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용 선생님

드디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시골에 살게 되었다. 그 사람의 미래를 알려면 그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귀 기울여 들어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틈만 나면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생산적 삶을 살 수 없는 도시에서 마냥 소비만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날마다 죄짓는 것만 같다고 생각한지 아주 오래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진안의 한 마을에서 간사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해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시골에 가서 산다고 하더니 소원이 이루어졌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곳에 와서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아침마다 숲길을 산책하는 것이다. 숲길은 날마다 다르다. 마른나무에서 잎이 돋고 새 순에 이슬이 맺히는 모습도 날마다 다르다. 비가 오지 않아 땅이 그토록 메마른데도 새싹은 무슨 기운으로 땅을 뚫고 올라오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며 몽골의 척박한 땅과 헬렌켈러의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두 가지가 동시에 생각나곤 한다.

몽골은 봄 내내 바람이 극심하게 불어 사계절 중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다. 6월 중순 쯤 싹이 올라오는가 싶지만 극심한 바람과 건조한 기후 탓에 크게 자라지도 못하고 조금 자란 싹들은 짐승들이 모조리 뜯어 먹고 그나마 8월 중순이 되면 노랗게 사그러든다.

우리 땅에서는 때맞추어 비가 내리고 싹이 나면 크게 자라 숲을 이루는 것을 당연하게 알았다. 몽골에서 돌아와 봄날 꽃피고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새로운 기쁨을 느꼈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도 할 수 없었던 헬렌켈러는 손끝의 촉감만으로도 나뭇잎의 섬세한 좌우대칭을 느낄 수 있고, 거칠고 주름진 소나무나 부드러운 자작나무의 껍질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봄엔 기대에 찬 손으로 나뭇가지에 돋아나는 꽃눈을, 겨울잠을 자고 처음으로 깨어나는 꽃 순들을 느끼고 알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작은 나무에 살짝 손을 대고 그 나무 위에서 노래 부르는 새들의 행복한 진동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촉감의 느낌만으로도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던 헬렌켈러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며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곤 한다.

자연 뿐만 아니라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함부로 대하고 있음을 헬렌켈러는 알게 한다. 헬렌켈러는 내 눈을 사용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첫날 우정과 친절로 인생의 살 가치를 갖게 해 준 친구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헬렌켈러는 묻는다.

당신은 친구의 내적인 본질을 당신의 눈을 통하여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얼굴의 외형만을 통해서 건성으로 파악하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다섯 친구의 얼굴을 정확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의 눈 색깔을 말 할 수 있는가?
앞을 볼 수 없는 헬렌켈러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을 날마다 바라보고 무심하게 지나치며 단 한번이라도 감사하고 고마워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선생님은 글쓰기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으며 얼마 전부터 시골살이가 좋아 부귀면 신덕마을 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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