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론> 박선진 소설가·주천면 무릉리

이만큼 살았으면 진안사람 아닐까? 나도 말이다. 그런데도 늘 납득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런 낯섦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양이다.

그네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도시의 살벌한 경쟁을 피해 자연의 손에 아들의 양육을 맡기러 이곳으로 옮겨온 사람이다. 그네가 들려준 귀여운 사기꾼 이야기 하나.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간 날, 모든 것이 서툰 외국인 아내와 같이 병원에 온 그 농부에게 새끼암염소를 한 마리 샀다. 꼭 암염소여야 한다고 하는 그네에게 농부는 틀림없이 암염소를 갖다 주었다.

그런데 이 염소 상태가 좋지 않았다. 콩처럼 굴러야할 똥은 똥꼬에 질질 묻어 다녔고, 털의 윤기며, 눈곱이 낀 것까지. 그런대도 그네는 온 정성을 다했다. 뿌리를 위해 잘라내 버리는 더덕 순을 얻어다 먹이고 좋다는 풀을 다 베어다 먹였다. 그러자 염소의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자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염소가 담벼락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왜냐고 묻는 그네에게 마을 사람들은 그 염소가 암놈이 아니라 수놈이라서 그런다고 했다. 그러면서 염소 다리 사이에 달린 저것도 못 보냐고, 농부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했더니 농부는 도리어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자기는 분명 암염소를 보냈노라고. 그네는 염소는 중간에 암컷이 수컷 되느냐며 넘어가주었다. 그러고도 그네는 또 그 농부에게 토끼를 샀는데 농부는 시장에서 물어본 가격의 세 배를 불렀다. 왜 두 번씩이나 그런 바보짓을 했느냐는 내 물음에 그네의 대답은 이랬다.

외국인 아내를 병원에 데리고 오는 남편이면 착한 사람이고, 그네 보기에 형편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더라는 것. 듣고 보니 귀여운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막무가내인 일방통행의 이웃이 계신다.

시골에 사니까 도시에 사는 가족이나 지인들이 농산물을 사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팔아달라고 나도 부탁하기도 한다. 내가 농사를 지어서가 아니라 이웃들이 가끔 부탁을 할 때가 있어서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서로 좋은 일이라고 마음을 썼다. 생산자가 부르는 대로 값을 받아주는데 별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새로 귀촌한 이가 많이 고심했던 듯 입을 떼기를,

"도시에서는 둔갑하지 않은 우리 농산물 좋은 농산물 사서 좋고, 농부들은 제 값 받아 좋은 일이라 여기며 저도 사 올려 보냈어요. 그런데 도시에서 그러는 거예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거기서도 농협을 통해 가격을 알거든요. 그래서 차별화된 작물이라고 말은 했지만 괜히 찜찜해요. 중간에 제가 챙기나 생각할까봐. 특별히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 줄 아는데 "

그럴 수 있겠다. 내가 지은 것이면 값이 더 온대도 꼭 그 값만으로 챙겨 보낸 것은 아니겠거니 받겠지만 남들 것을 팔아주면서 중간이득을 챙기는 성 여길 법도 했다.

콩을 한 가마쯤 사서 올려 보내고 나니 또 부탁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웃에게 " 요새는 처음보다 값이 내렸다면서요. 농협가격으로 주세요. 혹 의구심을 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는데 " 지난번대로 혀. 헐라면 허고 말라면 마라" 내차게 전화를 끊어버리시는 막무가내 이웃 분,

참 이상도 한일이다. 당신들이 차타고 시장에 나가거나 혹 농협에 내면 자기 손으로 들어다주고 값도 더 내려서 받으면서 가만히 집에 앉아서 심부름하는 우리가 가져다가 부쳐주는데도 더 비싸게 달라는 이유를 모르것다.

그리고 또 하나, 음식점에 가면 왜들 하나같이 배짱이신지. 내 돈 내고 밥 달라는 것도 죄스러울 일인가 싶다. 친절은 약에 쓸려도 없다. 먹으려면 먹고, 말라면 마라. 하시는 것 같은 태도에 돈 보다 스트레스가 더 걱정된다. 그래도 칭찬하고픈 사람들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이산의 상가들은 참 친절하다.

그래서 음식 맛도 더 좋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매주 명사들을 모셔다가 특강을 하는 군수님의 노고를 알면서도 정작 필요한 것들은 이런 것이 아닌지 싶다, 너무 목표를 높게 잡으면 이루기가 어려운 법, 주변의 작은 일부터 변화해보면 싶다.

친절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공정한 거래는 기본, 친절은 덤. 심리학에서는 덤이 더 구매력이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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