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정상회씨
정 상 회씨
주천면 무릉리 어자(漁子)부락 출신
농협중앙회 인삼부 차장
재경주천면향우회 총무
대전중앙고등학교23회동창회 총무
재경주천면무릉리향우회 총무

조선 현종 때 사람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구운몽(九雲夢)의 주인공 양소유(성진)를 통하여 그가 온갖 부귀영화를 모두 누린 뒤에 깨달음을 얻기 직전, 여덟 미인(우리중생)에게 이렇게 전한다.

“천하에 세 가지 도가 있으니, 유도와 불교와 선술이요. 이 세 가지 중에 오직 불교가 높고, 유도는 윤기를 밝히며 사업을 귀하게 하여 이름을 후세에 전할 뿐이요. 선술은 허탄한 데 가까워서 자고로 구하는 자 많으나 증험이 없소.”

세상의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서 생로병사의 미몽에서 벗어 난 득도를 추구 한다거나(불도의 세계), 세상의 부귀공명에서 초탈하여 유유자적하고 있다 해도(선교의 세계), 입신양명하여 나라에 공을 세우고 벼슬에 올라 아름다운 미인들과 쾌락을 즐길 수 있는 부귀공명의 세계(유교의 세계)에서도 그 모든 것들이 꿈과 같이 허망하고 무상한 것이라고 서포는 우리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서포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도덕적 언어를 우리의 고향사람 정상회씨가 일찍이 어릴 적 구운몽에서 읽고 깊이 고뇌하고 상상하며 찾아 나섰던 그러한 이상의 세계(理想鄕)는 지금 우리의 어느 곳에도 없음을 그가 빨리 깨달음으로 간직한 것은 정상회씨가 빨리 현실 세계의 자기 위치를 찾아 오늘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된다.

정상회씨는 지금도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아버지 정성모(72세)씨와 어머니 이소제(70세)여사의 4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서 지금은 폐교되어 없어진 고향의 선봉초등학교와 주천중학교, 그리고 대전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의 고향 무릉리는 선암(立岩), 어자(漁子), 강촌(江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래는 어자리(漁子里)라 불리다가 일제 말 무릉리(武陵里)로 바뀌었다. 「고동(高東), 용서(龍西), 진북(鎭北)」지간에 위치한 것이 무릉도원이다. 이웃의 선암마을은 마을 뒤 바위에서 선녀들이 놀고 갔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1984년 인삼조합중앙회 금산인삼협동조합에 출신 고등학교의 추천을 받고 전형에 합격하여 기원으로 채용된 후, 1993년 인삼협동조합중앙회에 계장으로 발탁되어 상경하기까지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법칙을 지켜가기에 그의 몸가짐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진리의 한 가운데 서서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고통의 원인인 탐(貪)과 진(瞋)과 치(痴)를 없애고, 정견(正見:올바로 보는 것), 정사(正思:올바로 생각하는 것), 정어(正語:올바로 말 하는 것), 정업(正業:올바로 행동하는 것), 정명(正命: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 정근(正勤: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정념(正念: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정정(正定: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등의 팔정도(八正道)를 실천 수행하는 것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살아왔다.

상경하기 까지 고향에 머무는 그 기간에는 인삼검사요원으로 근무하던 김춘란(금산남이,44세)씨와의 버스 통근 중 차중에서 눈이 맞아 두 해 동안 교제하다 결혼하여 두 아들 낳아 잘 길러 살고 있으나 초기의 신혼생활의 행복함이거나 힘겨움도 지금 회고하면 그라서 그렇게 만만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술회한다.

1993년 상경하여 서울 구이동에 일백만원짜리 단 칸 전세방으로 시작한 그의 서울생활은 차라리 소꿉놀이였다고 정상회씨는 그렇게 이야기 한다.
정상회씨는 그 어려움 중에서도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금자탑(金字塔)을 쌓고, 끊어졌다 이어지고 이어졌다 끊어지는 학업을 계속하여 통신대학(경영학과)을 졸업한다.

농협중앙회와 축협중앙회, 그리고 인삼협중앙회가 2000년 통합되면서 그는 통합된 농협중앙회의 과장으로 승진하는 기쁨도 잊지 못한다.

함께, 결혼 열아홉 해의 그 해, 정상회씨는 그의 아내의 가슴에 빨간색 장미 30송이 꽃다발을 고맙다 안겨 주면서 기쁨인지 설움인지 알 수 없는 아내의 눈물을 보았다. 그 눈물은 인삼인생 23년을 살아 온 아직 불혹의 인생길에 겨우 접어든 자신의 지나간 세월의 다짐이었을 것임을 그는 안다고 했다.

2006년 그는 인삼부 차장으로 진급하였고, 그의 아내는 혼자 사는 노인 등 이 사회의 어둡고 시린 곳을 찾아서 봉사활동에 참가 한다.

우리의 고향사람 정상회씨.
이제 그들은 그들의 서울 속의 생활을 마치면 무릉도원 그들의 고향을 찾아서 돌아 갈 것이다. 그리고 항상 성실하게 고향을 지키면서 살아 갈 것이다.

겨울이면 뒷동산 눈썰매 지치면서, 5월이면 사래 긴 밭 갈면서 종달새 울음소리 듣고, 가을에는 북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 배웅하며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이들이 있어 우리의 고향은 또 그렇게 지켜져 갈 것이다. (정상회씨 연락처: 011-667-7689)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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