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어떤 사람이 진지한 고민을 했다.
창조주는 전지전능하시고 인간을 사랑하는 분인데 우주를 창조하실 때 진선미(眞善美)만 창조하지 구태여 거짓[僞], 악(惡), 추(醜)까지를 만들어 인간을 이처럼 피곤하게 만드는가?

그는 이 문제에 매달려 애써 씨름하였으나 쉽게 풀릴 명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갖은 노력 끝에 그는 결국 알아냈다.

'창조주께서 거짓, 악함, 추함을 만드신 것은 진(眞), 선(善), 미(美)를 더욱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만약 거짓이 없다면 참됨을 인식할 수 없고, 악(惡)이 없다면 선이 드러나지 않고, 추함이 없으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창조주께서는 진선미를 드러나게 하기 위하여 그 반대되는 사물을 만드신 거로구나!'

위는 영국작가 W.S 모옴(1874~1965)의 《달과 6펜스》라는 작품에 나오는 얘기로, 모든 사물에서 '절대(絶對)라는 명제는 성립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영생을 추구하고, 괴로움은 피하려 한다. 그래서 종교는 천당이니, 극락이니 하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천당(天堂)이란 본디는 불교용어인데 성경을 번역할 때 차용하여 이제는 기독교 용어가 되었고, 극락이란 불교에서 지극한 즐거움의 경지[極樂], 즉 법열(法悅), 또는 삼매(三昧)의 뜻이었는데 보통은 기독교의 천당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그런 식의 천당이나 극락이 있다면 큰 논리적 오류가 있다. 도대체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낙원에서 아플 걱정, 죽을 걱정, 굶주릴 걱정 없고, 따라서 부지런히 노동할 필요도 없이 맛있는 음식에 감미로운 음악만 들으면서 살아간다면 행복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설령 그런 낙원이 존재한다 해도 도무지 사는 재미가 없기 때문에 얼마 되지 않아 싫증이 찾아올 것이다.

가진 건 돈과 시간뿐이라는 사람의 최대 고통은 '지루함[倦怠]'이다. 만일 그런 식의 천당이나 극락이 존재한다면 거기는 낙원이 아니라 권태가 지배하는 지옥일 것이다.

한편 지옥은 땅속에 있다는데 거기에는 유황불이 지글거린다거나, 독사 같은 독충이 득실거린다 한다. 그러나 지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고통이 두려운 것은 그 뒤에 찾아올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지 고통 자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이 된다. 펄펄 끓는 유황불 속에 떨어져도 처음에만 고통스럽지 적응하게 되면 나중에는 따뜻하게 느껴지다가 결국에는 일상이 될 것이다.

독충에게 물려도 죽지는 않는다니 (죽지 않는다면 상처도 나지 않을 것이다) 심심풀이로 물려줄 만할게다. 그러니 천당과 지옥이 실존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아예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천당과 지옥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논증하려는 생각은 없다. 단순하게 천당 지옥을 믿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런 사람이라면 지옥이 두려워서라도 나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므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나을 것이다.

다만 천당과 지옥의 존재를 믿는 것까지는 좋은데, 자신의 믿음을 절대선(絶對善)으로 알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진선미와 더불어 위악추(僞惡醜)를 만든 창조주의 오묘한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눈박이처럼 보여 딱할 뿐이다.

감사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살면 그곳이 극락이요, 천당이고, 앙앙불락하는 마음으로 살면 그곳이 지옥이라는 말씀이 진정 정곡(正鵠)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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