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미의 문화산책
이용미 문화관광해설사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그런 때 쓰면 적당할까? 익숙한 거리에 산뜻하게 리모델링 된 건물을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출입문을 밀었다. '모자의 모든 것, ?월?일 이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는 플랜카드가 진행 중인 공사 건물 외벽에 세로로 길게 걸려있는 것을 오가는 길에서 볼 수 있었고 오픈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건물과 어울리는 말끔한 복장의 세 여직원이 반갑게 맞이하는데 바로 옆 커다란 거울에 내 모습이 보였다. 묵직한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편한 칠부 바지와 간편한 티셔츠 차림으로 머리는 흐트러진 채다. 칸칸에 진열된 톡톡 튀는 개성의 고급스런 모자들과 내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며 "신문을 본 뒤 한 번 오고 싶었는데 마침 장보고 가는 길에……." 잘못 후 변명하듯 웅얼거렸다. 다 알았다는 듯 보따리를 들어 옆에 놓은 뒤 그 옆 거울 앞에 앉히며 땀부터 식히라고 했다.
난 모자가 한 20여개 된다. 손뜨개겨울용 털모자를 선물로 받은 후 맘에 들어 색깔만 다르게 흉내를 내서 뜬 모자들과 일상의 필요로 패션과는 상관없이 사서 쓰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관심은 많은 편이다.
 
맘에 드는 모자를 손으로 가리키기만 하란다. 서서 고르는 수고까지 덜어주겠다는 서비스지만 아무거나 들었다 놓았다 써보는 내 맘대로 쇼핑에 길들어져 오히려 불편하다. 그 맘을 아는지 모르는 지 위 아래로 훑어보기까지 하는 데는 불쾌감마저 들어 '비싸지 않으면서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을 원한다고 짧게 말했다. 골라 씌워준 모자는 분홍색과 노랑에 분홍 꽃이 프린트된 양면으로 쓸 수 있는 것으로 계절을 무시한 채 내 맘을 홀려버려 다른 것을 더 고를 필요도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계산을 마쳤다. 노련한 직원들이 고객의 눈높이를 쉽게 맞춰준 것이다. 아마 진열된 모자들 중 가장 낮은 가격대의 것이리라.
 
어린이사진을 찍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눈높이 맞추기라는 말이 생각났다. 어디 어린이사진 뿐일까, 모든 일상에서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은 분수를 안다는 것, 그걸 잊어버린 채 능력 이상의 것을 탐하고 흉내 내는데서 사회와 가정문제도 생기는 것 아닐까? 위 아래층에 진열된 모자는 특이한 디자인은 물론 흔히 접할 수 있는 디자인의 모자도 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대였다. 그런 모자를 권하지 않은 직원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위 아래로 훑어본 것은 체형에 맞는 것을 권하려 했다고 하지만 내 맘까지 읽으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그랬으리라. 아니, 출입문을 들어설 때 이미 내 수준과 취향까지 알고 권할 상품까지 정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야 내 원하는 것과 그렇게 금방 맞아 떨어지기가 어디 쉬운가. 아무리 비싸고 고급스러워도 어울리지 않고 원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기에 싼 제품을 권했다 해도 불쾌하거나 서운하지 않다.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하며 교감하고 부대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고도의 서비스를 익혔으리라.
난 혹시 찾아온 답사객의 맘을 읽기에 앞서 내 아는 것을 알리는데 급급해 하진 않았을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분위기는 뒷전으로 들어야만 된다는 강요 아닌 강요를 한 일은 없을까? 고객의 눈높이를 금방 맞출 수 있는 그들과 같이 되려면 근무연수 같은 건 멀리 접어두고 새롭게 시작해야 된다는 생각이 바보스러운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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