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이야기(19) 진안읍 오천리(마지막)…먹뱅이, 오얏골, 원양지

▲ 먹뱅이 마을 입구에는 '묵방마을'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있다. 먹을 만들었다는 뜻의 먹뱅이와 달리, '묵방'은 한 번 묵어봐야 마을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진안읍 오천리의 세 행정리 가운데 양지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호 신문에서 소개했던 동구지미를 비롯해 먹뱅이, 양지골, 오얏골 등의 자연마을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데, 방곡재(방고개, 율치 등으로도 불린다.) 정상과 가까워 장수군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해당한다. 그래서 오천리의 다른 자연마을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주막과 여관이 즐비했던 곳이다.

지금도 이 곳은 사람의 통행이 잦고 상업이 활성화됐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떠나 몇 집 남아있지 않다. 험준한 산간지형으로 농토가 넓지 않고, 노인 인구가 대부분이어서 마을은 계속 쇠퇴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양지는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일부 마을의 젊은 농군들을 중심으로 친환경농업을 필두로 하는 마을 가꾸기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마을에서는 해발 600m 이상의 산간지형의 악조건을 친환경농업에 적합한 환경으로 인식하며 다양한 시도를 벌이고 있다. 이러한 주민들의 노력은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으며, 이 마을의 앞으로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도로 옆 오얏골에는 양지마을 비석이 서 있다. 본래 오얏골은 산 안쪽에 있던 마을이었는데,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멀리 떨어진 자연마을
먹뱅이는 ‘묵뱅이’, ‘묵방’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기록에서는 전에 먹을 만들던 먹방이 있어 붙여졌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주민들 가운데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이 아닌, 하루를 묵어야 마을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는 곳’이란 의미에서 ‘묵방’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말했다.

실제 마을 입구에는 ‘먹뱅이’라는 이름 대신 ‘묵방마을’이라고 새겨진 돌 이정표를 세워두었는데, 장수군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마을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얘기였다.
먹뱅이 입구 맞은편 마을은 ‘오얏골’이다. 행정리로는 양지에 속해 있는데, 본래 양지마을이란 뜻의 ‘원양지’와는 많이 떨어져 있다. 마을에는 7집 정도만 살고 있다.

실제 오얏골의 위치는 현재 마을이 있는 곳에서 더 산 쪽이었다고 한다. 익산-장수간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면서 오얏골 사람들은 집을 뜯어 지금의 위치로 이주한 것이다.
오얏골에서 산 쪽으로 난 농로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5집 정도가 살고 있는 원양지가 나온다. 양지마을의 마을회관은 원양지 초입에 있는데, 지금은 이용하는 주민이 없어 현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 오얏골에서 고속도로 건설현장을 지나 더 들어가면 원양지가 나온다. 이곳에는 양지마을 회관이 있는데, 지금은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문이 굳게 닫혀있다.
◆친환경의 중심 꿈꾼다
세 마을 가운데 먼저 찾은 곳은 먹뱅이였다. 방곡재 정상에 이르기 전에 있는 ‘마이산 휴게소’ 바로 옆에 마을 진입로가 있다.
진입로 옆에는 집 한 채가 있고, 또 한참을 들어가면 집 한 채가 또 나온다. 그리고 더 올라가면 대규모 양돈단지인 ‘일성 홍삼 포크’라는 대형 간판이 내걸린 양돈단지가 나온다.

주택은 양돈단지 아래 한 채, 두 채씩 떨어져 있다. 처음 들른 집에서는 어린이 세 명이 뛰어놀고 있었다.
“큰언니는 학교에 갔고요. 둘째 언니는 방에 있어요.”
셋째 옥이(백옥, 11)가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었다. 뒤에서 옥이 보다 키가 큰 넷째 금화(9)와 두산(8)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 먹뱅이 다섯 형제 가운데 첫째 백금희(15) 양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이 집앞 마당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맨 뒤 키가 가장 큰 어린이가 금주(13)이고, 둘째 줄 옥(11, 왼쪽)이와 금화(9), 맨 앞이 두산(8)이다. 이 어린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때 묻지 않은 건강한 웃음이 가득해 보는 사람도 함께 즐거워진다.
이 다섯 남매는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아홉 식구라고 했다. 학교는 오천초등학교에 다니는데, 먹뱅이에서 유일한 어린이들이다.
“저 위로 가시면 어른들이 계실 거예요.”

아이들이 일러준 곳으로 올라가니 중년 남성 세 명이 평상에 앉아 과일과 약간의 약주를 나누고 있었다.
원종삼(51) 양지 이장과 고영상(54), 배영옥(56)씨였다. 모두 먹뱅이에 살고 있는데, 높은 지형을 이용해 약초와 더덕, 표고 등을 친환경적으로 재배하고 있는 농군들이었다.

“지금 우리 양지에서는 친환경 농업 바람이 일고 있어요. 주민들이 친환경농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서로 권장하고 있죠.”
원종삼 이장은 양지, 특히 먹뱅이는 해발이 높아 더덕과 표고, 약초를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기 좋다고 설명했다. 실재 산에 있는 밭에서는 이러한 작물들이 친환경 농법으로 자라고 있었는데, 원 이장은 먹뱅이에서 난 특용작물은 자연산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의 성과와 주민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친환경 농업이 이뤄질 겁니다. 주민들 모두 친환경 인증을 받고, 정말 농약이 없는 마을을 만들자는데 주민들의 동의했습니다.”
사실, 먹뱅이를 비롯한 양지마을은 고랭지 채소로 유명했던 곳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떠나고 중국산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가격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농업의 위기 속에서 주민들은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물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 오얏골 아랫쪽 도로 옆에는 마을에서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숲이 있다. 이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위가 여럿 보이는데, 마을의 수구막이 구실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것을 뛰어 넘으려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당장 이익은 없어도 멀리 내다봐야 하죠. 그런 희망 속에서 우리 마을은 친환경 농업을 적극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바람이 있다면, 행정기관에서 조금만 도와주어 이런 주민들의 노력이 탄력을 받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고영상씨는 지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지게를 지고 일어설 때 누군가가 조금만 힘을 보태주면 일어설 수 있는데, 한 번 일어서면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친환경 농업 역시 주민들의 노력에 행정기관이 조금만 힘을 보탠다면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는 것이라는 게 고씨의 설명이다.

“우리 마을(양지)은 계속 세대 수가 줄어들다가 최근에는 다시 늘고 있어요. 친환경 농업을 희망하는 귀농인들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거든요. 한때는 20가구까지 줄었다가 지금은 26가구가 살고 있어요.”
친환경 농업은 땅심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양지에서의 친환경은 마을을 가꾸고 지킬 수 있는 생존 수단이었다. 그만큼 더 절실하게, 더 열심히 주민들이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었다.
  

▲ 먹뱅이에 있는 일성홍삼포크
◆홍삼 먹인 돼지 ‘일품’
먹뱅이에 있는 ‘일성 홍삼 포크’라는 양돈단지는 최근 10년 노력의 성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전주는 물론 정읍까지 점차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데, 요즘엔 돼지가 모자라 못 팔 정도라는 게 고영상씨의 얘기였다.
“여기 돼지고기를 한 번 먹어보면 다른 곳에서는 돼지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을 겁니다. 그만큼 육질이 좋아요. 홍삼을 먹이는데다가 높은 해발과 많은 일교차 등의 주변 환경이 명품 돼지를 만드는 것 같아요.”
이러한 고씨의 설명에 원종삼 이장과 배영옥씨도 동의했다. 원종삼 이장은 이 양돈단지의 돼지들은 항생제를 놓지 않기 때문에 마을이 추구하는 친환경 농업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익산-포항간 고속도로 건설 현장
◆개발에 떠밀린 주민들
먹뱅이를 둘러보고 오얏골로 향했다. 오얏골 한 가운데에는 누군가 심어놓은 조경용 소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는데, 전주 사람이 판매용으로 심어둔 것이라고 한다.
오얏골을 돌아보다 한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널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이 양반이 오얏골에서 유일한 남자예요.”
이상복(76), 이순례(70)씨 부부다. 이순례씨는 얼마 전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돌아왔는데, 그동안 남편 이상복씨는 독수공방을 해야 했다. 이순례씨가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자 딸한테서 전화가 왔단다. 아빠가 좋아하시겠다면서 농담을 던지면서 말이다.

“본래 우리 집은 저기 고속도로가 난 자리에 있었어요. 여기 주민들 대부분이 거기에서 집을 뜯어 이곳으로 왔어요.”
부부는 옛 기억을 더듬었다. 원터에서 시작한 주막과 여관이 방곡재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그때는 사람도 많았고 재미도 있었단다. 당시에 양지마을 전체에는 50여 가구가 살았는데, 농촌이 황폐화되면서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떠났다.

부부와 헤어지고 원양지로 향했다. 고속도로 공사현장을 지나 나타난 원양지는 조용했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 때문에 들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을회관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마을 위쪽으로 지나는 고속도로 공사현장이 그대로 보였다. 마치 원양지는 다른 자연마을과 단절된 느낌이었다.
  

▲ 오얏골에서 만난 이상복, 이순례씨 부부
◆변화와 발전을 꿈꾸는 오천리
원양지골까지 진안읍 오천리 자연마을을 모두 돌아보았다.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노인이 많고, 삶은 계속 팍팍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을은 진안읍과 가깝고, 국도가 지나며, 장수군과 이웃한 교통의 요지이다. 그러면서도 높은 산줄기가 이어져 자연환경도 잘 보존돼 있다. 어찌 보면 악조건이지만, 달리 보면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많은 주막과 여관이 즐비했던, 많은 상인이 오가던 마을의 모습을 떠올렸다. 앞으로도 충분히 그런 곳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진안읍 오천리 마을 이야기를 마친다.     

▲ 양지골

▲ 마이휴게소
▲ 마을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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