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 전영희 씨
전영희 씨
백운면 남계리 오정마을 출신
민자당 장수연락소 여성부장 역임
장수경찰서청소년선도위원역임
도봉경찰서청소년선도위원역임
사단법인『내고향알리기전국연합』 군포지회 지회장
재경백운면향우회 총무

그녀가 그렇게 이야기한다.
친정어머니는 꼭 이런 가을 외롭고 쓸쓸하다 생각이 드는 그런 날이면 잊고 살아가던 그녀의 가슴에 깊은 설움으로 찾아온다고 했다. 항상 미안함으로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그렇게 잊고 살다가도 불현듯이 일에 열중하다가도 일손을 잠시 놓고 높아진 가을 하늘에 한 점 떠 있는 하얀 뭉게구름을 보고서는 느닷없이 올 초 80을 두 해 남기고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기어이 가슴을 열고 그만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눈자위가 짙어진 그녀의 가슴에 위당(爲堂)의 자모사(慈母思)를 들려준다.
 
이만 사실 어머니를 뜻조차도 못 받는가/한번 상해 드려 못내 산 채 억만년을/이제와 뉘우친들 어머니 다시 오시랴.
어머니 부르올 제 일만 있어 부르리까/ 젖먹이 우리 애기 왜 또 찾아 하시더니/황천이 아득하건만 혼자 불러 봅네다.
안방에 불 비치면 하마 어머니 계시온 듯/닫힌 창 바삐 열고 몇 번이나 울었던고/산 속에 추위 이르니 어머니를 어이 할고.
그리워 하 그리워 어머니 신색 하 그리워/닮은 뉘 없으니 어딜 향해 찾으오리/ 남으니 두어줄 눈물어려 컴컴하고 어둡어라.
가을이 그 가을이 바람 불고 잎 드는데/가신 어머니 어찌하여 돌아올 줄 모르는가/살뜰히 기르신 옷 품준 줄 아소서.

 
참으로 이 세상에 어머니만큼 크신 것도, 어머니만큼 영원한 것도, 어머니만큼 공통적인 닮은꼴도 없다. 이렇게 우리가 어머니를 회상하고 어머니를 추억하고 그에 대한 풍수지탄(風樹之嘆)을 자책하고 무덤 앞에 꿇어 앉아 통곡하고,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살아 계실 적 효도해야 여한이 없더라고 우리의 고향사람 전영희씨는 그렇게 강조한다.

전영희씨가 고향의 반송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어린 마음에도 뜻한 바 있어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꿈을 이루고자 하고 혼자의 몸으로 부산에 유학한다. 부산의 경희여중 2부에 입학하고 밤에는 (주)육일공업에 취업하며 그렇게 졸업하고, 모든 일, 그녀의 인생살이가 참 순조롭게 풀려 가는 듯 그랬다. 그러나 그녀에게 지워진 그녀의 운명이 그렇지를 못한 것 같다고 그녀는 그렇게 회고한다.

그의 아버지 전태성 씨가 병석에 드신 것이다. 아버지의 병 시중이 그녀의 몫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녀의 정성도 보람 없이 아버지는 유명을 달리하신다. 그녀는 다시 직장을 찾아 장수군 천천면의 일본의류가공수출회사에 취업하고 5년의 세월을 거기서 보낸다. 운명과 세월에 관하여 그리고 자식의 효도와 어머니의 사랑에 관하여 그녀 자신의 체험으로 터득한 간절한 그 5년의 이야기는 그녀가 아이들에게 교훈으로 들려주는 교과서이다.

많은 형제 중에서도 그녀는 특히 착한 딸 이였고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에 거역하지 않는 효녀였단다. 그랬었는데 어머니 살아계셨을 적 꼭 한번 그 뜻을 거역하고 어머니 허락을 받지 못한 채 그냥 우기고 결혼한 것이 어머니 돌아가신 지금 회한으로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공무원이었던 남편을 내조하며 그녀는 참 열심히 살았다. 장수에서는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그런 정신으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자모회장도 맡았고 경찰서의 청소년 선도위원도 맡았었다. 정당의 여성부장도 맡아서 지역사회의 발전에 일조(一助)하는 것도 마다지 않았다.

그러나 운명은 아직도 그녀의 불효에 관하여 용서하지 않았었다고 그녀가 그렇게 회고한다. 남편의 실직을 보면서 내가 나서자 그렇게 생각하고 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한다. 전주에 이사하고 인후동에 음식점 「장수골」을 개업한다. 그렇다고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것만은 아니었다. 월세와 전세로 전전하는 객지생활에는 이미 이골이 나 있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중에서도 두 아이가 말썽 없이 잘 자라주었다는 것이다.

기왕 할 고생이면 대처(大處)로 나가자. 남부여대(男負女戴) 가족들을 이끌고 서울로 뛴다. 도봉동에 짐을 풀고 「전주맛고을」의 간판을 내 건다. 도봉경찰서청소년선도위원도 맡는다. 「하늘은 스스로 일하는 자를 돕는다.」 했다던가? 성서에서는 또 이렇게 가르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전영희씨의 진심이, 그녀의 영혼의 소리가 하늘에 통한 것 일가? 선(善)이 통하는 인간의 길을 그녀가 본 것이다. 좀 더 발전한 「횟집」으로, 군포의 그「노래방」으로 그녀의 길은 그렇게 이어져 갔다. 군에 입대하고 외국에 파병되었다가 돌아온 그녀의 장남이 목숨이 살아온 것도 고마운데 그로서는 상당하게 많은 재물을 벌어서 돌아왔을 적, 그녀는 대견한 그 장남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울었다. 아 이제 내 아들이 이렇게 자랐으니 내 고생은 끝난 것이다. 울다가 얼굴을 다시 보고 또 울었단다.

우리의 고향사람 전영희씨.
그녀, 그 여자의 일생 중에는 어려우나 성실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바르고 착한, 그리고 소속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봉사하는 아름다운 잠재의식으로 무장한 우리가 함께 본받아야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어머니로의 강한 의지와 아내로서의 인내하는 슬기와 여성에서 탈출하는 용기도 그녀는 그렇게 갖고 있었다. 연락처: 010-3672-0235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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