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규홍 새로운 진안을 열어가는 주민포럼

늦은 저녁, 집에 돌아오니 선관위에서 보내 온 17대 대통령 선거공보가 와 있다. 집에 유권자가 여럿이라 인원수대로 날아온 봉투가 한 아름이다. 애초부터 별 기대도 없었지만 펼쳐보니 역시나…. 번지르르한, 아니 그냥 보기에도 혀를 차기에 충분한 내용들이 태반이다.

초일류 국가건설에서 경제대통령까지. 무슨 약속이나 한 듯 온통 경제이야기로 시작해서 성공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명색이 한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직 숫자만이 바글바글 거리니 이거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다. 참, 반듯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사람도 있긴 했다.

2002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거의 될 뻔했던 어떤 사람은 아들의 병역문제가 불거지자 도덕성이 문제가 되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지금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후보는 그와는 쨉도 안 되는 비리와 불법이 혹은 사실로 드러나고, 혹은 의혹 속에서 뭉쳐지면서도 꿋꿋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와 비슷한 보수진영의 후보는 국민과 당원과의 약속을 제 맘대로 뒤집고도 2위를 먹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대략 난감이다.

경제가, 돈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라는 건 누구나가 다 인정하는 사실임에도 우리는 더 높은 경제지표를 그리며 오매불망 ‘경제를 살려 줄’ 지도자만을 찾고 있다. 그가 도둑놈이건, 사기꾼이건, 어떤 불법과 비리를 저질렀건 아무 상관도 없다.

오직 배만 불려줄 수 있으면 그뿐이다. 도덕, 양심, 정의, 약속, 이런 거는 이제 개도 안 받아 먹는다. ‘경제’라는 말의 마력 앞에 쪽을 못 쓰는 나라, 이게 우리나라 맞는가? 대한민국 맞는가? 우리는 이미 여기까지 타락해 있는 것이다. 슬픈 일이다. 욕 나온다.

나는 적어도 지금의 우리나라가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만일 이 나라를 떠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살기 고달파서가 아니라 맘이 불편해서 일게다.) 물론 ‘양극화’라는 말 속에 숨어있는 ‘상대적 빈곤’이야 인정하지만 적어도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굶어 죽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11번째의 무역대국이고 경제 대국이다. 청산의 대상이라고 그토록 부르짖는 양극화도, 그로인한 상대적 빈곤도 단지 우리가 가난해서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복지정책의 부재와 나라 안의 부가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 불평등과 썩어빠진 권력과 재벌의 결탁, 기득권층의 부패에서 오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 국민들은 오로지 성장만을 좇는 건지, 국가의 경제지표가 올라가면 양극화가 해소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잘 살게 된다고 누가 그러는가. 돈이면 다 해결된다고 진정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속임수에 불과하다. 말장난이다. 분별없는 성장주의와 개발주의는 결코 인민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

애초에 12명이 대통령후보로 등록을 마쳤지만 이미 짝짓기가 시작됐으니 몇몇은 사라지고 힘센 몇몇이 남을 것이다. 참 혼란스럽다. 싸움에 밀려 정책은 사라지고, 진지한 토론도 없고,(TV앞에만 서면 오금이 저리는 사람이 두엇 있어서 잘 안 된다고 하더라) 누가 살아남을지도 모르는 판국이니 어찌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과연 이런 판국에서 국민들이 어떻게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나저나 한미 자유무역협정 얘기 들어본지 참 오래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찬성, 반대 여론조사도 하고 토론도 하고 국회 앞에서 단식도 하고 그러더니 그 양반들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FTA반대하던 지식인, 정치인, 시민단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그 양반들이라고 속이 좋을 리는 없을 것이다. 뭐 그런 소리를 귀담아 들어주는 데가 있어야 말이지, 누가, 어느 언론이 떠들어 줘야 말이지.

대세는 자꾸 기울고 시간은 가는데 속이 타고 입이 바짝바짝 말라도 이 문제를 받아 안아야 할 인간들은 말이 없다. ?여론조사 1등에서 4등까지의 후보가 죄다 한미 FTA를 찬성한다고 떠들어대도 그걸 두고 따지는 국민이 아무도 없다. 유일하게 한미 FTA를 반대하는 정당의 후보는 여론지지율에서 바닥을 헤매고 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지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한미 FTA 국회 비준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참담하다. 곧 실현될 미래의 고통으로 서민이 내지를 비명이 바로 귓가에서 '웅웅'거린다. 누누이 강조한 대로 한미 FTA는 하나의 통상 정책이 아니다. 한미 FTA는 우리의 사회경제 정책의 기조를 결정하며, 일단 발효되면 폐기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를 시장만능 쪽으로만 몰고 가게 되어 있다.

양극화 해소나 복지 확충, 나아가 사회통합 등 그들이 내세우는 '개혁적인' 정책보다 훨씬 크고 근본적인,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책의 효과까지도 사실상 결정할 한미 FTA를 이들은 짐짓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위한다는 대다수 국민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우두머리 정책을 빼놓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단일화를 하자는 것일까?』 [정태인]

난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장애인이지만 어찌됐든 농민이다. 우리 집 가장인 내 아내가 농민이니까. 그러므로 난 FTA를 반대하는 농민의 입장에서, 이 나라의 90%를 차지하는 인민의 입장에서 투표를 할 것이다. 아직 나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당신은 어찌 할 것인가?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