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로 선 진안(7) … 용담면 송풍리 구음골

▲ 구음골에 오른 일행들이 흔적이 희미하게 남은 옛 성황당 자리가 있던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지난해 10월 나도산을 시작으로 첫 발을 뗀 두발로 선 진안 산행이 6월 안천 국사봉 줄기로 다녀온 산행을 끝으로 4개월 동안의 공백기를 지나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시작하는 산행이 맨 처음 두발로 선 진안 산행을 시작했던 것 같이 또다시 가을이고 보니 새삼 지난해 나도산과 동향 산영재에서 느꼈던 가을의 정취를 생각하게 합니다.

가을은 초록빛깔의 봄과 여름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전해 줍니다. 이렇듯 산행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계절의 변화와 지금은 희미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옛 길을 따라 걸어본다는 의미에서 두발로 선 진안 산행은 큰 의미가 됩니다.

욕심 같아서는 많은 주민들이 함께 동참했으면 하지만 마지막을 향해가는 가을 끝자락인 지난 11월 10일. 문채 이장님(회룡2리)의 안내로 김광성(전 용담면 군 의원)씨, 박주홍(정천 우체국장), 김영화(용담전원교회 담임목사), 김성은(용담중학교 1), 그리고 신문사 식구 2명 등 총 8명이 함께 처음 시작하는 새로운 마음으로 산행에 올랐습니다. -편집자

날씨가 별로 맑지 않다. 곧 비라도 내릴 것처럼 잔뜩 찌푸린 하늘이 보인다. 이틀 전 입동이 지나서인지 이제 바람도 제법 쌀쌀하니 옷깃을 여미지 않고는 밖에 나가기도 어렵다. 길가의 은행나무나 가로수 길도 떨어진 낙엽이 수북하다. 

2007년 첫 가을 산행은 용담면 송풍리 회룡의 구음골이다. 송풍초등학교가 생기기 전 송풍리 학생들이 용담초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넘어 다니던 옛 등굣길 이다. 산행을 하면서 매번 느껴오지만 힘든 산을 넘어 매일같이 학교를 향했을 학생들의 열정과 체력이 감탄스럽기만 하다.

오전 9시 30분이 지나서 일행들과 함께 송풍리 옥수마을을 지나 구음골로 향했다. 길게 뻗어있는 시멘트 길 옆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진 늦가을 산이 주는 아름다움은 입구 초입부터 일행들의 발걸음을 잡아끈다.

이제 계절은 풍성했던 가을에서 겨울 초입으로 들어서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황금빛과 빨간 빛깔이 가득했던 들과 산에도 거둬들인 농작물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흐린 날씨 탓인지 이날 늦가을이 전하는 풍경은 채 떨어지지 않은 단풍으로 붉은 물 들은 회색배경이다. 
  

▲ 문채 이장님
◆사연 숨은 골짜기 지나
마을 입구부터 산 아래까지는 잘 닦인 시멘트 길이다. 덕분에 일행들은 가을 풍경을 둘러보는 여유와 주위의 산골짜기에 얽힌 이야기도 들으며 쉽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농로로 포장이 되어있어 차도 다니는 제법 넓은 길이지만 예전에는 소로 길로 노온, 방화, 감동마을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 다닐 때, 마을 사람들이 면에 볼일이 있을 때 주로 이용 했지요” 

지금도 송풍리에서는 제법 먼 곳에 있는 감동마을에서까지 용담으로 학교를 다녔냐하며 놀라워하니 나무로 다리를 만들어 내를 건너서 학교에 다니곤 했다고 문채 이장님은 설명했다.

길옆으로 저쪽 골짜기는 문채 이장님 학교 후배가 도깨비에 홀렸던 곳, 또 다른 골짜기는 보건 시설이 잘 안되어 채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었던 아기들을 묻었던 곳. 그 당시 이 길을 지나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은 골짜기에서 죽은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여 무서워했었다고도 한다.

잿빛으로 가득한 이날 날씨와 함께 문채 이장님에게 전해들은 이야기가 전설의 고향 한편을 본 듯 했다.
  
◆수풀 헤치니 옛길이 그대로
저만치 10여명의 노인 분들이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있다. 노인회에서 하는 노인 일손 갖기 운동의 일환으로 생지황을 수확하고 있는 중이란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일은 우동 한 그릇의 새참을 먹고 다시 시작한 듯 보였다.

일행들을 보더니 이곳까지 왔으면서 막걸리 한잔 받아오지 않았다고 우스개 소리하며 핀잔을 준다. 만남만으로도 반가웠던 노인들의 바쁘게 일하는 모습에서 진해진 흙냄새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위해 우리 일행들은 걸음을 서둘렀다.

10시 30분, 드디어 산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난코스의 시작이다. 농로 옆 인삼밭 사이를 지나 얕은 계곡을 넘어 산길로 들어섰다. 산길 처음부터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방향 잡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방향을 잡고 수풀 속으로 들어가니 폐쇄된 지 10여년이 지난 곳에 제법 뚜렷하게 길이 나 있다.

그리고 산 길 치고는 제법 넓은 길이 일제 강점기 말경 자동차 도로를 내려고 했다가 황산리, 와룡리 마을의 고립으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김광성씨에게 들을 수 있었다.

“예전 학교 다닐 적엔 이슬에 발목까지 젖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뭐 힘들고 불편한 줄 아나요. 학교까지 신나게 뛰어가곤 했죠.”

직접 구음골을 넘어 학교에 다녔다는 문채 이장님의 설명으로는 그 당시 학생들의 속도로는 한 시간 거리. 산길이 생각보다 높고 험하진 않다지만 그래도 역시 대단하다 싶다. 아마도 산길로 등하교를 하며 느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 산행을 모두 마치고 내려오는 길은 가을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들이 반겨주었다. 짧은 거리의 산행이었지만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 멀리 용담댐이 한 눈에
“이 곳이 성황당이 있던 자리입니다.” 산을 오른 지 30여분이 흐른 뒤 옛 성황당 자리에 다다랐다. 벌써 구음골을 다 오른 것이다. 구음골의 정상. 이곳은 옛 용담초등학교의 뒷산으로 교가에도 나오는 용강산의 한 부분이란다.

성황당 자리 앞에서 사진을 찍은 일행들은 생각보다 짧은 산행이었던 만큼 아쉬움이 남아 산을 내려가기에 앞서 옛 KBS 중계 탑이 세워져 있던 곳으로 올랐다.

단풍나무 사이로 저 멀리 용담댐과 용담 옥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좀 더 청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속에 현재는 수몰로 인해 사라져 간 옛 용담면 소재지의 모습을 덧 그려보았다. 
  
◆산행을 마치며
내려오는 길,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다. 원래대로라면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란다. 하지만 누군가가 캐 가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송풍리 쪽에서 오르는 길보다 용담에서 내려가는 길이 제법 험하다. 지금은 용담댐으로 인해 지대가 높아져 도로에서 올려다 볼 때 높은 산이 아니지만 옛 말로 용담에서 이 산을 오르려면 ‘코가 땅에 닿는다.’고 했다고 하니 얼마나 가파른 산이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고 짧지만 즐거웠던 산행이 끝나갈 쯤 하늘하늘 가을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밭이 눈에 보인다. 늦가을 분위기가 한층 더해간다. 철모르고 일찍 피어난 철쭉꽃마저도 반하게 할 정도로 한층 더 깊어가는 가을을 뒤로하고 이렇게 11월 가을 산행은 마무리 됐다.

▲ 옛 KBS중계탑이 있던 곳에 오르니 저 멀리 용담댐과 옥거리가 내려다 보인다.

▲ 산 아래 도로곁에 피어있는 철쭉 꽃을 발견했다. 철쭉도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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