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김영수씨
김 영 수 씨
진안읍 군하리 출신
법무사김영수사무실 대표
재경진안군민회재무간사
재경진안읍향우회 총무

필자가 나이에 상관없이 인간에게서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 그것은 인간이 가장 바쁜 일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일하는 자세를 지키고 있었던 그런 순간을 바라보는 때였음을 생각한다.

조직사회를 이루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는 고등동물로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표현되지만 초기의 인간이란 어느 쪽의 발전도 지극히 느린 상태로 발전되어 왔다. 인간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인간이 동물로서의 삶을 영위함에 있어서 지혜를 간직한 뇌의 발전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하는 근원이라고 간주되었다.

그러나 가끔씩 필자는 지금 이 즈음 인간이 갖는 인간 지혜의 진화는 정지하거나 후퇴한 것은 아닌가 지극히 쓸데없는 기우이겠으니 그렇게 염려스러울 때가 더러 있다. 인간의 성공이거나 실패이거나 그것은 결과의 판단이었지 인간이 갖는 지혜의 결론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간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가 우리의 고향사람 김영수씨를 만나 이야기하면서 받은 느낌 모두도 그런 것이었다. 그는 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리고 삶의 의미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갖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경계의 벽을 쌓지 않는 것은 그의 직업관이라 하더라도 그의 가슴에 숨겨져 있는 정서적 직관력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 젊은이의 모럴센스(moral sense)라 할 수 있을 성 싶었다.

고향에 관한 김영수씨의 관념과 현실은 그리고 그의 처지는 조금은 특이했다. 출생하고 3개월 만에 조상의 고향이고 아버지의 고향, 그의 본향을 떠나 새로운 그의 고향을 형성한다.

마령면 평지리 솜안마을 그의 조상이 대대로 살아 온 그 고향을 떠나 순전히 타인에 의하여 진안읍 군하리에 그의 고향을 정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다고 했다.

김영수씨는 1972년 7월 아버지 김종주(63세)씨와 어머니 이경순(60세)여사 사이에서 아래로 여동생 한명을 둔 장남으로 태어나 3개월 만에 고향을 떠나 진안초등학교와 진안 중학교를 거쳐 전주동중, 전주 상산고등학교를 그리고 전북대 상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법무사 임용고시에 합격 이듬해 법무사 사무실을 현 위치에 개설하고 오늘에 이른다.

인간의 성공관념에 관한 외관적 외형주의를 그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이 갖는 약속과 신용을 제일로 하는 아름다운 사회의 모습을 그는 좋아한다고도 했다. 겸손과 건전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고 자율과 긍정적 사고방식을 앞세운 권리와 의무 중 의무를 더욱 중시하는 사회의 도덕성을 그는 주장한다.

아직도 그의 본향에는 88세의 할아버지와 85세의 할머니가 생존하고 계신다. 김영수씨는 고등학교 적 농활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그 의미들과 그때 주로 감명 깊게 읽었었던 소설 대지(大地)를 생각하고 그쪽에 가끔씩 향수를 동반하는 명상에 잠겨 고향의 그 땅들을 추억하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대지는 인간의 노동의 대가로 수확물을 제공해 주는 원천인 대지의 소중함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을 조명한 이야기이다. 미국사람인 펄벅(pearl s. Buck)이 쓴 아시아의 이야기여서 그에게 더욱 감명 깊다고 했다.

대지는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왕룽과 그의 일가의 생애를 통해 신해혁명의 와중에서 격동하는 근대 중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척박하고 광대한 땅에서 생활하는 중국 농민의 잡초와 같이 끈질긴 모습을 기록한 어쩌면 그 시대 우리의 이야기와 흡사한 것이어서 잊히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고향사람 김영수씨. 몇 시간 그와의 대화에서 필자는 문득 선비를 느낀다. 선비의 사전적 해석은 '옛날에 학식은 있으나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매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 품성이 얌전하기만하고 현실에 어두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으로 되어 있다.

이것들이 필자의 주관적인 관념일 수도 있겠고 또는 아첨 성 기록일 수도 있겠으나 하여튼 필자의 생각은 그랬다. 가만히 그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는 영락없이 절개 있고 어수룩한 선비의 표정인 것을 어쩌랴.

소동파는 이렇게 노래한다. 菊殘猶有傲霜枝(국잔유유오상지:국화는 오히려 서리에 오만한 가지를 남겨 가진다.)라고. 그래서 김영수씨는 늦가을 피어있는 국화꽃을 특별하게 좋아한다고 했다.
김영수씨 연락처: 018-629-1453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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