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그대 사랑 책갈피에…" (43)

▲ 지음:시게마츠 기요시 옮긴이:김난주 출판:소담출판사
날마다 산위에서 단풍이 성큼성큼 사람의 마을을 향하여 내려오는 모습을 봅니다. 가을 산은 붉게 타오르지만 가슴 속엔 어느 새 별리의 슬픔이 들어앉아 저 붉은 단풍을 더욱 붉게 물드리기도 합니다.

들판은 하루가 다르게 비어가고 사람들의 곳간엔 수확물이 쌓입니다. 해마다 이 계절이면 저는 머뭄과 떠남 사이에서 마음의 빈자리로 바람 들고나는 소리를 듣습니다.

20 년 전이던가요,
어느 의사가 쓴 글에서 당시 제겐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가정과 학교, 국가가 없어질 것이라고 하더군요. 주위에서 미미하게 감지되는 그런 징후를 포착하고, 가끔씩 터지는 큰 사건을 보면서 그 말을 받아드려 할 때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받아드려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인류가 대를 물리며 존속하고, 어디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며, 국가가 없어지면 나 같은 힘없는 개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세상 걱정 혼자 하기도 했습니다.

믿어온 혈육이 냉담해지고 어머니가 아이를 버리고,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국가는 국익을 앞세워 국민을 버릴 수도 있는 현실을 부정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우리 앞에 펼쳐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잡은 이 책은 곰살거리며 부대끼며 아직도 이어지는 가정의 건재를 다시 확인해 주었습니다.

‘어머니 돌아오다’ 란 이야기는 말년에 들어서 새삼 홀로 떠나가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 미워해 온 자식이 제 자식을 낳고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지난날을 떠올리며 비로소 어머니를 이해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어렴프시 알만 하면 이제 우리는 다시 지나온 제 흔적을 지워버려 자라나는 자식의 부글거림을 또 이해할 수 없게 되지요.

‘셋짱’ 이라는 작품이야기 하나 하지요, 자신이 당하는 끔찍한 ‘왕따’를 겪는딸 아이가 어느 날부터 전학 온 친구라며 ‘셋짱’ 이라는 이름으로 제 일을 부모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아무것도 모르지요. 비로소 사실을 알게 되어도 어디서부터 접근해 가야하는지조차 모르게 된 부모와 자식의 거리는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 부모는 언제나 보수적이고 젊은이들은 언제나 철이 없다’ 란 말은 영원한 진리인 모양입니다.

나는 그 의사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틀렸다고.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가정도, 학교도, 국가도 모두 우리가 삶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 온 역사인 것이므로 그릇의 형태가 변할 수는 있어도 그 안에 담기는 인류의 소망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제한된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그 속에서 영원의 꿈을 꿉니다. 그 꿈은 자자손손 이어져 영원은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그 꿈을 담는 그릇은 타고난 사랑의 본능이며 그 발현이 인류의 존속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가족이란 다만 형태가 변해갈 뿐이지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씩 일탈을 꿈꾸고 지나간 추억에 발목을 잠그고 싶은 것도 가족 안에 있기에 가능한 불온한 꿈이 아닐까요.

좋든 싫든 함께 살아가야할 운명을 지닌 가족의 이야기 일곱 편을 읽으면서 가족에 대한 훈훈한 믿음으로 돌아올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겨울에 시작해서 가을에 마치는 저의 책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를 합니다.

마치는 인사드리면서 그저 개인 사정으로 - 하는 인사 드리는 것 너무 -체 하는 것 같아 소상한 인사드립니다.
내 귀중한 가족의 하나인 딸아이의 해산간을 해주러 핑계김에 지면을 놓게되었습니다. 해산간을 해준다했더니 주위에서 많은 조언들이 있었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집에서 해산도우미를 하냐구요.
현대적 시설로 완벽한 시스템인 산후조리원이라는 데가 있는데 말이죠. 보기보단 구식이네요 하는 뒷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손수 하고 싶었습니다. 친정어머니라는 우리네의 훈훈함을 저도 흉내나마 내보고 싶었달까요.
모든 것이 기계적 시스템속에서 돌아가다 보니 그 친정어미라는 자리를 뺏기는 것 같더라니까요. 그런데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제가 전에 우리 어머니가 해주셨던 그 해산간을 잘할 수 있을지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 한 가지 부탁드릴까 합니다. 사실 겨울은 책읽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TV 조금만 보시고요, 아랫목에 발 묻고 책을 읽으십시오. 어느 새 마당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일지도 모릅니다. 책 한권을 가족 모두 돌려볼 수 있으니 얼마나 가족 모두를 위한 좋은 겨울참입니까?
가족, 참 좋은 말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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