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진(서울지사장)

 어린시절 추석날 아침은 항상 즐거웠던 것 같다. 아버지를 따라 성묘를 가는 길은 무척 즐거웠고 일찍 차례를 ㅈ내고 여러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나면 아버지는 곧 성묘갈 준비를 하신다. 동구 앞을 지나면 신작로에는 코스모스가 흐트러지게 피어있고 누런 들판에는 참새떼가 밀집모자를 쓴 허수아비를 보고 웃고 있다.

우리 집안의 성묘길은 대가족이었다. 사촌, 육촌형제들이 함께 성묘를 다녀오노라며 친지들의 의가 더욱 단단해 지는 것 같다. 조상들의 묘소가 한곳에 있지 않아 몇 개의 산을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러다보면 이삼십리 길은 걸어 다니게 마련이다.

산소에 도착하여 묘역들을 둘러보시고 술잔을 올리며 큰절을 하였다. 아버지는 그럴 때 마다 조상들과 얽힌 일화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등 이렇게 성묘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한나절이 기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에 가을의 풍성함은 맑은 햇살이 반사되어 들판에 풍요로이 춤을 춘다.

취기에 젖은 아버지의 보행은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어져가며, 아버지의 흰 두루마기 자락이 코스모스와 같이 어울린다. 아버지는 어깨너머로 조상님들의 음성을 들은 듯 아버지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있다. 아마 조상님들의 그리움이 사무치는 것 같다. 지금도 집집마다 나름대로 성묘 음식을 장만하여 성묘를 다녀온다. 그러나 어쩐지 예전의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성묘길 산 아래는 차량 행렬이 가득하다. 성묘객들도 오래 머무르지 않고 오고 갈 때 마주치던 아는 사람들의 정도 사라지고 화장을 많이 하다보니 산소를 찾는 경우도 전보다는 많이 적은 것 같다. 선친께서 돌아가신지 어언 한 세대를 넘겼으니 나도 이제 아버지의 연세만큼 나이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어렸을때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그 사랑과 정신을 아들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이제 머지않아 한가위 명절이 다가온다. 올 추석에는 내가 어릴적 아버지를 따라 걸었던 성묘길을 차량으로 가야되는 세상으로 변했으니 이제 아버지의 흰두루마기 자락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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