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밤 설치며 준비해 온
매콤한 고추전이며 따끈한 팥칼국수
이순주(84, 마령면 강정리)

밤새 내내 무섭게 쏟아지는 비. 학교가 끝나고 밭으로 가 보았다.
사흘이 멀다하고 계속 내린 비로 잡초풀로 뒤덮힌 밭.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해 우두커니 서 바라보고 있다가 부러진 가지에서 청양고추를 따 감자며 오징어를 넣고 전을 부쳤다.
이렇게 전을 부치니 한 친구의 얼굴이 문득 떠 오른다.
여러 친구들을 위해 고된 몸 마다안고 단잠 설치며 꼭두새벽에 일어나 준비해서 가져온 음식들. 매콤한 고추전이며 따끈따끈한 팥칼국수.
그 친구가 학교를 그만 두니 지금은 그 맛을 먹을 수가 없다.
지척이 철리라고, 자주 볼 수 없는 얼굴.
정숙아. 그때는 정말 고맙고 맛있게 먹었어. 다시 학교로 돌아와 우리 옛정을 나누면 어떻겠니.
보고 싶다. 정숙아.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얼큰한 너에 고추전이 정말 먹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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