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폐교활용 현장을 가다 (1) 전북 장수군 하늘내들꽃마을

농촌에 점점 늘어나고 있는 폐교는 '절망'의 공간일 수도 있지만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희망'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 6월19일부터 21일까지 한국언론재단 현장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의 성공적인 폐교활용 현장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 이웃 군인 장수군 천천면 '하늘내들꽃마을'을 소개합니다. 마을 할아버지가 투망 연습을 하고 또 다른 할아버지는 경운기를 타며 운행 코스를 연구하게 한 옛 연평초등학교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편집자

▲ 폐교가 온갖 청록색으로 뒤덮였다. 무성한 풀들마저 멋스럽게 다가오는 이곳은 낡은 세종대왕 동상이 옛날 학교였음을 암시한다.
지난 19일, 굽이굽이 가막리를 넘어 보이는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하늘내들꽃마을(전 신전마을)을 찾았다.
이미 폐교가 된 연평초등학교 주위엔 산이 걸쳐있고 학교 앞으로 금강이 유유히 흐르는 마을은 여느 시골풍경과 다를 바 없이 조용한 분위기다.

마을 어귀에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하늘내들꽃마을지도'를 따라 목적지인 연평초등학교를 찾던 중 밭일을 막 끝낸 마을주민을 한 명 만났다. 그런데 꽤 젊다. 요즘 농촌에서 젊은 사람을 60대 기준으로 세우는 반면, 이 마을에서 만난 농민은 30대 정도의 말 그대로 '준수한 젊은이'였다.
처음 만난 주민이 젊은 농민 이어서일까, 이곳은 왠지 모를 생기가 느껴진다.
 
◆사람향기 그리웠던 시골마을
신전마을엔 25가구가 살았고 60대를 넘긴 고령인구가 대다수였던 활기를 잃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신전마을이 힘찬 기지개를 켠 것은 어느 낯선 도시 사람이 마을의 폐교를 매입한 2003년도부터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박일문 대표가 시골폐교에서 인터넷을 통한 쇼핑사업을 구상하면서 연평초를 매입하게 된 것이다.

"전국 각지의 폐교를 탐방하다가 연평초를 보고 한눈에 매료됐습니다. 어느 정도 마을과 떨어져 있지만 길이 잘 나있었고, 학교 앞으로 금강이 멋지게 흐르더군요. 보는 순간 '아, 이곳이라면 성공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과거 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살고 어린 아이들이 꽤 있던 시절, 아이들을 위해 땅을 기부하고, 직접 돌담을 쌓아 올린 학교를 생전 알지도 못한 도시 사람이 덥석 사버렸을 때 주민들의 상실감은 쉬이 표현하기 어려웠다.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폐교를 매입했을 때 주민들과 어떻게든 함께 가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을학교가 주는 존재감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친해지기가 쉽진 않았죠. 경계의 눈초리를 어떻게 푸느냐가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먼저, 아무 집이나 가서 밥 달라고 때부터 썼습니다. 하하"

도시에서 이웃집을 찾아가 '밥 좀 주세요.'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지만, 시골에서는 이게 통했다.
박 대표는 학교를 매입해 민박촌으로 꾸미면서 학교의 추억과 관련된 것들은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졸업생들이 기증한 이순신 장군 동상, 세종대왕 동상, 어린 시절 하교하며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다 꽃을 피웠던 등나무 벤치까지 고스란히 간직했다.

"학교란 모름지기 추억과 상통하잖아요. 졸업생들의 손때가 하나하나 묻어있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골에는 낡은 학교가 더 어울리는 이유도 있고요. 폐교를 매입해 사업을 시작한 후로 연평초 졸업생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모두 그대로 간직된 학교를 보며 고맙다고 해요.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사회적인 공간입니다. 때문에 섣불리 사유화했다가는 어떤 사업을 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죠."

박 대표는 폐교를 매입해 민박촌을 꾸미고 인터넷 쇼핑사업을 하고 있지만 폐교를 개인 소유물로는 여기지 않는다.
 

▲ 하늘내들꽃마을의 지도. 도시아이들의 체험학습에 사용된다.
◆낭만 찾아오는 도시아이들
폐교가 된 연평초등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과 격리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푸른 운동장, 빽빽이 들어선 파란 잔디가 햇빛을 받아 유난히 보석처럼 반짝인다.

폐교 앞에 흐르는 금강 역시 방문객 유치에는 소중한 아이템이 됐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방문객 유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생각이다. 여느 시골의 체험학습장도 이곳과 마찬가지로 경관이 빠지지 않으니 체험학습으로 성공하려면 다른 곳보다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

"경운기 체험을 예로 들면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마을 한 바퀴를 도는 것만으로는 금방 지루해져요. 도시 아이들은 경운기가 어떤 용도로 쓰는 것인지조차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 마을은 할아버지가 경운기에 아이들을 태우고 밭으로 이동합니다. 아이들에게 경운기를 이용한 밭일을 설명해주고 옥수수를 함께 따요. 아이들이 직접 수확한 옥수수를 싣고 다시 경운기에 올라 마을입구에 내려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제작한 마을지도를 나눠준 후 00할머니를 찾아가라고 하죠. 아이들이 지도를 보고 할머니를 찾아가는 과정에 만나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 체험의 과정입니다. 할머니 는 도착한 아이들에게 옥수수를 삶아주고, 옛날이야기 등도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옥수수 삶는 시간을 지루해 할까 봐 봉숭아 물도 들여줘요. 할머니 집에서 나와 경운기에 다시 올라탄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함께 냇가에 물놀이를 하러 갑니다. 물고기 잡는 도구를 잔뜩 챙긴 할아버지는 물고기를 잡으면서 잡는 물고기들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이런 것이 바로 현장 체험이고 생태 학습인 것이죠."

박 대표는 물론 하늘내들꽃마을에서만 이런 체험들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지역의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을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시 웃는 시골마을
하늘내들꽃마을이 체험학습장으로 각광받게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마을에 다시금 활기가 넘치게 된 것이다. 물고기 잡기 체험을 맡은 할아버지는 투망질을 꾸준히 연습해 물고기 잡기 기량을 닦고 경운기 체험을 담당한 할아버지는 운전연습과 코스개발에 열심이다. 두부만들기 체험을 담당한 할머니들은 어느새 두부 만들기 선수가 되었다.

주민들은 친환경적인 생태학습장을 제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실개천을 청소하고 농약도 안 하게 됐다. 또, 놀고 있는 묵은 밭을 갈아서 마을의 인기상품인 고구마를 심기도 하고 마을하천의 수질을 최대한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 친환경 세제도 자발적으로 구입한다.

이런 주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에 해마다 마을에 가족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그칠 날이 없다. 도시의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하며 졸래졸래 쫓아다니니 무엇보다도 사람이 그리웠던 시골의 어르신들이 활력을 되찾았다.

또 다른 변화는 마을에 젊은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마을이 자연스레 유도를 하는 것이다.
"그냥 귀촌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죠. 그래서 저희 하늘내들꽃마을은 사무실에 일하면서 일종의 적응, 검증단계를 거치는 기회를 줍니다. 고용계약기간이 끝나도 계속 이곳에 머물기를 원하면 마을에서 집과 논을 빌려줍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니 농사와 체험학습을 병행할 수 있도록 체험사업도 하나 맡기죠. 그럼 당사자는 일자리가 생겨서 좋고 마을입장에서는 체험거리가 하나 더 생기니, 상부상조하는 것이죠."

◆들꽃지기 박 대표와 주민 공동체
하늘내들꽃마을을 찾는 주민들이 해마다 늘어 이제는 주말에 찾는 방문객만 100명을 웃돈다. 한해 1만 5천 명이 훌쩍 넘는 방문객으로 2006년에만 3억 원이 넘는 농가소득을 올렸다. 덩달아 하늘내들꽃마을의 특산품 '이장님댁 고구마'는 이제 물량이 달려 팔지 못할 정도다.

주민들에게 탐탁지 않은 도시객에서 어느새 하늘내들꽃마을의 들꽃지기가 된 박일문 대표는 주민들에게 상당한 농가소득을 안겨주었지만 무엇보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활력을 되찾아준 것이 더 큰 수확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절대 행복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돈이 많은 마을이라고 절대 행복한 마을은 아닙니다. 행복의 절대조건이 돈이 될 수는 없으며 무엇보다 사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그 사는 재미 중 돈 버는 재미가 포함된 것뿐이라는 것이죠. 마을 주민들의 밝아진 표정이 계속 저를 노력하게 하는 이유도 그 이유입니다. 어르신들과 함께 2010년에는 체험마을 운영만으로도 가구당 최소 2천만 원 이상의 농가소득을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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