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에서 무주를 향해 약 8km 를 달리면 상전면 수동리 내송 마을의 죽도에 이른다. 깎아 세운듯 한 바위산 절벽을 맑디 맑은 물이 한바퀴 휘돌아 흐르고 있기에 마치 섬과 같았던 곳. 남쪽의 장수에서 흘러오는 연평천과 동쪽 무주 덕유산에서 시작되는 구량천이 파자형으로 굽굽이 굽이쳐 합류하면서 이룬 경관이다. 산죽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죽도... 그러나 이름처럼 섬이 되고 마는 또 하나의 전설이 현실로 맞춰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죽도를 빼어난 경관의 장소로만 기억해서는 안된다. 기곳은 정여립의 최후가 기록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589년 기축년 선조때이다. 무려 천여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내는 옥사인 ``기축옥사``의 주인공이며 그후 우리의 호남땅을 반역향으로 전락시켜 차등의 한 획을 더했던 일대 사건의 마지막을 기록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여립은 역적이 아니었다. 한창 재조명되고 있는 학계와 일부 향토 사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점차 그 진실을 위한 재조명이 진행되고 있듯이 정여립은 결코, 죽도로 도망했던게 아니었다. 평소 죽도를 자주 찾아 ``죽도선생``이라고도 불리웠던 그가 왜 피신처로 죽도를 택했을까? 아니다. 정여립은 역적이 아니었고 또 도망칠 이유도 없었으며 평소처럼 죽도에 놀러 왔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역모를 인정했던 것 처럼 꾸며 결국은 자살을 한 것으로 위장되었던 조작극이었다는 ````동서만록``의 기록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죽도엔 정여립과 관련된 전설이 하나 있다. 천반산 정상에 있다는 거대한 돌솥 이야기이다. 정여립이 맣은 부하들과 이용했으며 그 크기가 어찌나 크던지 솥전 난간으로 젊은 장정들이 뛰어다녔다는 전설이다. 하지만 전설로만 치부하여 무관심해서는 안된다. 언제고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천반산의 정여립 성터를 찾아야 한다. 우리들의 무관심으로 행여 영원히 찾지 못할지도 모를 돌솥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곳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나 그것을 가지고 이 천혜의 피서지를 숙연하게만 지나칠 수는 없다. 하늘과 물과 몰래와 바위산과 나무가 조화의 극치를 이루는 절경 보는 이 마다 넋을 잃게 만드는 천혜의 관광지 이다. 정여립이 칩거했다는 찬바람 나오는 송판서굴, 전설의 형제바위 등, 얼마전 까지만 해도 천연기념물 이었던 쏘가리가 넉넉히 잡힌 곳이기도 하다. 머지않아 수 많은 사람들이 이젠 진짜 섬이 된 죽도를 찾으며 예날, 섬이 아닌 죽도를 더 그리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섬이 아니었던 예날 이야기를 , 때를 잘못 만나 정여립의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귀한 전설처럼 이야기하며 말이다. 진안 - 상전 - 죽도 08:10 09:20 12:40 15:30 18:00 19:20 죽도 - 상전 - 진안 07:40 09:40 11:50 13:00 15:40 18:2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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