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여름더위 게 섰거라! 책 부채 나가신다"(37)

▲ 지음: 이경자, 출판: 실천문학사
“사람은 누구나 만족이 없는 거 같아요. 살림이나 하는 우리같은 여자들이 볼 때는 좀 이해가 안가는 그런 사람들 그러니까. .밖에서는 성공했지만 가정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의 이야기 같아요 ”

책을 빌려주는 그니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작가의 이름만으로 기꺼이 빌렸다. 아직도 일하는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이중의 부담은 여전히 가볍지 않다.
“아침에 엄마와 아빠는 같이 출근 하신다. 저녁 때 같이 퇴근하신다. 그런데 집에 오시면 엄마는 옷 갈아입고 저녁밥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신다. 아빠는 거실에서 텔레비전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고 계신다.”

얼마 전에 우리 마을 아이들 독서지도를 하는 선생님에게서 들은 여자아이의 글쓰기 내용이다. 일반적인 가정의 이야기가 이럴진대 특별난 일을 하는 여자- 인정받는 무용가의 길을 걷는- 하영이란 주인공의 삶은 어떨 것인지.

하영의 아버지는 무능했다. 그러고도 어머니위에 군림했다. 어머니에겐 아버지가 전쟁 중에 고아가 되지만 않았다면 절대 자신의 배필이 될 수 없는 지체 높은 집안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머니의 눈으로 확인한 바가 아닌 아버지의 입으로 나온 말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무능과 절제되지 않은 감상을 폭력으로 쏟아내는 아버지, 그 매질을 피해 버러지처럼 웅크리거나 달아나는 어머니와 자식들, 엎어진 밥상, 깨진 접시들, 방바닥에 질펀하게 던져진 음식들, 그 속에 웅크린 하영에게 아버지는 두 팔을 벌린다

“하영아, 이리 온. 아버지는 너를 사랑한다.”
아이는 거절할 수 없는 힘에 아버지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이런 안김은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피해자들에게 가해자로 대비되고 하영은 어머니와 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이 저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두들겨 패는 아버지 편을 든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서서히 딸을 사랑의 대상에서 떼어내어 미움 속에 가둔다.
허나 그 시절, 남동생의 손만 잡고 달아나는 어머니의 등에서 자신의 버려짐을 받아드리는 하영의 절망은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자리잡아 이어지고 두 사람의 서로의 그런 애증의 이랑을 더 깊이 파기만 한다.

아버지를 통해서 익숙해진 남자의 살냄새와 감촉은 집을 거부하며 서 있는 골목에 선 어린 계집애에게 다가오는 염치없고 동물적인 남자들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익숙함으로 남긴다.
타고난 천부적인 몸과 재능과 아버지의 후원으로 올라선 당대 제일의 무용가이며 교수인 하영의 내면은 늘 텅 비고 초라하다. 자해처럼 부딪치고 얽히는 남자들은 많은 오해로 빚어지는 프리즘속에 하영을 바라볼 뿐이다.

무용가의 훈련된 근육에 대한 성적인 대상으로만 함께 할뿐 하영의 내부는 더 황량하게 무너져 간다.
하영은 새로운 작업인 설화‘ 도랑선비 청천각시’의 대본을 읽던 날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낀다. 청천각시의 전이를 경험한다. 그로부터 시작되는 혼돈의 날들.

일부러 흉사날을 택하여 장가를 든 도랑선비는 첫날밤에 병이 들어 다음 날로 이별을 고한다. 남편 도랑선비의 죽음을 흰까마귀 편에 듣고 를 찾아 나선 청천각시에게 스님은 말한다.

“대를 심어 두 잎은 버리고 첫 잎만 모아 기름 한 말을 짜서 손을 적셔 말리기를 기름이 다할 때까지 하여 그 손에 불을 부치고 뼈가 타들어 가도 아프단 말 한마디 내지 않고 도를 이루어 찾아나서야만 도랑선비를 만날까 말까”의 주연배역을 제자에게 넘겨주는 하영은 몸의 호소에 형체없는 마음을 찾아 끝도 없이 어지럽다.

그로부터 시작되는 긴 혼돈의 길 떠남- 나를 찾아 떠나는 그 길에서 하영은 풀어야 할 수많은 매듭을 만난다.
딸들의 삶은 어머니의 삶에 영향을 받는다더니 맞으면서도 남편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어머니처럼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앞에서 누추해지는 하영은 그러고도 자신의 이런 누추함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른다.

어머니를 적대시하던 어린 시절은 하영의 두 딸에게서 반사된다. 어린 시절 그토록 바라던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주지 않던 엄마의 자리를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에 대한 거부로 메워 버렸다. 뒤를 보면 자신이 미워하는 어머니가 자신을 향해 증오를 보이는 매듭과 연의 이어짐이 있고.

결국 삶이란 끊임없는 과거의 투영이고, 전생의 보습이며, 연과 연의 망에서 허우적대는 것이라니.
자신의 생에 얽혀있는 매듭은 결국 자신만이 풀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무어라고 생각한다면 영원히 그 매듭을 자를 알렌산더의 칼은 쥐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시간을 질질 끄는 우리들을 본다. 왜 설화는 끝없이 우리를 끌고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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