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월(73, 동향 학선리 을곡)

5월30일 안성에 시느님이 살고 게시는데 시느님 남편 고모부님 제사날이라고 꼭 오라고 하였다. 벌이 새끼 날 것 같다고 목 가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밤에 또 전화가 왔다. 어지간하면 다녀가 하는데 안가고 있으니까 영, 내 마음이 편치안타.

그래서 시느님한태 전화를 하였다. 4시반차로도 갈께 하였더니 조카가 옆에 있다가 듯고 대릴로 온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조카가 차를 가지고 바로 왔다.
그래서 시느님 집에 바로 갈 수가 있었다. 가니까 떡을 만들고 있어서 나도 같이 만들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전을 부쳤다.

조카 매느리들은 제사를 지내고 밤에 가야 한다고 짐을 챙기고 심난하다. 이것저것 많이도 하다. 그리고 큰 조카 매느리가 "예승모, 내가 옷을 사면 예승모 치양도 모루고 해서 돈으로 드릴게요"하면서 돈을 50만원을 주었다.

조카들이 하는 말이 "외가집 때문에 공부해서 성공했다"고.
그 보답으로 우리 망네 아들도 취직도 해 주고, 집도 그양 빌려주고, 그것만해도 고마운데 이럭깨까지 해 고마워.

우리 조카하는말이 "외가집에서 공부해서 던진기업에 사장이 됄 수가 있어 성공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조카들이 공부할 때 전주에 나가야 하는데 형편이 안데서 할 수가 업어서 우리 아들 공부방에 같이 공부하게 하고 우리 시어머님이 밥해 먹이곤 했다.

우리 아들 사형재, 고모네 아들 삼형재를 되리고 밥해 먹이고 빨래해 입이고 하신 우리 어머님이 많이 고생하시고 힘드셨는데 성공한 것 보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우리 어머님 아부님이 불상하고 안탁갑다.
우리 아범님이 쌀이나 찬거리를 전주에 갔다 나루고 고생하였다.

택씨비 아까워서 택씨를 안 타고, 그 무거운 쌀을 질머지고 다니느라 너무 고생하셔셔 불상하고 어머님 아범님 생각이 절로 난다.
우리 큰 조카가 거재도 덕진기업에 사장이 대서 기쁘고 우리한태 이렇게까지 신경써서 고마워.

"외승모 그런말씀 마세요. 우리가 외가집 아니면 어트게 공부해서 성공할 수 있습니까" 하면서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무튼 조카가 잘해서 잘 됐쓰니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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