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김순용 부귀 신덕마을간사

앞집 배남집 아주머니가 김치를 담갔다고 가져 오셨다. 맛있는 배추에 햇고추로 담근 김치가 아주 맛있다. "김치가 맛있네요."했더니 "아들들 줄라고 담았어." 하신다.

아주머니는 두 무릎의 연골이 닳아 지난 겨울에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하셨다. 수술 전보다 아픈 것은 덜 하지만 다리를 구부릴 수가 없어서 의자 없는 곳에서는 다리를 뻗고 앉아야 한다. 그 다리를 이끌고 봄부터 지금까지 덕봉마을 아래 밭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지으셨다.

봄에는 그 다리를 이끌고 온 산을 다니며 온갖 나물을 뜯어다 말리셨다. 내가 "나물 정말 많이 말리셨네요." 했더니 "나 먹을라고 하가니. 자식들 나눠 줄라고 하지."하신다. 저녁이면 걸어 다니면서도 신음소리를 내신다. 그 소리가 참 아프게 들린다.

밭일을 하는 틈틈이 아들, 딸들 반찬을 만드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주말이면 도시에 사는 아들, 딸들이 와서 아주머니가 담아 놓은 김치며 반찬들을 싣고 돌아간다.

연장리 할머니는 온 몸에 살이라고는 없는 깡마른 몸이시다. 연세도 내년이면 팔순이시다. 그런데 잠시도 쉬는 법이 없다.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집안도 반들반들 윤이 난다. 요즘 황토방에 불을 때면 와서 주무시는데 잠이 깨면 즉시 일어나 가셔서 일을 하신다.

일을 어찌나 잘 하시는지 인근 마을마다 소문이 나서 그 할머니를 서로 모셔다가 일을 하려고 한단다. 요즘도 남의 집 일을 하시고도 집에 돌아와 또 깜깜해지도록 집일을 하신다. "할머니 안 힘드세요?" 하고 물으면 "힘들어 죽겄어." 하시면서도 잠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신다.

요즘은 가을이 되니 고구마 캐서 아들들에게 부치고 풋고추 따서 부치고 오늘은 또 김장담그기 전에 먹으라고 무김치 담가 부친다고 하신다. 마당에는 각기 빛깔이 다른 콩이며 땅콩, 팥 그리고 풋고추 가루 묻혀 찐 것, 껍질 벗긴 토란대 들이 따가운 가을 햇살아래에서 잘 말라가고 있다. 저것들도 곧 도시의 자식들에게 부쳐 지겠지.

작가 신경숙은 소설『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이 땅의 이런 어머니들의 희생과 고단한 삶을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그려냈다. 평생 몸을 아끼지 않고 사시느라 남모르게 두통을 앓던 어머니가 아들집에 오다가 서울역에서 길을 잃었다. 어머니를 찾으려 자식들은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어머니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혼이 되어 생전에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나타나곤 한다. 그럼 그 육신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나는 그것이 의문이었다.

요즘 우리 마을 어머니들을 보면서 나는 아 어머니들은 저렇게 육신을 아끼지 않고 쓰다가 돌아가시겠구나. 작가는 우리 어머니들이 저토록 육신을 아끼지 않고 뼈도 닳고 살 문드러지도록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그리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찾지 못하는 어머니의 실체는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다가 그저 스러져버린 이 땅의 어머니들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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