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김순용 간사

선생님은 부귀 신덕마을 간사로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컴퓨터가 자꾸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 서비스 센터 사람은 올 때마다 자꾸 말이 바뀐다. 기계에 대해 속속들이 잘 모르니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러려니 하고 듣고 말았는데 똑같은 고장이 자꾸 반복되니 정말 화가 난다.

쌀 열 가마 값에 가까운 컴퓨터가 이렇게 속절없이 고장이 나고 고물처럼 되다니, 더구나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 물건이다. 그 회사는 자기들 물건이 세계에서 제일인 듯 그것들을 쓰면 우리들의 삶의 질도 향상될 것처럼 날마다 광고를 해댄다. 그 모든 것이 우리들이 치르는 물건 값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가 고장 나면 왜 이렇게 갑자기 막막해지는지 모르겠다. 마치 컴퓨터가 안 되니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처럼 공황상태에 빠지곤 한다. 하루 이틀 미루어도 괜찮은 일인데도 서비스 센터에 컴퓨터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전화를 한다. 컴퓨터를 고치러 사람이 올 때까지 맥을 놓고 있다. 그러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나는 벌써 기계의 노예가 되었단 말인가.

컴퓨터 뿐 만이 아니다. 손전화기도 마찬가지다. 어디를 나가다가도 전화기를 들지 않았으면 되돌아서 가지고 나간다. 누가 나에게 그렇게 화급한 소식을 전할 일이 있겠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왠지 꼭 전화기를 손에 들어야 할 것 같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 일이 있어도 번호를 누르기보다 전화기 속에서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 이름을 누른다. 손전화기가 없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번호를 머리로 외워서 일일이 숫자를 누르며 전화를 걸던 그 총명함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내 전화기에 입력되어 있는 사람들 중 몇 사람의 번호도 외워서 말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제 기계인간이 되어 가는 건가.

나는 종종 운전을 하다가 전화를 받는 남편에게 위험하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운전 중에 전화 받다가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런데 뉴스에서 운전 중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하다는 보도를 하는 것을 보니 운전 중에 문자까지 보내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어떤 여성이 "나는 운전 중에 문자도 보내요."하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운전에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나에게는 위험한 일이 절대 일어날 리가 없다는 자신감인가.

이제 우리의 삶을 온통 기계가 다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기계 없이 살기에는 우리가 너무나 그것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기계에 의지하지 않고 일을 손으로 하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갑갑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그러니 괜스레 기계에 익숙하지 않으면 괜히 큰 죄라도 짓고 사는 듯이 주눅이 들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의 뒷면에는 상업자본주의의 깊은 늪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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