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오늘도 마을회관 앞 길가에 나락이 널려 있다. 마을 분들이 나락을 널어 놓고 들에라도 가시려면 가끔은 나에게 나락을 저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나락이 길가에 그득하니 널려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믓하다.

아직도 한낮에는 햇살이 따끈따근해서 고무레를 밀며 널려 있는 나락을 따라 걸어가노라면 등줄기에 땀이 맺히곤 한다.

나는 나락만 보아서는 구분을 할 수 없는데 어르신들은 저기 저거는 찰벼, 저거는 흑미쌀, 이것은 메나락이라며 알려주시곤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나락을 가만히 살펴 보면 흑미 나락은 검은빛이 돌고 찰 나락은 좀 더 맑은 빛이 돈다.
봄에 모내기를 한 논을 살펴보니 좀 더 검은빛이 도는 모가 있어서 병이 났나, 하고 논 주인에게 물어보니 흑미 종자를 심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흑미 쌀은 근원부터 좀 검은 빚을 띠고 있는 것이었다.

찰 나락을 널어 놓은 어르신은 "저것은 내 차지는 얼마 없어. 자식도 걸리고 집안 친척도 걸리고..."하시며 벌써부터 방아를 찧어 여기저기 나눌 생각부터 하신다.

그 마음을 아는 듯이 김지하시인은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모두가 나누어 먹습니다."라고 노래했다.
나락이 쌀이 될 것을 생각하니 이해인 수녀님의 시 '쌀 노래' 도 생각이 난다.

쌀 노래
 
나는 듣고 있네
내 안에 들어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는
한 톨의 쌀의 노래
그가 춤추는 소리를
 
쌀의 고운 웃음
가득히 흔들리는
우리의 겸허한 들판은
꿈에서도 잊을 수 없네
 
하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엄마의 마음으로
날마다 새롭게
희망을 안쳐야지
 
적은 양의 쌀이 불어
많은 양의 쌀이 되듯
적은 분량의 사랑으로도
나눌수록 넘쳐나는 사랑의 기쁨
 
갈수록 살기 힘들어도
절망하지 말아야지
밥을 뜸들이는 기다림으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희망으로
내일의 식탁을 준비해야지.

김순용 간사 (선생님은 부귀 신덕마을 간사로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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