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속에서 얻어가는 깨달음을 통한 인생

송 주 영 씨주천면 신양리(금평) 출신고미술화랑 「문 예」대표한국고미술협회 감정위원(도자기분야)한국고미술협회 동대문 지회장재경주천면향우회장/주경장학회 이사장역임좪일체만법(一切萬法)이 진재자신심중(盡在自身心中)이어늘 하불종어자심(何不從於自心)하야 돈현진녀본성(頓現眞女本性)고 보살계경(菩薩戒經)에 은아본원(垠我本源) 자성청정(自性淸淨)이라하니 식심견성(識心見性)하면 자성불도(自成佛道)라 즉시활연(卽時豁然) 하야 환득본심(還得本心)이로다.좫-모든 법이 모두 자신의 마음가운데 있거늘, 어찌 자기의 마음을 따라서 진여의 본성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서“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였으니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 스스로 부처님 도를 성취하는 것이니 곧 활연히 깨쳐서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필자가 송주영씨를 만나러 압십리 그의 화랑을 찾았을때 그는 성철스님의 법어집 돈황본(敦惶本) 육조단경(六祖壇經)을 탐독하고 있었다.송주영씨. 그는 일곱 살 적 향리의 사숙(서당)에서 ‘사자소학’을 시작으로 17세에는 ‘사서삼경’을 통독할 만큼 일찍부터 한학에 심취하여 있었단다. 송주영씨의 이웃에 한학자이며 서예가였던 김덕수씨라는 분이 있어서 일찍부터 그에게 한의학에 입문하기를 권장하므로 어쩌면 본인은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송주영씨는 그렇게 전해준다. 그러한 그의 영향의 까닭이었던지 송주영씨의 2세 송승원(35세)씨는 대학에서 한의학을 전공하고 지금 서울에 한의사로서 한의원을 개업하고 있었다.송주영씨 그 또한 군 입대 전 ‘동양의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당시 통신강의록을 통하여 2년동안 수업하여 한때 향리에서 한의학 계통으로 많은 고향사람들에게 봉사한 흔적도 있었다.1944년 2월 3일생 은진 송씨 후암공파 싸청당 17세 손임을 가계를 밝힌 송주영씨는 5남 5녀중의 장남으로 주천국민학교(당시)를 거쳐 주천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제대하고 결혼하여 고향을 떠날 때는 1968년 6월까지 고향에서 한학과 한의학에 심취되어 송주영씨 나름대로의 고향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었다.많은 형제들 중의 장남으로서 송주영씨였지만 선대에 유지하고 있었던 재산의 은덕을 입고 자라서 어릴적부터 생활에 대한 쪼들림은 비교적 느끼지 못하고 자랐단다.그러나 상경하여 정착하기까지 졸업장이 없어 취업할때 그가 겪었던 송주영씨의 마음고생이나 쓰린 추억은 상당했었던 것 같았다. 그는 한번도 자신이 못배운 한에 젖어본 적은 없었지만 우리 사회의 졸업장이 갖고있는 색맹적 방식은 많은 기분 나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수도 육군병원에서 의무병으로 제대한 그는 일찍 눈 맞추어 두었던 안영자(동향면)여사와 결혼한 다음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길에 오른것이 1968년 6월이었다. 그리고 출판사에 취업하여 그의 그후의 운명을 가름하는 3년을 지내고 뜻한바 있어 처음으로 ‘고서화’에 관심을 갖는다. 그 계통에서 안목을 넓히면서 차츰 ‘고미술’과 ‘출토유물’쪽으로 시선을 돌려 그의 오늘에 이른다.‘고서화’에서 ‘고미술’ 그리고 ‘출토유물’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송주영씨 그가 고미술협회 도자기분야의 감정위원이 되기까지 그의 갈등이거나 몸부림을 생략하자.이제 송주영씨는 그의 애호가로서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거나 긍지는 크다.“진품·명품에 대한에 정의를 내리기까지의 과정은 자신의 양심과의 싸움일때가 참 많지요. 고서화의 매매 또한 인격의 매매라는 신념으로 지금까지 이 길을 왔습니다.”종교에 관하여 물었다.우리 민족의 모두가 그러하였듯이 송주영씨 역시 유교를 숭상하는 사람이었다.“유교란 원래 공자의 사상을 존신(존경하고 믿음)하는 사상으로서 중국 고유의 사상을 종합하여 효.제.은.신(孝 悌恩 信)을 주로한 일상생활의 실천도덕을 완성하고 인(仁)으로 최고 이념을 삼아서 수신하고 제가하여 치국평천하를 이룰 수 있는 자질을 함양하는 것을 본래의 뜻으로 하였었던 것입니다.”이렇게 유교의 본 뜻에 빠져 있었던 송주영씨가 불교에 귀의한다. 그것은 별다른 송주영씨의 마음의 변화라기 보다는 한세상을 지나고 회갑을 맞고보니 사바세계의 모든 것이 허망 그것임이 깨달아지고 그 역시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임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송주영씨 그는 우리의 전통성으로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강조하다가 문득문득 그의 가슴에 와닿는 인생의 허망함 앞에 마음을 끓고 불도에 동반한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이제 우리의 고향 진안사람 송주영씨가 기나긴 인생의 여정에서 정직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한학에 심취하면서 읽고 각인된 그의 사상을 현실적으로 우리 고향사랑으로 이어가려는 각고의 노력을 우리에게 강조한다.그리고 송주영씨는 우리 진안사람들에게 말한다.참여하고 화합하고 용서하고 이해하자고.그의 가슴속에 각인된 범소, 유상, 계시, 허망의 사구계가 우리가 살아오면서 잊고 있던 가까운 이웃들의 삶과 삶속에 참 깨달음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필자는 그의 전송을 받았다.(H/P : 011-254-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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