 이 확신 뒤에 따라오는 의문 한 가지- 평범한 일상, 평범한 인생이란 오늘 날 어떤 삶을 가리키는 것일까. 모두가 남보다 더 튀고 싶어 안달이 난 세상에서 평범이야 말로 비범이 아닐 것인지 싶어진다.

화가인 아버지로부터는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을, 자유로운 어머니로부터는 인생에 대한 믿음과 낭만을 물려받은 그녀에게 일상이 사소한 그저 그런 날이 될 수는 없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물에게 손을 뻗어 생명을 불어넣지만 그녀 자신은 특별히 자신의 그런 능력을 인지하고 있지는 않다.

매 순간 열심히 자신의 삶을 손수 꾸리고 닦는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뭔가 특별한 일과 특출함과 남다름에 대한 욕망은 그녀 앞에서는 빛을 잃고 마는 것 같다.
그녀의 이런 힘은 어디서부터 일까?

어려서는 자연스런 성장기의 산물이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사랑의 경험이 그녀를 이끌었다.
그녀를 줄곧 이끌어 온 사랑의 힘- 그것은 그녀의 일부가 되어 그녀의 인생을 받쳐주는 잠재력이 된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오. 그것은 한 인간의 부분으로 남아 그 사람 인격의 일부가 되는 법이오"

그녀의 일부가 되어 준 많은 사랑의 경험을, 우리는 흔히 상처로 바꿔 간직하곤 한다. 그리고 기대하는 만큼 일그러지고 한으로 남기면서 사랑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두려워한다.
사랑의 기쁨과 즐거움을 왜 자신의 진정한 좋은 것으로 남길 수 없단 말인가.

소제목마다 인물을 그리면서 전체적인 얼개를 짜 나가는 구성도 특이하다.
결국 삶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은 그 부모가 자립해서 사는 일이지' 라는 말처럼 서로에게 기대면서도 떨어질 때도 서로를 쓰러뜨리지 않는 관계의 유지는 자립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그녀의 능력- 좋은 것이 그녀의 일부로 남은 -은 진정으로 사랑했던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처리하는 면에서도 드러난다.

자식들의 욕심을 물리치고 진정한 도움이 될 곳에 돌려주는 넒은 마음쓰기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혈연을 중시하는 우리에게는 더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의 유산인 그림 ‘ 조개줍는 아이들’ 속에는 분명 그녀를 그렇게 이끈 아버지의 따뜻한 소망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예술이 지님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딱딱하고 엄숙한 교훈 한마디면 될 것을 거슬러 혹은 긴 시간 힘든 작업을 통해 우리의 감성을 끌어내고 기다려주는 수도승의 인내와 고뇌이다.
이런 열정이 끝내 우리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런 열정과 인내에 기꺼이 설득당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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