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 이광재씨
이광재 씨
백운면 덕현리 윤동마을 출신
도서출판 「한미의학」대표
백운중학교 제2회 동창회장 역임
재경백운중학교 제2회 동창회장
한양골프씽글회 회장
서울마포구상공회의소 이사

윤텃골 암반 위에 옛 친구 마주하고/붕우(朋友)가 유신(有信)하니 옛 그 때 그립고야/약수암 옥수 따라 일배일배 기울이고/왈가왈부 콩팔칠팔 코흘리개 추억 찾아/칠팔월 긴긴해가 그렇게도 짧던 것을/백발보고 허한 마음 우정으로 새기고저/작취(昨醉)가 미상(迷想)에도 벗의 심금(心琴) 읽는 것은/입신양명(立身揚名) 대술 손가 고향 찾아 앉았노라.

문득 필자가 10여 년 전 산행으로 내동산 폭포를 지나다가 이 고장 출신 연배친구와 술자리에서 동행하고 중도와 입신양명에 관하여 왈가왈부 평생을 그렇게 함께 할 것 같은 기분으로 우정의 심금을 논하면서 그 연배 친구에게 써 주었던 필자의 졸필(拙筆)이 생각난 것은 필자가 그랬고 그 연배 친구가 그랬듯이 공직에서 중도하차 한 이후 또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익히는 방법인 중도의 논리에 관한 서로의 갈등의 의미를 필자와 그 친구가 함께 느끼면서 있었는데 또한 오늘 이 글의 주인공 이광재씨도 초년에 공직에 뜻을 갖고 그 것에 도전했었던 전력(前歷)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어쩌면 우리들의 공통적 운명에 관한 우정을 느꼈던 것은 아닌가. 그렇게 우스운 생각이 된다.

이광재씨의 동창회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었던 그 일 들이 그렇게 생각이 된 것은 우리가 함께 할 수밖에 없었던 고향의 이야기로 향수의 동행자일 수도 있었겠다. 그이들의 고향 윤동(윤텃골) 마을은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의 상류가 마을 앞으로 흐른다. 그리고 내동산 자락이 마을의 뒷산으로 병풍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전원마을 이였다.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마이산에서 발원한 그 것과 합류하고 임실, 구례, 하동의 화개장터를 굽이굽이 흘러서 광양만 남해까지 500여리를 흘러간다고 한다. 섬진강의 발원 샘으로 지칭되어 있는 데미 샘에 관하여 혹자는 외래어의, 또는 어느 특별한 의미의 어원에 관하여 의미를 찾으려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아니고, 「데미」란 「더미」란 뜻의 경기이하 남도지방의 방언이라고 사전에서는 그렇게 밝히고 있다. 「막은데미」가 「산더미」의,「각닥데미」가「돌더미」의 방언이듯이. 데미샘 주변에는 돌데미와 돌데미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 데미샘이란 돌데미들 속에서 흘러나와 이루어진 옹달샘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하여튼, 우리의 고향사람 이광재씨는 산 깊고 물 맑은 이 마을에서 1962년 1월 아버지 이상진(74세·서울거주)씨와 어머니 장분례(72세)여사 사이에서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그는 마을금고 이사장도 지내신 아버지의 능력과 5일장을 섭렵(涉獵)하시며 재력을 키우시던 어머니의 후광으로 초년시절을 어려움 모르고 자란 것 같았다. 하얀 구름사이에 끼여 있는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 아래 매미 우는 소리 들려오는 시골의 정서 속에서 백운초등학교와 백운중학교, 그리고 인근의 마령고등학교를 그렇게 졸업한다.

좀 더 넓은 세상, 좀 더 큰 세상, 그곳을 찾아 나선 것이 서울의 종로, 청운의 꿈을 이루자. 입신양명의 그 길을 찾아서 종로학원에서 수학하고 몇 차례의 공무원시험에 낙방(落榜)하면서 이것이 내 길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서 인생의 진로를 고민한다. 나름대로의 새로운 철학에 도전한다. 한양대학교에서 경영학을 3년 수료하고, 그리고 삼성출판사에 취업하고 10년, 학교에서 익히지 못했었던 인생의 수업을 배운다. 이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다시 무역 쪽에 눈을 돌려 삼성인터네셔날을 창업하고 3년을 뛰었으나 여기도 아니었나 싶었다. 다시 출판 쪽에, 「도서출판 한미의학」을 창업하고 그 대표에 취임한다.

그는 짧은 기간 동안 좋은 서적을 많이 내 놓을 수 있었던 것이 그에게는 행운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는 이제 이 사업에 그의 인생을 걸었다고 했다. 많은 좋은 서적의 출판이 어쩌면 국가의 백년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묵혀두었던 학업의 계속을 위하여 방송통신대학 경영학과에서 늦은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고 했다.

로버트기요사기와 샤론레흐트의 저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Rich Dad, Poor Dad)」를 읽고 이광재씨는 여기서 많은 이치를 새로 배운다고 했다. 가난한 아버지는 독서의 중요성을, 부자 아버지는 돈 관련 지식을 강조한다. 가난한 아빠는 말한다. '돈을 좋아 하는 것은 악의 근원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을 구해야지. 그리고 난 너희들 키우느라 돈이 많이 들어 부자가 못 된 거 알지? 항상 돈은 안전하게 사용하고 위험은 피해라.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그러나 부자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돈이 부족한 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회사 차려야지. 그리고 나는 너희들 때문에 부자가 돼야 한다는 것을 알지. 항상 투자 할 때는 위험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라. 돈을 제대로 아는 것이 힘이거든.' 자본주의가 성숙한 미국과 짧은 자본주의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부(富)의 개념에 차이는 있겠지만 경제의 올바른 이해위에 세워진 이 사고방식에 그는 동의한다고 했다.

우리의 고향사람 이광재 씨
결단력이 크고 무슨 일이고 적극적으로 맞서는 풍부한 발상의 기질을 필자는 그에게서 보았다. 적극성과 현실적 실행력이 풍부하였으며, 생각보다는 먼저 행동으로 옮기는 그의 가슴에 간직된 용기 있는 노력에서 후일의 이광재를 볼 수가 있었다. 그는 흉내 내지 않는 인생을 살 것이라고 했다. 나서야 할 곳, 나서지 말아야 할 곳을 그는 안다고 했다.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最高不如最善) 살아 갈 것이라고 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盡人事待天命), 그러한 삶을 살아 갈 것이라고 했다. 연락처: 011-319-2777 /서울취재본부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