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학교에 '美 쇠고기 안정성' 홍보
정부, 학교에 '美 쇠고기 안정성' 홍보
  • 박채량 기자
  • 승인 2008.06.09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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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교육청 뒤늦게 회수조치 등 어수선

관내 초·중학교에 '광우병, 제대로 알면 다시 보입니다'라는 제목의 홍보물이 배부돼 논란이 일고 있다. 더군다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름으로 일선 지역 교육청을 통해 각 단위 학교로 무작위 배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일선교사들은 혼란을 겪었으며 진안교육청에서는 뒤늦게 회수에 나서는 등 작은 소란이 일었다.
배포를 시도했던 홍보물의 내용을 살펴보면 '광우병을 의심하는 엄마를 훈계하는 두 자녀의 만화'와 '미국에서도 30개월 이상 된 소를 먹는다' 등 국가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문제 '미국산 소고기'를 먹어도 안전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각 학교에 이 문제의 홍보물을 배부한 진안 교육청은 일단 '농산부'의 공문대로 우편만 보냈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진안 교육청 관계자는 "5월 넷째 주에 농산부장관 명의로 공문과 함께 학교별 담당자 앞으로 우편물이 와서 이를 전달했을 뿐, 우편물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하게 몰랐다."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일, 홍보물의 내용을 파악한 후,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다시 홍보물 회수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각 학교의 담당자 앞으로 배부된 '광우병, 제대로 알면 다시 보입니다'라는 책자형 홍보물이 일부 학교의 학생들과 가정에 전달된 뒤였다.

홍보물을 배부한 일부 담당교사들은 '무슨 내용을 담은 홍보물인지 모른다'라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한 교사는 "전교생에게 배부를 했는데 교육청에서 다시 회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회수했다."라며 "그러나 배부한 내용물의 전체가 다 회수되지는 않았고 무슨 내용인지는 안 봐서 모른다."라고 말했다.
 
◆교사들 반응 제각각
국가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우리 지역 초·중 교사들의 반응은 서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관내 대부분의 초·중학교에 홍보물이 배부된 가운데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배부 전, 홍보물의 내용물을 미리 파악해 자체적으로 배부를 하지 않았다.

A초교 한 교사는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 회의 결과 배부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B중학교의 담당교사 역시 "홍보물이 온 것은 사실."이라며 "내용이 요즘 국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나누어 주지 않고 있는 찰나 마침 교육청의 회수조치가 내려졌다."라고 말했다.

반면, 홍보물의 내용을 파악하지 않은 채 여과 없이 아이들에게 배부한 교사도 적지 않다. C초교는 전교생이 이 홍보물을 전달받았다. 이 초교의 담당교사는 "홍보물의 내용은 읽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제목이 '광우병, 제대로 알면 다시 보입니다'는 맞다."라고 답했다. 홍보물이 배부된 대부분의 학교가 교장조차도 홍보물의 내용을 파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E초교의 경우 저학년(1, 2, 3학년)에만 홍보물이 배부됐다. 담당교사에 따르면 고학년의 경우 현장학습, 야영 등으로 배부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 이 교사에게서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냐."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F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그런 홍보물을 본 것 같긴 한데…."라며 "교장선생님도 지금 학생들 수업을 진행 중이라 확인할 길 없다."라고 말했다.

황당한 해프닝이 벌어진 학교도 있다. G학교는 지난 3일 본 사의 취재 당시만 해도 홍보물 배부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지난 4일 재확인을 위한 취재 통화에서 담당교사는 "취재 후 혹시나 해서 찾아보았는데 재활용 쓰레기 함에 있더라."라며 "때마침 교육청으로부터 회수해달라는 전화를 받고 전권 회수했다."라고 답했다.
 
◆줘? 말아? 당혹스런 교사들
홍보물의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학생들에게 책자를 배부한 교사들, 하지만 일선의 교사들은 내용물 파악한 후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다.

H중학교의 한 교사는 "차마 배부하지 못했다."라며 "이 홍보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고 오히려 기자에게 반문했다.

I초교의 교사 역시 홍보물을 읽고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이 교사는 "30개월 이상 된 소를 먹어도 안전하다고 쓰인 홍보물을 아이들과 모두 함께 보았다."라며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지적해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일종의 교육 자료로 활용했다."라고 말했다.

배부를 거부한 다른 교사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가정에 전달이 되면 학부모로부터 항의전화가 올까봐' 배부하지 않은 학교도 있었다.
 
◆학생들, "먼저 먹어 보던지"
농산부가 지역의 학생들을 상대로 해괴한 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 지역의 초·중학생들이 쉽게 녹아들지는 않는다.

우리 지역의 학생들이 홍보물을 배부한 모든 관계자에게 일침을 가하는 글을 보내왔다.
한 초등학생의 글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얼마 전 '광우병 제대로 알면 다시 보입니다. 라는 책이 왔다. 읽어보니 광우병은 괴담이라고 한다. 또 30개월 이상 된 소도 안전하다고 한다. 내 생각은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거 같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보냈다면 자기가 직접 30개월 이상 된 소를 먹으면 믿음이 가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믿음이 안 간다.(중략)"

작고 외진, 산골짜기 마을에 '미친 소, 먹어도 무방하다'라는 내용의 홍보물을 뿌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 지역의 초등학생들이 쓴 감상평. 교육이라는 절대적인 라인을 통해 '미국산 소 수입'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던 홍보물이 정부가 원했던 효과는 얻지 못한 채 회수 되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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