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군 평생학습프로그램 '서예교실'

▲ 화선지에 붓글씨를 써 내려가는 수강생들. 붓을 잡는 순간만은 그들에게서 여유를 찾을 수 없다.
코끝에 와 닿는 묵(墨)향에 평온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군민자치센터에 은은하게 퍼진, 적당히 맡기 좋은 묵향을 더듬으며 서예교실(강사 노전 김상영)에 참여한 10여 명의 지역 주민들을 만났다.

3년간 이 곳에서 서예를 갈고 닦은 허양순 씨가 하얀 화선지를 곱게 접어 책상 위에 펼쳤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붓 끝이 어느새 긴 침묵을 깨고 부드러운 획을 긋는다. 한 숨, 한 숨에 긴장이 서린 붓 끝은 쩍 쩍 갈라지면서 메마른 매력을 내뿜는다.

서예교실의 최고 고참인 허양순 씨는 이미 이곳에서는 수준급으로 통했다.
이제 겨우 몇 달이 조금 지난 주민들은 한 손 가득 시꺼먼 먹물이 묻어있지만 허양순 씨는 최고 선배답게 글을 쓰는 내내 손톱 끝에 먹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

"붓을 잡으면 마음이 평온해져요. 한 획씩 그어나갈 때마다 심혈을 기울이게 돼 집중력이 엄청나게 필요하답니다." 그래서일까, 에어컨을 가동 중인 교실이지만 허양순 씨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 체본을 보며 연습 중인 김재환씨. 기자가 사진을 찍자 아직 숙련안 된 솜씨라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뒤늦은 열정, 이제 시작이다
두 달 만에 서예교실에 나왔다는 신영자씨는 허겁지겁 화선지를 펼쳤다. 아직은 익숙치 않은 탓일까, 시꺼먼 숯덩이라도 만진 듯 양손이 새까매졌다. 아직 초보라 그런 것이라며 위안하던 신영자 씨는 두 달만의 나들이에 붓조차 마음대로 가지 않아 속이 상한다.

수강을 시작한 지 갓 세 달, 서예교실의 청일점 김재환 씨에게 서예는 무기력했던 일상에 작은 돌파구가 됐다. 전 진안농협 용담지소장이었던 김재환 씨는 이제 용담지소장이 아닌 서예교실의 청일점으로, 서예교실의 막내로 붓글씨 연습에 한창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위 아주머니들의 한석봉 못지않은 글 솜씨에 김 씨는 금세 머쓱해지기 일쑤다.
"김상영 강사님이 남자였기에 망정이지, 아줌마들 틈에서 배우려니 참 어색해요. 거기다 아줌마들은 쓱쓱 멋들어지게 잘만 쓰는데 난 아직 배운지 얼마 안 돼 글 솜씨도 형편없지. 창피해서 원, 허허허"

사회에서는 전 농협조합장으로써 항상 진두지휘했지만, 퇴직하고서 서예교실에 수강생으로 있는 지금은, 주위 아주머니들보다 뒤떨어지는 글 솜씨가 창피하기만 하다.

하지만, 팔에 근육통이 생길 정도로 끊임없이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김재환 씨는 곧 누구 부럽지 않은 서예가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아직 갈 길 멀지만 
서예교실의 강사로서 모든 수강생의 체본을 각각 만들어 주며 겨우 쉬는 시간을 맞은 노전 김상영 서예가.
벌써 붓을 잡은 지 30년이 넘었다. 세월의 흔적일까, 노전 김상영 서예가의 붓 끝은 절대 망설이는 법이 없다.

절대적으로 거친 손놀림이지만 막상 화선지에 펼쳐진 그의 글에서는 유연함이 서려있다. 그래서 그를 붓글씨의 예술가라 부를 터이다.

그의 체본을 받은 한 수강생은 '나도 저렇게 써야지!'하는 마음으로 붓을 잡지만 흰 화선지에 쉽사리 붓 끝이 놓이질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쭉쭉 써내려가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냔 말이지. 그래도 연습을 많이 하니까 한문은 많이 알게 돼 좋구먼. 조금만 더 있으면 곧 한시라도 한 곡조 읊을 수 있겠어.호호"

김상영 서예가는 서예는 어른들에게도 물론 좋지만, 특히나 자라나는 아이들, 청소년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른들에게는 취미의 도구로, 어린이들에게는 자존감과 자아 형성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됩니다. 운필하는 과정에서 숨 쉬는 것 하나, 자세하나, 정신 즉, 마음가짐 모두를 바르게 해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지·필·묵·연만 가지고 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묵의 예술에 집중하는 서예교실의 김 강사와 수강생들. 올 가을 전시회를 연다는 그들의 발전이 기대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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