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실제 생활에서 시집살이가 사라졌지만, 아직도 시집가는 딸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시집살이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한국의 구전민요에 남존여비의 봉건적 도덕률 속에서 사회적 구속에 매여 살던 며느리들의 서러움이나 생활고에 쫓기는 모습, 졸음과 싸우는 모습, 그리고 친정을 그리워하는 애달픔 등 여러 유형의 시집살이에 대한 노랫말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시집살이의 역사가 꽤나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살이>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무엇에 종사하거나 기거하여 살아감을 뜻한다고 되어 있다.하지만 <살이>가 명사나 용언의 어간 뒤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더부살이 / 겨우살이 / 시집살이 / 하루살이 / 머슴살이 / 타향살이 / 처가살이 등으로 그다지 편안한 삶의 모습을 연상시켜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난 진안에 와서 자식 낳고 기르며 15년을 살아왔다. 그때 낳은 자식이 벌써 자라 진안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으니,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나 보다.그 사이 진안은 많이도 변했다. 우선 5만 명이던 인구는 3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가구당 인구수도 3.5명에서 1명씩이 줄어 2.5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진안에 거주민이 줄어들다 보니 학생수도 줄어 ’97년에 5천명이던 학생들이 지금은 3천명에도 못 미친다.용담댐 수몰로 인한 군세위축과 인구감소에 이어 이제는 자연감소도 문제다.1년에 진안에서 242명이 태어나는데 비해 336명이 사망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요즘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 진안경제라고 특별히 좋을 리 없겠지만, 고향에 거주하며 살아가는 상인들과 주민들 입에서는 진안에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사람이 없으니 벌어먹고 살 것이 없다는 얘기다.용담댐 건설 당시만 해도 완공 후에는 수자원을 이용한 관광산업이나 레저산업으로 군(郡)의 경제가 활성화 될 것처럼 이야기 하던 행정에서도 최근에는 전라북도의 <상수원보호구역지정> 주장 앞에 변변한 대응 논리조차 없는 모양이다.이글을 읽는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다보니 날더러 진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칠월 더부살이가 주인마누라 속곳 걱정한다>며 탓하는 이도 있겠지만, 생거진안(生居 鎭安)이 <진안 살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바람과 걱정으로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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