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다시 만나 지금껏 형제자매처럼

1950년,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아픔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한국전쟁은 많은 피해와 고통을 안겨 주었지만 좋은 인연도 만들어 준 모양이다.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 온 가족과 그 가족에게 두 달여 동안 거처를 내어 준 가족이 30여 년 만에 해후해 가족의 인연을 맺었다.

한국전쟁 발발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7월, 어둠이 내려앉고 있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된 배병진 씨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천면 갈용리 갈두 앞 도로에 다다랐을 때 노숙을 준비 중이던 한 가족을 만났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인가를 놔두고 왜 노숙을 하려고 하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니 우리 집으로 가시죠. 나는 이 아래 장음(진그늘) 마을에 살고 있으니 하룻밤 유하고 가시오."

그 가족을 집으로 데려와 저녁을 같이 먹고 아래채 방을 치워 그곳에서 머물게 했다.
그 가족은 충북 어느 면에서 살고 있었는데 가장이 부면장을 지내 혹시라도 해를 당할까봐 무작정 피난을 떠난 길이었다고 한다.

"딱히 찾아갈 곳이 없으면 불편하지만 우리 집에서 한 식구처럼 지내도록 하시죠."
배병진 씨의 권유를 피난을 떠나온 가족도 받아들였고 그 때부터 함께 밥도 해먹고 농사일도 거들면서 두 달여를 보내다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뒤로 소식도 듣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다 3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어느 날 다시 인연의 끈이 이어졌다.

마을에 검은 승용차 하나가 들어서더니 중년 부인과 두 청년이 마을회관에 와서 사람들에게 집을 물었다고 한다.

"예, 그 분이 우리 형님인데 지금 집에 계실 겁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배병진 씨의 집을 물은 그 여인은 한국전쟁 당시 배씨의 집으로 피난을 왔던 그 가족의 딸 이순금씨였다.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처녀가 중년여인이 되어서 다시 찾은 것이다. 사연은 이랬다.

"아버지가 병석에 오래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시게 되어 집안 식구들이 다 모였는데 유언을 하셨어요. '평생 악하게는 안 살았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갔을 때 큰 은혜를 입었던 배병진 씨를 그 후 한 번 다시 찾아가서 고마웠다는 인사조차 못하고 죽게 되어 큰 죄를 짓고 가는 것 같다.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이라도 그 분을 찾아 뵙고 만약 돌아가셨으면 산소에 가서 성묘라도 드리고 오너라.' 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제가 찾아뵈었습니다."

이순금 씨가 그렇게 자신의 두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던 것이다.
소식을 듣고 배병진 씨도 당시 함께 생활했던 가족들을 불러 모았고 아예 형제자매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후 이씨는 배씨 내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부모에게 하는 것처럼 때마다 찾아와 인사를 드리고 가족 대소사에 참가하는 등 친형제자매보다 더한 마음을 나눴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고인이 된 배씨의 제사에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고 배병진 씨의 아들 배정기 씨는 "자기 욕심에만 사로잡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이순금 씨 가족과의 인연은 우리에게 참 소중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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