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 반 아이들과 함께 한 박태영 교사
5월 10일 일요일 아침, 늦잠을 깨우는 전화가 왔다. "선생님, 쉬는데 아침부터 전화 드려서 죄송해요"
우리학교 선생님의 전화였다. 수화기로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예사롭지 않음이 느껴졌다. "선생님, 글쎄 어제 OO이가 점심에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그만..."

"네?!, 뭐라고요? OO이가요?"
정신이 바짝 들면서 머리를 뭔가로 맞은 듯 갑자기 멍해졌다. '엊그제 학교에서 나를 보며 열심히 손 흔들어주던 모습이 너무 생생한데 OO이가 교통사고로 죽다니.'

2008년, 새 학년 첫날 6학년 담임을 맡아 6학년 교실에 들어섰다. 낯설지 않은 얼굴들, 이전에 이 아이들의 담임을 맡은 적이 있어서인지 전혀 낯설거나 떨리지 않았다. 아이들도 나와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은 듯, 마냥 신나고 반갑게 인사한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에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 사이에 OO이는 내 눈에 쏙 들어왔다.

나를 제일 반갑게 맞이해주었던 OO이. 평소에 내가 마음을 많이 써 준 것도 아닌데 미안할 정도로 나에게 정말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OO이는 여느 아이들과는 학습하고 행동하는 게 조금 다른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는 특별한 아이다. 하지만 장래희망이 가수일 정도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그 누구보다도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냈으며 자신감 있고 마음 씀씀이가 착한 아이였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특별한 아이였다.

담임을 처음 맡았을 때, 나는 통합학급을 맡아본 경험이 없고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적잖이 당황하였고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OO이는 선생님의 미숙함 때문에 좀처럼 관심과 가르침을 받지 못한 한 해를 보냈다. 그 해를 돌아보면 참 미안했고, 내 자신이 부끄럽다. 2년 만의 만남은 전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으라는 하늘의 뜻이었다.

어느 날 오후, 교직원회의를 마치고 교실에 돌아왔는데 내 책상 위에 원통형 도자기가 놓여있었다. '누가 갖다놓았지?' 투박한 질감에 울퉁불퉁한 표면, 누가 봐도 못생긴 도자기를 보면서 누가 갖다놓고 갔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자기 겉에 써 있는 글씨를 보면서 궁금증이 바로 해결되었다.

'박쌤 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글씨와 말투는 이 도자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바로 OO이었다. 우리학교에 새로 부임하신 특수반 선생님 도움으로 도자기 공예를 함께 다녔고, 그 첫 도자기를 나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이렇게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 글씨를 반듯하게 쓰려고 또박또박 눌러 쓴 연필 글씨와 손가락으로 그린 문양, 비록 무슨 용도인지 알기 어려운 이 도자기에는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다음날, OO이에게 고마움을 얘기할 때 머리를 계속 긁적이며 씽긋이 웃고 있는 OO이의 손을 잡으며 'OO아, 그래 너는 더딜 뿐이지 못하는 게 아니란다.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선생님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네게 꼭 보여주는 좋은 선생님이 될게.' 하고 내 자신에게 다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새롭게 시작하기를 거듭하는 동안 1년이 다 가고 졸업이 다가왔다. 졸업식장에선 다른 친구들의 절반 정도 두께의 상장이지만 가슴에 꼭 안고 내게로 다가와 꾸벅 절을 하는 OO이를 보며 그래도 일 년 동안 나를 끝까지 믿고 따라와 준 것이 고마웠다. 오히려 좀 더 많이 인정해 주지 못하고 졸업시키는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졌다.

OO이가 세상을 떠난 지 2주가 되어가는 오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텅 빈 교실에 앉아 책상 한켠에 놓여 있는 도자기를 바라본다. 거기에서 마치 OO이가 뛰쳐나올 것 만 같은, 천진난만한 얼굴과 추억들이 묻어난다. 아린 가슴을 꾹 참고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아이들에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아낌없이 사랑해 주리라. 보고 싶다 OO아!!(2009.5.20)

박태영 교사 (마령초등학교에서 2학년 아이들과 꿈을 갖고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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