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그대 사랑 책갈피에…" (38)

▲ 지음: 오히예사 옮김: 류시화 출판: 오랜된 미래
“ 늑대와 춤을 ” 이라는 인디언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있었다. 주인공은 인디언이 아닌 잘 생긴 미국남자 배우였다. 그 주인공 덕이었는지 소재가 시기에 맞아 떨어졌는지 몰라도 그 영화는 곧 저자의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그 뒤로 인디언에 대한 책들이 나오고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카페에서 인디언을 삶과 관습을 연구하고 지향하는 모임들도 많다. .
인디언 그들은 누구였을까.

"콜롬부스"는 인도를 향해 서쪽으로 항해한 지 70일 만에 쿠바 북쪽 바하마 군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고국 스페인에 돌아가 "나는 인도에 갔다"고 선언하면서 그곳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 부르게 된 것이 인디언의 시작이다.

이렇게 시작된 인디언에 대한 정보들은 오늘날까지 잘못된 것들이 많다.
인디언은 싸움을 좋아하고 잔인하여 살인을 하고 사람의 머리가죽을 벗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복수를 신념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부족을 공격하면 여자와 아이들을 죽이고 노예로 삼는다.

인디언은 미개한 종족이라 온갖 미신을 믿고 축제에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인육을 먹기도 한다.
얼마전만해도 이런 정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드려지고 진실처럼 믿어져 왔다. 마치 우리가 어느 시점까지 북한 동포들은 머리에 뿔이 난 도깨비로 믿어왔듯이. 그런데 그런 정보들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정복당해 노예가 된 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해 왔다. 인디언의 후예로 정복자인 미국의 생활방식과 교육을 받아 의사가 된 오히예사는 흑인의사를 인정하지 않고 방해하는 미국사회에서 저항하며 민족을 알리고 구하는데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 그는 예방접종으로 종족을 구했고 인디언의 고귀한 영혼을, 공동의 부와 평화의 정신을 알리고자 ‘ 보이스카읏’ 을 창단했다.

싸움을 좋아한다고 알려진 그들의 싸움은 어머니인 자연의 품에서 벌이는 미식축구와 같은 에너지의 발산이었다. 그 와중에 발생하는 죽음에 대하여는 모두가 애도하며 지냈고 싸움이 끝나면 선물을 교환하고 위로함으로 평화를 이루었다.

그들에게는 개인소유의 재산이 없으며 누군가 원하면 내어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내게 부족한 것은 손을 내미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습이었다. ‘얼굴 흰 사람’들이 전해준 위스키와 총은 이런 무소유와 평화에 기초한 그들의 관습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백인들은 어머니인 대지를 돈을 주고 사겠다고 그들을 내쫓았다. 실제로 돈을 주지도 않았으며 자유롭던 인디언들을 구역을 정해 가두고 굶어죽게 하여 일어난 폭등을 진압한다고 모든 인디언을 죽이고 노예로 삼은 것이 인디언 역사의 실상이다.

이제는 인디언은 이런 구역에 가야만 볼 수 있다. 그들의 땅에서 황금이 나면 그것 때문에 그들은 내몰리고 죽어가야 했고 그들을 죽이기 위해 그들이 식량으로 삼는 들소 떼를 멸절시켰다. ‘운디드니 학살’을 비롯하여 미네소타, 와이오밍, 몬타나 등에서 일어난 끝없는 인디언 학살은 묻혀져 버리고, 없애야 하고 개량해야 하는 미개하고 바보같은 인디언들의 이야기만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받아드리고 있는 서양식 교육덕분에 우리는 가정에서 행해지던 훌륭한 교육을 잃어버리고 교육의 부재라는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때 인디언들의 교육은 우리가 잃어버린 교육의 모습을 상기 시켜 준다.

아이를 가진 여인을 성스럽게 여기고 소중하게 다루며, 아이들은 가족들의 목소리로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족과 가족에 대한 존경을 배워 나간다.
스스로 자연을 관찰하고 느끼게 하므로 생각을 깊게 하고 실용적인 지식을얻을 수 있게 한다. 박제된 지식을 넣어주지 않는다.

인디언 사회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을 최고의 범죄로 여긴다. 의도적인 거짓말을 일삼는 자는(선의의 거짓말도 해당된다)겁쟁이 같은 가면뒤에서 어떤 범죄라도 저지를 수 있는 자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모든 악의 시작은 거짓말에서 자라난다는 것.

인디언 노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나는 그 예수라는 사람이 인디언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물질을 손에 넣는 것, 나아가 많은 소유물을 갖는 것에 반대했다. 그리고 평화를 이야기했다. 그는 인디언들과 마찬가지로 계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랑으로 일한 것에 대해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 인디언들은 예수가 말한 단순한 원칙들을 지키며 살아 왔다. 그가 인디언이 아니라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인디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들과 우리가 어쩌면 같은 뿌리이지 않았나 싶다. 그들이 지켜온 법과 관습은 우리의 전통과 한 얼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거부하던 교육 덕분에 오히예사는 이렇게 깨닫는다.

우리가 가진 문화와 관습속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결국 그 결함이 우리 종족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대대로 이어온 지혜를 입에서입으로 전했다. 그들이 그것을 기록하고 그 위에 문명을 쌓아가는 동안 우리는 사라지는 지혜를 잡아두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의 잃어버린 기초였다.
그들의 탄식이 가볍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의 독서층이 해가 갈수록 엷어지는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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